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도요토미 히데츠구

조무위키

이 문서는 호구를 다룹니다.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의 호구력은 블랙카우마냥 말랑말랑합니다.
파일:한신(초한지).png 이 문서는 누군가에게 버려진 대상에 대해 다룹니다.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단물만 쪽쪽 빨리고 버려졌습니다.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는 삶겨지는 법입니다.
주의!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병신입니다.
그냥 개좆병신 그 자체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한테 이용 당하고 버려진 히데요시의 양자.

히데요시의 누나의 아들이자 관백 자리에까지 오른 남자였지만 태합 히데요시 앞에서는 얄짤없이 숙청이었다고 전한다.

시즈가타케 전투, 코마키 나가쿠테, 시코쿠전, 오다와라 정벌 등의 각종 전투에 참가한 이력이 있다. 뭐 그렇다고 딱히 군략의 재능이 뛰어났다거나 한건 아니다. 특히 코마키 나가쿠테 때는 도쿠가와 이에야스한테 존나 쳐맞으며 간신히 도망갔기도 했고, 심지어는 지 장인어른이었던 이케다 츠네오키가 이 전투에서 뒤지기까지 했다.

여하튼 히데츠구는 덴쇼 19년이 지나 히데요시의 양자로 들여졌다. 본래 히데요시에게는 츠루마츠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하필이면 태생부터 몸이 약한 탓에 얼마 못 가 죽어버렸던 것이다. 히데요시는 어떻게든 츠루마츠를 살리기 위해 각종 명의, 심지어는 서양의 의사에게까지 매달렸었다고 한다. 물론 그게 다 소용이 없어서 죽었던 거지만. 츠루마츠를 낳을 당시만 해도 히데요시는 이미 53세의 나이여서 더 아들을 낳을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갖기 힘들었는데, 이러한 배경이 있어 히데츠구는 히데요시의 후계자로 들어올 수가 있었던 것이다.

양자로 들어온 후 히데츠구는 정점 중의 정점이라는 관백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딱 이대로만 갔으면 다음 천하인은 히데츠구의 것이 분명했는데 이게 또 기구한 팔자인 것이 히데요시의 새 아들내미인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태어나버렸다. 당연히 히데츠구는 소외받기 시작했고 급기야 1595년에 들어서는 모반을 획책했다는 의혹까지 받게 되었다. 해명을 하기 위해 후시미로 찾아갔지만 변명이고 나발이고 인성 뒤진 히데요시는 히데츠구를 용서해주지 않았다. 뭣보다 대면도 해주지 않았다. 사나다마루 같은 대하드라마에선 어떻게든 이 사건으로부터 히데요시의 인성을 구해내려고 시도하던데 그딴 연출은 안 하느니만 못하더라. 히데츠구는 코야산으로 묻힌지 얼마 안 되어 할복했고 그의 처자식들은 히데요시한테 효수당해 히데츠구의 머리통과 함께 교토의 산죠가와라에 전시되었다. 존나 웃긴건 히데츠구의 처자식 뿐만이 아니라 그를 모시던 시녀들까지도 처형의 피바람에 휘말렸다는 것이다. 무슨 레지던트 이블 좀비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왜 그리 지랄을 했는지.

코야산으로 간 히데츠구는 출가를 했음에도 히데요시의 병신짓을 피해가지 못했다. 사실 출가한 사람을 강제로 할복시키는건 상상도 못할 짓이다. 히데츠구 자체가 동물,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즐기고 각종 음란한 짓을 했다는 얘기가 있기는 하지만 그거랑은 별개로 이미 할복한 사람의 목을 베고 그 처자식들까지 죄다 죽여 목을 벤 다음 나란히 전시를 한다는건 진짜 생각도 못할 일이다. 근데 그걸 히데요시가 해냈다. 심지어는 측실이지만 나이가 얼마 되지 않아 정식으로 맞아들이지도 않은 코마히메(모가미 요시아키의 딸)까지도 함께 죽임을 당했다. 여자들은 대개 살려두는게 관습이었는데 이걸 히데요시가 한번 더 해냈다. 이렇듯 딸의 죽음에 고통받던 모가미 요시아키는 어이없게도 근신 처분까지 당해야만 했으며 코마히메의 모친은 딸이 죽은지 얼마 안 되어 사망해버리고 말았다. 히데요시 이 미친 새끼는 도대체 몇번이나 해내는건지 모르겠다. 이런 짓거릴 다 했으니 훗날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모가미 요시아키가 기다렸다는듯 도쿠가와 쪽으로 합류한게 전혀 이상하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