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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왕국 vs 동로마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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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왕국 vs 동로마 제국

중세 서유럽 패권국과 동유럽 패권국의 역사 대결

개요[편집]

역덕들의 떡밥중 하나

서로에게 관심도 없었던 로마제국과 한나라랑은 달리 이쪽은 계속 치고받고 사이가 안좋다. 전성기시절 두 나라를 비교하면 누가 이기는지 모르겠다. ㅇㅇ 로마 제국이랑 한나라는 확 비교가 되던데

자존심 강한 두 천재의 대결[편집]

현실은 동로마가 개쫄아서 발렸다.

ㄴ 어디 프랑크족 따위가 로마제국한테 깝죽거렸데냐. 로마가 이탈리아에 총독부 설치하니까 바로 도게자 박던 야만인들이.

ㄴ 파리 자택에서 검거

현실은 시궁창[편집]

한줄요약:둘은 서로 싸울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동로마는 상비군이 30만에 달할 때도 있었지만 제국이 졸라 넓어서 분산되어 있었고 프랑크는 상비군이 몇만명인지는 모르겠다.

중집도가 떨어지는 프랑크제국이 상비군이란게 있는지나 의문이다. 봉건제라 전쟁터지면 대영주들한테 병력 소집하는 식으로 운영했고 상비군이랄게 국왕 직속군대정도일 테고 중세후기 신성로마제국은 상비군을 두지않고 역시 전쟁이 발발하면 제국의회에서 각 소속영방국에서 군대를 일정양만큼 소집해서 연합군을 편성, 제국 황제가 총사령관으로 지휘하는 방식으로 운용했다.

사실 카롤루스 대제 때 이탈리아 쪽에서 몇 차례 교전이 있었던 것 외에는 직접적인 큰 교전은 없었다. 이유는 카롤루스의 부왕인 피핀이 메로빙거 왕조를 타도하고 카롤링거 왕조를 개창할때 교황의 승인을 얻었는데 그 대가로 동로마영토인 중부 이탈리아 영토를 프랑크왕인 피핀이 멋대로 교황에게 넘겨버렸기 때문이다. 이를 피핀의 기증이라고 한다. 한술 더떠서 프랑크는 내침김에 남아있던 이탈리아 남부까지 찍접거려 동롬에선 이를 상당히 재수없게 여겼다.

그리고 교황은 동로마 황제와 콘스탄티노플 총대교구의 간섭이 재수없었기 때매 피핀시기 부터 프랑크와 붙어먹었으므로 그 아들 카롤루스 대제에게 서로마제국의 황제의 관을 씌운게 양국 관계의 악화의 결정타였다. 사실 동로마제국은 한국사로 치자면 둘다 고려지만 고대 고씨고려를 고구려, 중세 왕씨고려를 고려로 구분하는것처럼 후대역사가들이 구분을 위해 부르는 이름일뿐 정식명칭은 동서로마분할 이전이나 이후에나 쭈욱 로마제국이었고 분할 이후에도 두나라 정부는 지극히 서로를 그켬했지만 표면상 로마는 한나라였다. 그래서 멋대로 (동롬입장에선 지자체인)서로마황제를 맘대로 폐한 오도아케르는 친히 동롬이 토벌한거고 일단 오도아케르는 동롬에 서로마황제직을 반납했기 때문에 동롬입장에선 카롤루스의 서로마=신성로마제국은 참칭왕조에 불과했던것이다. 이는 마치 서진멸망후 흉노족이 한나라로부터 유씨를 받은것을 근거로 한나라의 계승을 주장하며 천자를 먹고 국호까지 한으로 하였던 전조의 예와 비슷하다고 할수있다.

근데 이당시 동로마는 꿀땅 이집트와 북아프리카, 레반트, 시리아 영토를 모조리 이슬람에게 빼았기고 이슬람제국 아바스왕조의 대치중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굳이 프랑크를 자극해서 양면전선의 수렁에 빠져 ㅈ댈필요는 없었고 카를로스도 주는거니까 황제관을 받긴했지만 교황과는 좀 거리두기를 하는중이라 양자는 더이상 서로를 자극하지 않고 동롬측에서도 프랑크왕국의 황제 참칭에 대해서는 정통 오브 정통이자 찐 로마황제는 동로마황제인 나 뿐인게 맞고 걍 (게르만 미개야만인 오랑캐새끼들)황제는 프랑크왕인 너라고 승인해주면서 일단 일단락된다. 이후 카를로스 대제가 동로마여제와 결혼해서 동로마 제위까지 먹으려다가 동로마인들이 '자가 이름도 못쓰는 미개토인 야만인 게르만 오랑캐랑 우리나라 황제가 결혼하는꼴 못보겠다~'고 들고일어나 황제를 폐위시켜 불발되었다.

이후 프랑크 왕국이 신롬과 프랑스 왕국으로 갈라지면서 동롬과 신롬 사이에 헝가리가 끼어 있어서 직접적으로 영토를 접하지 않고 있기도 했고, 신롬은 신롬대로 서유럽 쪽과 교황과의 주도권 싸움으로 바빴고, 동롬은 유럽쪽과 아나톨리아쪽의 양면 전선에 정신 없었기 때문이다.

번외:중세의 승리자/최후의 승리자는 프랑크[편집]

사실 이렇게 양국 사이가 관계가 험악해진것은 영토라는 현실적 문제보단 정통성문제다. 왜냐하면 로마법상 로마황제는 오로지 로마인만 가능하다 라는 것이었고 콘스탄티노스 대제이후 로마 국교화된 기독교의 세계관상 오로지 이세상에 존재해야하는 마지막 7번째 제국은 로마제국이다 이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아래에서 설명하듯 유럽의 짱깨, 서유럽의 개깡패로 불렸던 프랑스는 로마황제는 참칭하지도 못했고 나폴레옹이 철수대왕과의 연고를 대며 프랑스인의 황제만을 자처했으며 대영제국을 이룩한 영국도 무굴제국으로부터 양위아닌 양위를 받아 인도제국 황제를 자칭하기 전까진 황제의 황자도 못꺼냈으며 그나마도 영국왕겸 인도황제였다. 그나마 로마제국과의 연고를 깨고 나폴레옹이 황제를 참칭한 이후부터 오스트리아, 러시아, 독일이 황제를 칭하는등 황제 인플레가 일어났다. 물론 동롬을 정복하고 로마황제를 자칭한 캐밥은 아무도 로마황제로 안쳐주고 술탄이라고 불렀을뿐.

물론 프랑키아 제국은 카를 대제의 못난이 아들 3형제가 갈라처먹고 그 아들의 후손들도 직계가 끊어지면서 카롤링거 가문은 멸문되었고 그나마 방계친척인 카페가문이 프랑스 왕국을 이었지만, 프랑스의 어원이 프랑크제국 임에도, 나폴레옹이 카를대제의 서로마황제 대관을 명분으로 삼아 프랑스 제국을 선포할때까지, 프랑스 왕국은 중세(서)로마제국 황제타이틀을 단 한번도 못먹는다 프랑스 왕들이 신롬황제선거에 도전하기도 했지만 결국 나폴레옹이 따로 프랑스인의 황제직위를 신설하고 친히 신롬을 작살내기 전까지 한번도 신롬황제를 못먹었다 안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독일 니네 신롬 황제관 쓰는동안은 서로마 황제로 쳐주긴 하겠는데 프랑스 왕은 프랑스안에선 황제나 마찬가지니 니놈 부하따위 아니니까 썩 꺼져라' 라고 외왕내제를 선포할정도로 강성했다. 유럽의 중국이란 별명만큼 인구가 쩔었다.(물론 루이 14세~나폴레옹이 전쟁질 한다고 그 인구 다 까처먹었다. ㅉㅉㅉ 막타로 1차대전때 청년인구 3분의 1이 갈려나가고 영원히 인구대국 타이틀 상실 ㅊㅋ)근데 망하기는 신롬과 그 후예인 오스트리아제국, 독일제국보다 먼저 왕정, 제정이 차례로 망했다. 안습

정통성이나 문화 수준에서야 동로마가 신롬보다 우월했다곤 하지만, 유럽 전체에 끼치는 영향력이나 군사력은 신롬이 딱히 동롬에 꿀리지 않았다. 사실 카롤링거르네상스라고 불릴정도로 카를대제도 비록 자신은 문맹이지만 라틴어를 할줄알정도의 교양인이었던지라 (사실 예나 지금이나 서양은 먹물취급은 영 별로라서 중세 기사계급=서유럽 지배계급은 용맹과 무력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고 문맹인 상태로 있는걸 선호했다)문화나 교육에 상당히 신경을 썼고 중세 암흑시대라는 근대의 편견과 달리 현대에 와서는 중근세라고 불릴정도로 서양중세는 고대와 근대를 칼처럼 자르는 어떤것이 아니라 고대국가의 한계인 로마제국의 한계를 극복하고 로마제국에서 불리된 서유럽 각국이 각자 근대로 나아가는 발전의 시기이기도 했다.

특히 중세 말기로 갈수록 동로마는 국력이 떨어지고 신롬은 국력이 올라갔기 때문에 신롬은 중간에 끼어있는 헝가리나 불가리아를 이용해서 동로마에 대신 시비거는 전략을 자주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