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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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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헬조선 한정

이 문서는 몇 안되는 개념있는 금수저에 대해 다룹니다.
이 문서는 서민들을 위해 돈을 쓰며, 돈을 벌고 그 돈을 서민들을 위해 , 정당한 방법으로 축적하는 개념 금수저에 대해 다룹니다. 죽창으로 찌르면 안 되는 대상입니다. 우리 흙수저들 편이기 때문입니다.

"We are the 1%..We stand with the 99%"

노블레스 오블리주[편집]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귀족은 의무를 진다는 프랑스어의 표현이다

부와 권력은 그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진다는 것이며

사회 지도층 상류층들이 사회적 지위에 걸맞는 모범을 보일때 칭찬하고

안하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안하냐고 비판하면 된다.

한국[편집]

땅블레스 돈불리제밖에 없다. 그냥 기득권층의 의무가 없다.자식들은 태어나자마자 이중국적자이고

아니면 정신병있다고 군대면제하고 다시 유학간다.읍읍부 장관 아들이라고 말해선 안된다

헬조선 기득권 자식들은 군면제 빼기 쉽다.이미 금수저들이고 권력도 있으니 식은죽 먹기다

그리고 자식취업도 전화한통이면 OK이다.외교부 장관딸이 5급 특채 음서제로 들어갔다

이와중에 군머에 정훈교육용 자료 만들때 외국엔 이런 좋은게 있고 우리에겐 화랑, 상무정신이 있다고 동급으로 딸딸이 칠때 잘써먹는다.

물론 그 정훈교육용 자료를 만드는 분들은 생계형비리에 오늘도 여념이 없으시다.

높은 분들이 정훈교육용 자료를 만들리가 없다. 다 밑의 노예나 많이 올라가봐야 장교들이 하니까.

그래도 그나마 헬조선에선 유일한 박사님이 이걸 실천하셨다. 헬조선에 유일한 박사님 같은분들만 있었다면 우린 독일을 뛰어넘는 선진국이 되었을거다.

대영제국[편집]

그냥 우스갯소리로 대영제국이 망한이유는 엘리트들이 최전선에 모범을 보이다가 하도 많이죽어서 망했다는 말이있다.

일단 대영제국 시절에 영국 장교나 군 지휘자는 전부 엘리트 귀족출신인건 맞다.2차세계대전때 나치독일이

영국 런던 공습할때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어머니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은 정부관료들이 공습이라고 대피해야

된다고 할때 끝까지 거부하고 버킹엄 궁전에 남아서 런던시민들을 독려했다.히틀러한테 유럽에서 제일 위험한 여인

이라는 소리를 들었다.엘리자베스2세 여왕은 보급수송장교 복무했다. 그러나 하는 일은 차량정비병과 동일한데

왕족이게 병졸 계급을 줄 수 없어서 이렇게 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대위로 제대했다. 그것도 안하는 헬조선 기득권 자식들은 양심

이 없다는것이다

영국에서는 평민은 모병제지만 왕족은 장교로 징병당하는 징장제(徵將制) 대상이다.

심지어 이런 놈들마저[편집]

마오쩌둥 장남 마오안잉이 6.25전쟁 참여해 북한에서 죽었고 그게 지금까지도 중국=조선은 혈맹이라는 홍보 역할을 하고 있다.

원래 마오안잉이 배치되었는데 아무리 계급이 없다고는 해도 그래도 마오쩌둥의 아들인데 병졸의 보직을 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송시륜은 가장 안정하다는 사령부에 마오안잉을 배치하고 보직도 정보작전통역장교와 같은 일을 하는 보직을 줬다. 마오안잉이 영어를 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령부가 폭격 당했고 마오안잉은 그렇게 구워졌다. 이에 마오쩌둥은 자기 아들의 시체를 북한에 매장해서 중국=북한은 영구 혈맹으로 하자고 했고 이에 김일성은 마오안잉이 주인니뮤의 아들이자 곧 세자 저하라서 북괴령 중 회창군(舊 성천군곡산군 일부)에 위치한 인민지원군 총사령부 열사릉원에 묻혔다.

숙청의 신 스탈린도 독소전 당시 장남 야코프 대위가 전쟁에 나갔다가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혔는데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에서 잡힌 프리드리히 파울루스와 포로 교환 제안을 했으나 스탈린은 "그러면 모든 소련군 포로들을 데려와서 독일군 포로들과 교환하자. 수많은 소련인들이 자기 자식을 전쟁터에 보냈는데 내 아들 하나만 뺄 수 없다."라는 명언을 남기고 장남 야코프는 수용소에서 죽었다.

헬조선 역사상 잘 실천한 분들[편집]

임진왜란과 6.25전쟁 때는 헬조선식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있었다. 선조는 내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정신을 실천했다.

평양에서 점심 먹는 건 다 구라입니다. 서울 시민은 한강 다리 못 건너서 죽어도 내가 살면 희망이라는 걸 몸소 보여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