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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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 꼬추 서요?
허참
許參 | Heo Cham
기본 정보
본명 이상룡(李相龍)
국적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출생 1949년 11월 30일
황해도
사망 2022년 2월 1일 (향년 72세)
학력 영남상고 - 동아대 경영학과 학사 - 중앙대 경영학 석사
직업 방송인, 가수, 배우
종교 개신교

개요[편집]

전국 가족오락관의 명MC.

2022년 2월 1일 간암 투병 중 별세하셨다.

생애[편집]

허참은 1949년 황해도에서 태어났지만 6.25 전쟁 당시 아버지가 가족들을 데리고 경상남도 부산시(현 부산광역시)로 피난을 와서 부산시 서구 부민동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부산지방법원에 주사로 취직하여 어린시절 상당히 부유했다고 한다. 그래서 국민학교때 도시락도 소고기 반찬을 싸가서 친구들이 부러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단 한번도 부정을 저지른 적이 없었다고 한다. 한번은 아버지가 윗선에서 청탁을 요구받았는데 아버지가 그날로 신분증을 집어던지고 한동안 출근을 안했다고 한다. 같은 부서 동료들이 겨우겨우 설득해서 다시 출근했을 정도라고 한다.

허참은 어린시절부터 다재다능했다고 한다. 그림에도 솜씨가 있어서 1956년 부민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학교 대표로 미술대회에 나가서 여러번 상을 탔고 크리스마스 카드도 직접 만들어서 팔았을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 그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것은 웅변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라디오 드라마에 심취하여 영도 등대 앞에서 혼자서 따라하며 웅변 연습도 많이 했다고 한다. 허참의 부모님도 그런 허참을 웅변학원에 보냈다고 한다. 다만 허참의 부모님은 허참을 정치인으로 키우기 위해 웅변학원으로 보냈다나 뭐라나. 그렇게 허참은 재치있는 말솜씨와 독특한 발성법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중학교 때 가세가 기울어서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돈벌려고 영남상고에 입학했다. 어릴때는 실컷 먹던 소고기를 이때부터 먹지를 못해 크면 정육점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대나 뭐래나.

1970년 영남상고를 졸업하고 바로 군대에 입대한 허참은 군대에서 이등병 시절부터 각종 웅변대회에 나가서 줄곧 1등을 하고 당시 문화선전대 진행요원으로 발탁되어 군생활 내내 위문공연 MC를 진행했다고 한다. 당시 10월 유신이 선포되어서 군 내에서 유신헌법을 홍보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는데 대대장이 직접 허참에게 유신헌법을 홍보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당시 허참은 유신헌법이 뭔지도 몰랐지만 까라고 하니까 그냥 존나 찬양했다고 한다.

1973년 방송인이 되고 싶어서 여동생이 결혼자금으로 모아뒀던 3만원을 빌려서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그렇게 지인들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다가 중구의 문화방송 본사 근처에 있는 친구의 구멍가게에 정착했다.

그러던 중 당시 라디오 DJ인 이종환이 운영하던 통기타 라이브클럽인 쉘부르에서 오란씨 무료시음회를 한다고 해서 오란씨를 마시러 갔다가 통기타 그룹 쉐그린의 행운권에 당첨되어 무대 위로 올라가게 되었다. 무대위에서 평소 문선대에서의 경력을 살려서 재치있는 입담으로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이 배꼽을 잡고 웃게 만들었다.

그걸 본 이종환이 허참의 재능을 알아보고 "당신의 이름이 뭡니까?"라고 묻자 허참이 "아... 글쎄요, 생각이 안납니다"라고 능청을 떨었다. 그러자 이종환이 "허, 참! 자기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있답니까?"라고 어이없어하자 허참이 "아 그래요, 내 이름이 허참입니다"라고 맞받아쳤다. 허참이라는 이름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이후 허참은 이종환과 함께 "허참"이라는 이름으로 방송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가족오락관과의 운명적 만남[편집]

원래 TBC에서 쇼쇼쇼 프로그램을 맡고있다가 TBC가 언론통폐합으로 KBS가 되자 자연스럽게 함께 KBS로 오게 되었다. 그러던 중 1984년부터 KBS의 가족오락관 프로그램을 맡게 되었다. 허참과 함께 진행했던 여성MC는 계속 바뀌는데 허참은 수십년간 계속 고정진행이었다. 특히 "가족오락관 점수, 몇대~ 몇!"은 가족오락관의 메인 멘트였으며 허참의 대표 유행어였다.

허참은 1984년부터 2009년 가족오락관이 종영할때까지 교통사고로 펑크낸 것을 제외하고 25년간 단일프로 최장수 MC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이 기록은 2019년이 되어서야 전국 노래자랑송해에 의해 깨지게 되었다.

사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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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1일 간암 투병 중 사망

2022년 2월 1일 지병으로 앓아오던 간암으로 갑작스럽게 별세했다. 주변 사람들이 걱정할까봐 투병사실도 생전 그와 제일 가까운 사이였던 조용필, 이홍렬 말고는 알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송해는 자기가 죽으면 허참에게 전국 노래자랑 MC를 물려주겠다고 했는데 허참이 먼저 죽어서 슬퍼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같은해 6월 8일 송해도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