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이재명(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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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1910

1909년 무려 2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모든 일뽕의 아버지이자 매국노 이완용에게 칼빵으로 1킬을 먹이려 했으나 안타깝게 실패하여 돌아가신 분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찢재명과 동명이인이지만 한자가 같다. 행적 역시 정 반대로, 청년 독립투사 이재명 선생은 나라를 위해 이완용을 칼빵으로 찢으려고 한 반면 찢재명은 형수 보지를 찢으려던 새끼가 분수도 모르고 대선판에 나와 나라를 말아 처먹으려 한 것이 가장 큰 차이라 할 수 있다.

ㄴ 찢으려고 했다는 건 똑같다.

사실 이완용이 그때 뒤질 뻔했는데, 하필 그 타이밍에 선진적인 외과 의학이 들어와서 수술[1] 받고 안 뒤졌다. 조금만 더 깊이 칼빵을 날리셨다면 이완용은 뒤졌겠지.

잡혀간 뒤 재판에서 왜놈 판사가 "이 짓에 동참한 공범이 있는가?"라고 묻자 "2000만 우리 동포가 전부 내 공범이다!"라고 패기롭게 일침을 가하고, 사형 집행 직전에도 "나는 죽어 수십만 명의 이재명으로 환생하여 기어이 일본을 망하게 하고 말겠다!"라고 패기롭게 외치고 순국했다. 향년 23세.

ㄴ 이재명 의사가 오늘날 재매이햄이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려 하는 짓거리를 보면 그저 피눈물 흘릴듯

쪽바리 판새가 살인 및 살인미수로 사형 선고했다는데 살인미수는 두말할 것 없이 이완용이고, 사형은 이완용을 손님으로 태우려던 인력거꾼 박원문이 이재명 의사의 습격을 막으려다 그대로 칼빵 맞아서 죽은 것을 반영했다. 즉, 이재명 의사에게 적용된 살인은 이완용의 살인 미수가 살인으로 뻥튀기된 게 아니고 박원문이 죽은 것을 적용한 것이다. 죄 없는 사람이 죽었다는 점은 공판 과정에서 이재명 의사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새파란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다행히 칼빵맞은 대가로 이완용은 죽을 때까지 17년 동안이나 칼빵 맞은데 때문에 골골대고 병원 신세를 면치 못하다가 뒈졌다.

느그들은 스무 살 때 뭐했냐

ㄴ 디시질이나 하면서 욕받이로 산다.
ㄴ 자랑이다 ㅉㅉ
ㄴ 그래도 난 디시질만 하진 않았다
ㄴ 우리 민족의 얼 한복 만들고 있다
ㄴ 수능 끝난 고등학교때 동아리 후배한테 아다 뗌

백범일지에는 당시 상황이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당시 황해도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던 김구가 같이 일하는 여교사의 젊은 남편이 권총으로 마누라를 위협하는 것을 보고 총을 빼앗아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버렸는데, 이 젊은이가 바로 이재명 의사였고, 이재명 의사는 포기하지 않고 서울에 도착해 칼빵을 날리는데 성공한 것이다.

정확히는 여편네가 무모한 짓이라고 만류했으나 이재명 의사가 "이 씨발년이 나라가 중요한 지를 모르는구나"하고 총으로 죽이려 위협했고, 킬구는 이재명을 헛된 열정에 들뜬 젊은이로 보고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고 했단다.

196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어 현충원에 위패가 안장되었다.

여담이지만 독립운동가 이재명이 순국하신 12월 22일이 1964년생 찢재명의 호적상 생일이란다. 그래서 1964년생 찢재명이 이분을 언급하며 추모했지만 한쪽에서는 숟가락 얹기라고 욕했다.

  1. 이 수술이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시행한 흉부외과 수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