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쩐 레 쑤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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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ần Lệ Xuân (陳麗春)

소개[편집]

월남 제1공화국의 정치인으로 일명 '뉴의 부인(Bà Nhu)'이라 불렸다.

행적[편집]

이 새끼는 피도 눈물도 없는 개새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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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이 짐승만도 못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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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집안 어른들이 프랑스에 대항하던 애국보수 독립운동가들이고 쑤언 본인 또한 당시 베트남인 기준으로도 상당한 엘리트였기 때문에 독립 후 분단된 남베트남에서 아주버니이자 대통령인 응오딘지엠, 남편이자 아주버니의 정치고문인 응오 딩 뉴 다음 가는 3인자격 지위를 누렸다. 아주버님이었던 응오딘지엠이 독신주의자라 부인이 없어서 실질적인 퍼스트레이디 역활을 수행했었다.

또한 본인이 천주교 신자이다보니 낙태금지와 매춘불법화 등의 정책을 추진했지만 이 아줌씨가 1공 말기에 들어서더니 남편이랑 쌍으로 타락해서 아주버니의 족벌정치에 가담했다. 특히 이 여편네가 해쳐먹은 것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싸이공에다 본인 낮짝을 본떠 만들어 세운 이징부인의 동상이 있다. 게다가 천주교 우대 및 불교 탄압 정치 때문에 천모사 주지승인 틱 꽝 득이 거리에 나가 분신하자 이걸 보고 바베큐 드립이나 쳐댔다. 더 웃긴 건 원래 불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했다는거. 이런 개막장 행보 때문에 서양권에서는 "마담 뉴", "드래곤 레이디" 등의 별명으로 부르며 비하당했다.

결국 이 개념 단단히 말아먹은 발언은 남베트남 국민의 분노를 자아내어 대규모 시위를 벌이게 만들고 이때다 싶은 군부가 즈엉 반 밍을 주축으로 군사정변을 일으켜 아주버니랑 남편의 대갈통에 총알을 박아넣게 만들었을 뿐더러, 최종적으로는 본인도 가족 잃고 서방 여러 지역을 망명하다가(즈엉반민의 쿠데타에 여러 루트로 미국이 개입했다보니 미국 망명만큼은 거부했다.) 2011년에 로마에서 노환으로 객사하는 결과를 낳았다. 향년 87세. 죽기 전 베트남 정부에 귀국 요청을 했지만 그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나마 자식들이 이탈리아에서 기업인, 변호사 등으로 잘 나갔다보니 배 곪지는 않았다 카더라.

평가[편집]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베트남 적화통일의 1등공신이다. 불교탄압과 바베큐드립은 민심을 잃게 되는 원인이 되었고 이 후 베트콩들이 힘을 입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