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유천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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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天弓

왕건의 첫번째 장인어른.

본래 정주[1]의 이름난 금수저로서 삼중대광(三重大匡)이라 불렸고 정주의 주민들은 그의 집을 장자댁(長者)이라고 불렀다.

개성의 왕륭, 평주박지윤, 황주황보제공과 함께 패서의 이름난 대호족중 한명이었는데, 닉 퓨리양길에게 빅엿을 날리며 명주, 삭주북부를 기반으로 독립을 하자 왕륭, 황보제공, 박지윤과 함께 닉퓨리에게 붙었다.

왕건의 첫번째 부인인 신혜왕후의 아버지로 왕건이 시냇물에서 본 신혜왕후에게 뻑가서 유천궁의 집을 방문하자 유천궁은 그에게 엄청난 환대를 하면서 자신의 딸을 왕건에게 주게 되었다.[2] 그리고 그의 딸은 왕건이 소식이 끊기니까 아주 잠깐 비구니가 되었다가[3] 왕건닉 퓨리를 쫓아내고 고려를 건국하는데 기여하게 된다.[4]

  1. 貞州. 지금의 개풍군 남서부 해안지역으로 조선시대때 바로 동쪽에 있던 덕수현과 스까되어 풍덕군이 되었다.
  2. 디테일하게 따지면 유천궁이 딸에게 왕건과 꼐임을 하도록 했다고 한다.
  3. 다행히도 이 소식을 들은 왕건이 황급히 찾아와 그녀와 혼인을 하면서 바로 일반인으로 돌아왔지만.
  4. 왕건닉 퓨리한테 죽창을 날리는 것을 주저했을때 "의로써 악한것 뚜까패는것이 당연한것이고 아녀자인 나도 의를 지키기 위해 싸웠는데, 대장부는 말이 필요합니까!"이런식으로 말해서 왕건을 설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