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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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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축구를 잘하는 대상이나 축잘알이며 축구 그 자체를 다룹니다!
제아무리 역풍이 분다 한들 축잘알의 향기는 온누리에 퍼져나가느니라.
말해 보아라, 가성비가 도대체 얼마나 뛰어난 것이냐 이거야!
이 문서의 인물은 역대 발롱도르 수상자입니다.

불가리아의 축구 선수. 현재는 해설위원으로 활동중이다. 불가리아인 최초의 발롱도르 수상자이며 FC 바르셀로나의 레전드.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득점왕에 오르고 불가리아를 4강으로 이끌어서 골든슈를 받았으며 같은 해에 발롱도르도 수상했다.

헤브로스 하르만리의 선수로 데뷔, 불가리아의 클럽인 PFC CSKA 소피아에서 6년여의 선수생활을 보내며 커리어를 시작한다. 그러나 그 지랄맞은 성질머리 때문에 1985년 불가리안 컵 결승전에서 패싸움에 휘말리게 되며 무려 영구 출전 금지라는 징계를 당하였다. 그러나 이후 징계는 한달 출장 금지로 줄어들었다.

1990년 30경기 38골이라는 놀라운 득점기록으로 전 유럽에서 탑 스코어러에 올라 유러피언 골든슈를 수상하였다. 이당시 CSKA와 바르셀로나의 맞대결에서 스토이치코프를 눈여겨 보고있던 한 감독에 의해 FC 바르셀로나로 스카웃 되는데 그 감독은 다름아닌 그 요한 크루이프였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이적 첫 시즌부터 주심의 발을 즈려밟았단 이유로 2달 출장 금지 징계를 먹는등 역시나 그 성질머리 때문에 삐걱거렸지만 돌아왔을땐 여전히 리그 14골과 컵대회 6골을 넣으며 활약하였다. 지금의 FC 바르셀로나를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크루이프의 드림팀' 소속으로서 라우드럽, 호마리우와 함께 유럽 최고의 공격진으로 극찬받으며, 팬들 사이에선 'El Pistolero' 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국가대표 활약상은 말그대로 레전드. 불가리아는 그전까지만 해도 월드컵에서 1승도 없었던 국제대회에선 별 볼일없는 나라였지만, 1994월드컵에서 스토이치코프가 이끄는 불가리아는 당시 가브리엘 바티스투타가 있던 우승후보 아르헨티나를 2:0으로 완파하는 이변을 낳았다. 16강에서는 멕시코를 만났고 8강에서는 독일을 만났는데, 마테우스의 선제골로 앞서나가던 독일을 스토이치코프가 동점골에 결승골 어시스트까지 올리며 2:1로 역전승. 1골 1어시로 맹활약하며 불가리아를 4강에 올려놓았다. 비록 이탈리아에게 패배했지만 이 4강진출은 현재까지도 불가리아 역사상 최고의 월드컵 성적으로 남아있으며, 스토이치코프는 6골의 기록으로 공동 득점왕으로도 선정되며 같은 해에 발롱도르까지 받으며 화려한 전성기를 보낸다. 유로1996에서도 혼자 2골을 넣으며 맹활약했지만 조별리그 탈락은 막지 못했다.

이후 다시 PFC CSKA 소피아로 돌아갔다가 여러 팀을 거쳐서 2003년 DC 유나이티드에서 은퇴하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