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천마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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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신라 지증왕의 무덤으로 추측되는 곳이다. 왜냐하면 무덤이 무령왕릉과 비슷한 시기인 6세기초에 축조된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때 신라왕이 지증왕이었걸랑

유교탈레반의 나라 한국답게 경주 김씨 종친회에서 천마총이란 이름이 말의 무덤을 의미하므로 천마도 왕릉이 더 낫다고 지랄을 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왕릉으로 '추정중' 이므로 씹혔다.

박정희가 이때 정신을 차렸었는지 아직 부족하긴 해도 바로 전에 고고학이 씹미개해서 족쳐버린 무령왕릉보다 제대로 이루어진 발굴이었다.

사실 이때 고고학이 미개할수 밖에 없었던게 여태껏 한국인이 한국땅에서 무덤 발굴을 해본 경험이 바로 이전 무령왕릉 이전에는 전무했다. 그 이전에는 끽해야 금관총 정도인데 그건 일제가 도굴에 가깝게 파헤친거고 그마저도 4일컷으로 졸속발굴한거다. 한마디로 발굴 경험이 아예 전무했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방식으로 했던게 이 시기의 발굴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때 맨땅에 헤딩하는 방식으로 발굴을 함으로써 한국 고고학이 가장 급속도로 발전한 시기이기도 했다.

발굴 과정[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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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2년전 무령왕릉때 한국 고고학 역사상 최악의 발굴을 이미 겪어본터라 그 어느때보다 신중하게 발굴을 시작했다.

발굴팀은 원래는 황남대총이 목표였는데 조오오오오오온나 큰데다가(한반도 최대 규모 고분) 심지어 쌍분이라서 시간이 더 오래걸릴것으로 예상되어서 당시 155호분으로 불리던 옆에있던 상대적으로 작은 무덤을 연습삼아 먼저 발굴해보기로 결정했다. 심지어 당시에는 이미 흙으로 된 봉분이 풍화되어서 발굴하기도 훨씬 수월했다고

2년전 무령왕릉 발굴 때 기레기들이 개지랄을 한 것에 대한 반면교사로 이번에는 발굴하기 전 미리 철조망으로기레기들의 접근을 원천 차단시켰다. 그런데도 당시 전투능력 조지던 기레기들은 그걸 몰래 뚫고 들어왔었다고 한다. 심지어 발굴하고 있는데 철조망 밖에서 개쌍욕을하며 발굴팀을 위협했다고. 그도 그럴게 당시 보도전쟁으로 다른신문사에서는 보도된 내용이 자기 신문사에서 빠트리면 그날로 취재갔던 취재팀은 모가지가 날아가던 시절이다. 발굴팀은 기레기들의 현장 접근을 일체 막는 대신 기레기들을 단체로 불러놓고 현장 브리핑을 하는 형식으로 기레기들을 그나마 구슬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 생긴 브리핑 발굴은 아직까지도 실시하고 있다.

게다가 당시 경상도 지역에는 극심한 가뭄이 들었었는데 지역주민들이 이게 다 고분을 파헤쳐서 조상들이 노해서 생긴일이라고 발굴팀 사무실에 신발도 집어던지고 고성을 지르며 깽판을 만들었다고 한다.

출토 유물[편집]

천마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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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물을 욕보이게 하는 짓은 하지 맙시다.

천마도 발굴 순간.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이름의 유래인 천마도는 벽화가 아니라 안장에 쓰이는 장식품의 일종인 다래에 그려져 있던거니 착각하지 말도록. 위 사진에서 말 안장 옆에 달려있는 직사각형 장식품이 다래이다.

저 말은 페가수스와 비슷한 상상의 말로 추정되며 유니콘이라는 썰도 있다. 적외선 비추면 뿔이 보인다나? 참고로 겨드랑이에 돋아난 흰색 아라베스크 무늬가 날개이다.

이게 ㄹㅇ 개쩌는 발견인게 아직까지도 거의 유일무이한 신라의 회화도이다. 심지어 벽화도 아니고 자작나무 껍질에 그려진 그림이다. 나무껍질이 1500년동안 썩지도 않고 그림이 멀쩡하게 보존된다? 이건 ㄹㅇ 당시 보존기술이 ㅆㅅㅌㅊ라는것

금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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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 188호

발견 당시의 금관 모습. 부장자가 착용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원래는 천마도보다 이 금관이 먼저 출토되어서 천마총이아니라 금관총이라고 부를뻔했는데 이미 금관총이라고 불리는 무덤은 일제강점기때 발굴되어서 다른이름으로 불러야해서 고민하다가 마침 천마도가 발견되어서 천마총이 되었다고 한다.

시험삼아 발굴한 무덤에서 금관이 나오자 발굴팀은 그자리에서 기절할뻔했다고. 근데 이 금관이 출토되자마자 갑자기 가뭄으로 마른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천둥번개가 내리쳐서 하늘이 노했다고 다들 두려워했다고 한다.

참고로 세계 최초로 부장자가 착용한채로 발견된 금관이다. 금관이 데스마스크와 같은 역할을 했다는 중요한 역사적 순간이다.

또한 당시 신라의 금 세공기술의 극치를 보여주고있다. 백제 무령왕릉에서도 금제 부장품들이 출토되었지만 신라는 신라 방식대로 금을 세공했다. 그냥 금판을 오려서 만든게 아니다. 자세히 확대시켜서 보면 세공기술이 1500년전이라는게 말이 안될정도로 정교하고 이걸 기계없이 손 감각으로 만들었다는게 ㄹㅇ 당시 우리 조상니뮤ㅠ들의 손재주를 알 수 있다. 해외에서도 금관은 끽해야 틸리아 테페 금관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무더기로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