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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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경고! 이 문서는 히틀러 같은 나치 놈들이 매우 좋아하는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나치 놈들이 극도로 좋아할 만한 대상입니다. 하켄크로이츠와 친위대 문장 같은 상징들이 있으므로 네오 나치들도 쌍수 들고 매우 환영할 정도입니다.
HEIL MEIN FÜHRER!

2차대전으로 독일로 오는 코카콜라가 끊기자 나치독일에서 스스로 개발한 음료다.

당시엔 나치의 물자난으로 개쓰레기에 가까운 찌꺼기들로 제조되었으나 전후 제대로된 재료를 사용하며 제조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2차대전당시 나치들은 유대인이 맹수에게 고통받는 그림이 그려진 환타를 독일군에게 지급하기도 했다고 한다.

의사 한정 PTSD다. 환자가 올 것 같은 예감이 들게 하는 음료라서다.

전체적인 평가[편집]

콜라사이다보다 환타가 더 낫다고 하는 사람도 은근 많다

탄산음료 중에 환타가 제일 자극적인 거 같다.

졸이면 시럽처럼 된다. 콜라 졸인 것보다는 먹을 만하다는게 일반적인 평.

음료 종류[편집]

오렌지맛[편집]

존맛. 그냥 제일 무난하다.

파인애플[편집]

맛있는데 호불호가 갈린다. 개인적인 입장인데 비누 먹으면 저 맛 날거 같다. 근데 마이쩡. 파인애플 치약맛이 나서 마시고나면 양치한듯한 느낌을 준다.

파인애플도 갠적으로 추천인데,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포도맛[편집]

가끔 먹으면 맛있다. 약간 웰치스같은 느낌이다.

포도맛도 존맛임

블루베리맛[편집]

이거 왜 한국엔 없냐 ㅡㅡ 이거 ㅈㄴ 맛있다. 해외에선 간간히 보이더만

태국가니까 블루베리맛 있더라 베트남에도 있다 비교적 맛있다

광고[편집]

시바 이번에 새로나온 광고 존나 못 만들었다.이게 광고인지 보는 사람도 민망하게 만들었다. 근데 노래는 개띵곡이다 Jason Derulo - "Kiss The Sky" 들어봐라 ㄹㅇ띵곡

유튜브에 상큼한 케미폭발에 1인1환타 어쩌구 운운하면서 막춤추는 광고가 나오는데 존나 못 만든 주제에 왠 이상한 두꺼비새끼 나오는 진로소주 광고랑 둘이서 계속 나와서 짜증난다. 그만좀 나오고 니네끼리 처마셔라

혼종들[편집]

환타 쇼카타의 사진, 이름이 뒤집어져있다.
환타 쇼카타의 사진2

전세계적으로 100가지 이상의 맛이 존재한다.

세르비아 , 알바니아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 크로아티아 등 일부국가에선 전통적인 약간의 알콜이 함유됀 발효음료수인 "Socată" (엘더나무의 꽃 음료수)와 레몬을 베이스로한 "Fanta Socată" 라는 음료수를 만들어 판매한다. 간혹 판타라는 이름이 뒤집어진게 있다고한다

대체적으로 오랜지 환타는 독일에서는 진짜로 오렌지 과즙이 들어있고 캐나다에서는 만다린 오랜지의 주스가 포함되어있지만 미국에선 대체로 오렌지 향만 들어간다. 그리고 캐나다 환타에선 크림소다와 포도소다가 있는데 둘다 포도가 들어간다고 한다.

코카콜라가 두번째로 생산한 음료이기도 하다.

젤리를 넣어서 흔들어 먹는것도 있었다.

어두운 역사[편집]

나치를 상징하고 얻어맞는 유대인을 그려넣는등의 유대인을 탄압하는 상징이기도 했다.

 "제 2 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코카콜라 회사는 아이러니에 직면했다. 지난 10 년 반 동안 해외 제국을 건설하려는 모든 노력에 대해 실패한 나치 독일을 가리킬 수 있었다. - Frederick Allen, Secret Formula

1933년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에서 권력을 잡았고 콜라도 많이 팔려나갔다.

맥스 키이스는 코카콜라의 독일 판매책을 인수하고 신속하게 정리후 판매를 혁명적으로 바꾸어 매년 기록을 경신했다.

키이스의 처음 마케팅의 승리중 하나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공식 음료수로 지정되기 하는것으로

그당시 히틀러에 눈에 콜라가 들어왔고 독일선수들이 많은 금메달을 수상했다.

나치독일은 전쟁을 준비했고 9월에 헤르만 괴링이 자급자족체제를 발표하면서 수입을 제한하는 정책을 펼쳐

외국기업에게 피해를 끼쳤다. 애틀란타 코카콜라의 로버트 우드럽 회장은 다른 임원들처럼 유럽사업을 보호하려고했다.

1937년 미국을 여행하던 독일의 소다 제조자가 코카콜라 병뚜껑에 히브리글자를 발견하였고 코카콜라 이사회의 유대인인

"해롤드 허쉬"가 운영했다고 주장한다음 독일에서 콜라 판매가 갑자기 급감했다.

키이스는 나치 독일 산업을 전시한 1937년 전시회에서 코카콜라를 중심에 놓았고 회사 사진가가 헤르만 괴링이 콜라를 즐기는 장면을 촬영했다.

독일군은 1938년 2월 체코의 수데텐란드 지역을 점령했고 3월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를 합병했다.

우드럽과 독일 콜라는 점령된 오스트리아부터 누가 판매로열티를 받아야하는지에 대해 법적인 논쟁을 했고 로버트 우드럽이 이겼다.

1939년 4월 히틀러는 50세게 됐고 독일 콜라는 10주년을 맞이했다. 축하행사에서 키스는 독일을 화려한 영토로 이끌어준 총통에 대한 깊은 존경과 감사를 기념하기위해 군중에 지크하일을 권고했다.

히틀러는 개인극장에서 "바람과함깨사라지다" 를 보며 콜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것으로 알려졌다.

키이스는 이후 제 3제국을 통해 독일과 독일 식민지에 있는 모든 청량음료 공장의 감독관으로 임명됐고

이탈리아 , 프랑스 , 네덜란드 , 룩셈부르크 , 벨기에 , 노르웨이에서 사업을 관리했다.

1939년 코카콜라는 독일에서 450만건의 판매건을 올렸다.

1940년 키이스는 여전히 수입제한히 강화될것을 우려하여 독일에서 만들수있는 음료수를 개발했다. 치즈를 만드는 유장과 사과펄프같은

찌꺼기를 이용했고 이 음료수의 이름에 대해 고민할때 수석 세일즈맨이 "Fanta" 라고 했고 그 새로운 음료수의 이름은 Fantasie의 약자인 판타로 정해졌다.

로버트 우드럽은 1941년 12월 미국이 전쟁에 참전할때까지 키이스에게 코카콜라 시럽을 계속 보냈지만 미국은 키이스를 적으로 선언후

우드럽과 키이스의 연락망을 끊어버렸다.

코카콜라 회사의 제품으로 분류된 환타는 사업과 브랜드를 계속 유지했고 거기다 환타는 라이벌 음료수보다 맛이 좋았기때문에

1943년에 300만건의 판매기록을 갱신했다.

전쟁이 끝난 1945년에 연합군의 "기술적 관찰"이 독일 산업을 장악했고 연합군은 키이스의 전범 기록을 조사하기위해 독일에 조사관을 보냈다.

이후 우드럽에 의해 회사에 복직된것으로보아 별다른건 없었던것같고 일부 짓궃은 사람들은 키이스를 "Super-Führer" 라고 비꼬기도 했다.

2015년 75주년을 맞은 환타는 환타 클래식을 제조해 판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