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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오카 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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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 보아라, 이적료는 대체 어디로 사라졌냐 이거야!
용두사미!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용두사미 그 자체입니다.
처음에는 기대도 많이 받고 인기도 많이 얻었지만 가면 갈수록 좆퇴물이 되어버렸습니다.

일본 국적의 축구선수. 주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인데 공미랑 수미도 볼 줄 알고 날개나 섀도우 스트라이커, 중앙 공격수까지도 소화한 경력이 있는 선수이다.

비셸 고베에 입단하면서 축구를 시작하였는데 계속적으로 우수한 활약을 하다가 폴란드 리그의 실롱스크 브로츠와프로 이적하였다. 그러고 맞이한 첫 시즌 실상 그 당시에도 일본의 유럽 진출 정책 덕에 촉망받는 유럽파는 널리고 널렸기에 딱히 기대를 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사람들의 시선을 후술할 예정이듯이 180도 뒤집어버리게 된다.

첫 시즌 모리오카는 리그 15경기 출장 7골 2도움을 기록하며 단 한시즌 치루고 팀의 주전이 된다. 그 이후 두번째 시즌에도 38경기(리그 36경기) 8골 9도움을 기록하면서 일본 국대를 이끌 차세대 선수로 주목을 받음과 동시에 혼다의 대체자로써도 어느 정도 주목을 받게 된다.

그리고 활약에 힘입어 벨기에 1부리그의 바슬란트-베베런으로 이적하게 된다. 그러나 언론은 차가웠다. 당초에 폴란드 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했다 하지만은 벨기에리그와의 수준의 벽이 있기에 좋은 활약을 못할 거라는 추측이 팽배하였다.

ㄴ 물론 한국언론은 아예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그러나 모리오카는 여기에서 자신에 대한 평가를 또 뒤집었다. 무려 39경기(리그 36경기) 10골(리그 8골) 9도움을 기록하면서 벨기에 리그에서의 첫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다. 정말 조금만 더 했으면 첫 시즌 만에 10-10 클럽행이라는 엄청난 활약을 할 뻔 했지만 도움 하나가 모자라는 바람에 실패한 것이 아쉬운 점이긴 했다.(물론 리그랑 컵 대회 다 합쳐서 말이다.)

이런 활약을 한 모리오카를 빅클럽들이 가만히 보고만 있었겠는가? 당연히 아니었고 결국 벨기에 리그 최고의 명문팀인 안데를레흐트로 이적하였다. 자고로 일본인 최초 이적이자 현재까지는 유일한 안데를레흐트 출신 일본인이다.

이 당시 부터는 한국언론에서도 모리오카에 대한 뉴스를 내놓는 등 내심 모리오카를 주목하였다.

안데를레흐트 이적 이후에는 좁은 입지 속에서도 리그 6경기 3골 3도움 플레이오프에서는 10경기 3골 1도움으로 총 16경기 6골 3도움을 기록하였다. 바슬란트-베베런 시절보다는 확실히 떨어지긴 했지만 입지가 좁았다는 점을 보면 확실히 우수한 활약을 했다. 이 때부터 모리오카의 이름이 한국에도 어느 정도 알려졌다. 그러나 혼다나 카가와처럼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다.


파일:떡락.gif 뜨어어어어억락 가즈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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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떡락해도 추해진 것들이니 부디 미리 손절하길 바라며, 구조대 기다리다 한강에 빠지거나 해도 디시위키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사실 여기까지만 본다면 그냥 준수한 선수아닌가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 이후부터 모리오카의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안데를레흐트에서의 두번째 시즌. 리그에서도 6경기 밖에 나오지 못하고, 유로파리그에서도 3경기 밖에 나오지 못하는 등 한 시즌 만에 입지도 그렇고 실력도 그렇고 하나 같이 폭망하게 된다. 이로써 가뜩이나 좁았던 모리오카의 입지는 더욱더 좁아지고 말았고 결국 시즌 중 벨기에 리그 중위권 팀인 스포르팅 샤를루아로 임대를 가게 된다. 임대에서는 리그 6경기 1골 1도움을 기록하면서 다시금 재기하고 플레이오프에서도 7경기 3골 1도움을 기록한다. 유로파 지역예선에서도 2경기 출장하면서 준수하게 활약하였다.

그리고 안데를레흐트에서의 다음 시즌을 기약........하기는 커녕 샤를루아가 임대 이적에 포함되어 있는 완전이적 옵션을 발동시키면서 결국 안데를레흐트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샤를루아 완전이적 이후에 맞는 첫 시즌엔 29경기 출장 6골 5도움을 기록하였다. 확실히 안데를레흐트 시절과는 달리 주전으로 안착하면서 중원 조율자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하지만 문제는 나이가 29세라는 점이다.

현 시점에서는 8경기 출장 1골 3도움을 기록중이다. 노쇠화의 영향을 좀 받을 것으로 보인다.

국대에서는 꼴랑 5경기 밖에 출장하지 못했다. 당초에 당시에 동나이 대였던 고바야시 유키와 쿠보 유야의 영향이 적잖았기에 밀려난 영향이 크다. 결국 혼다의 대체자랍시고 각광받았지만 그냥 나가리가 되고 만 케이스이다.

여담으로[편집]

꺼무위키에는 이 선수에 대한 문서가 없다. 그나마 디시위키엔 이 문서가 있다는 게 경쟁력이 될 지도 모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