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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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오늘만 살고자 하였던 시인이었지만 좌파에게 조리돌림을 당하고 이후 강경 우파가 되었다.

본명은 김영일(金英一)이다. 「토지」로 알려진 소설가 박경리의 사위고, 70년대 윾신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이다. 1980년부터는 동서양의 철학과 대한민국의 전통 사상을 아우르는 '생명 사상'을 제창하였으며 유명한 시집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시삼백」 등이 있다.

오늘만 살던 시절[편집]

반인반신이 추진하던 한일회담이 굴욕적인 외교 회담이라고 판단한 그는 서울대학교 후배 김덕룡, 고려대의 2MB, 2JO 등과 함께 6.3 항쟁에 참여했다. 학생 시위에 앞장섰다가 체포되어서 4개월 간 수감되었다가 풀려났다.

1970년에 부패한 헬조선 윗분들을 비판한 시 「오적(五賊)」을 써서 《사상계》 5월호에 실었는데, 이것이 신민당 기관지인 《민주전선》에 실리면서 문제가 되었고 국보법 위반 혐의로 100일 동안 옥살이를 했다.

1974년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서 7월 9일 결심 공판에서 긴급조치 4호 및 국가보안법 위반, 그리고 내란선동죄 등의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 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2013년 1월 4일, 이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 받았는데 김지하는 판결 선고 후 "보상금을 받으려 재심을 신청했다. 완전히 무죄를 선고하지 않은 이유는 돈을 적게 주려는 것."이라며 1월 10일에 재심 판결에 항소했다.

전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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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 지켜내겍윽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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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광 우럭따 8ㅅ8

ㄴ 분신정국 까다가 깨시민들에게 양념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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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의 사망 이후 항의로 분신 자살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일명 '분신정국'에서 5월 5일에「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라는 글을 써서 운동권의 분신자살을 비판하여 변절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이때 좌파들에게 말도 못하게 까인 김지하는 하도 좆같았는지 완전한 엑윽보수로 전향해버린다.

2009년에는 촛불 시위 반대와 노무현 추모객들을 맑스 주의자라고 비판했으며, 2012년 대선 땐 ㄹ혜를 지지하면서 문재인과 간철수를 비판했고, 백낙청리영희를 매도해 인터넷에서 깨시민들에게 "자신에게 씌워졌던 '빨갱이'란 누명을 거꾸로 다른 사람에게 씌우고 있다.", "유신 독재와 박근혜의 나팔수가 됐다."라고 욕 먹었다. 근데 후술하듯이 김지하가 이 꼴이 된 건 좌파들의 탓도 좀 크다.

2008년에 띵박이를 지지해 깨시민들에게 조리돌림 당하던 황석영을 2009년 5월 18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시비 걸지 말라."라고 일침을 가했다. "작가가 오른쪽으로 갔다 왼쪽으로 갔다 그럴 자유는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기억력이 나쁠수록 좋은 작가라는 논리를 제시했다.

당시 리즈 시절이었던 진메갈이 황석영은 일관성이 없다고 비판하기 위해 금붕어에 비유한 것에 대해서 그는 "작가라는 게 아침마다 변한다. 기억력이 강한 작가일수록 엉터리다."라며 쉴드를 쳤다. 진메갈은 진보신당 당원 게시판에 "기억력이 나쁜 작가일수록 좋은 작가라는 미학 이론은 들을수록 해괴하다. 그렇다면 최고의 작가는 금붕어겠다. 금붕어의 눈앞에는 2초마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라고 김지하를 비판했다.

왜 엑윽보수가 되었나[편집]

사실 김지하가 이렇게 저항 시인에서 박사모 틀딱으로 흑화한 것에는 사연이 좀 있다. 저항 시인 시절에는 감옥에서 "저항시를 더 써서 박정희가 빡돌아서 당신을 사형 시키도록 만들어라."라는 시체팔이 권유를 받지 않나, 고은이 김지하 장모인 박경리에게 손자를 업고 1인 시위하라는 권유를 거절 당하자 리영희, 백낙청과 있던 사석에서 "과부년이 말을 안 들어 ㅋㅋ"라고 욕했다는 사실을 간수에게 전해 듣는 등의 일을 겪었다. 그래서 이미 이때부터 진보 세력에게서 정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딱히 6공 정권 옹호도 아니고 그냥 "민주화를 위해 목숨까지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라고만 주장했다 존나게 조리돌림 당한 죽음굿판 사건으로 변절 해버린 것이다. 이건 인터뷰에서 본인이 한 말이라서 신빙성이 좀 의심되고 변명이 아닌가 싶지만, 고은의 인성을 생각해보면 과부 얘기는 사실인 거 같다.

인터뷰를 보면 사실 저항 시인 시절에도 사회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민주주의를 추구해서 저항 시인이라고 불린 거였지, 혁명 투쟁 외치는 적극적인 민주 투사까진 아니었다. 박정희의 서거 소식을 듣고 "인생무상"이라고 회한에 잠겼다는 걸 보면 말이다. 김지하가 이렇게 엑윽보수 틀딱이 된 것에 대해서 깨시민들은 "박정희 때 하도 고문 당해서 후유증으로 미친 거다."라고 주장했지만 그냥 지들 흑역사를 덮으려는 개소리로 보는 것이 정론이다.

그런데 컨셉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루아침에 좌파들에게 역적으로 몰린다는 건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줬다. 자신이 민주화계의 거물이나 되는 인물이니 우익으로 전향해서 개같은 좌파들 정신 좀 차리라고 컨셉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토록 불타는 열정으로 싸웠던 걸 하루아침에 부정하겠냐? 게다가 우익으로 활동하면서도 자기의 민주화 운동 시절은 한 번도 부정한 적이 없는 것을 보면 후유증은 절대 아니고 자기를 양념한 좌파들에게 엿먹이기 위해 우파 컨셉을 잡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박사모 시절을 반성하고 몇몇 진보적 이념에 대해 지지선언까지 했는데 하필이면 미투운동을 지지했다. 여전히 우파로 활동 중이지만 말이다. 깨시민들의 양념만 없었다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다.

사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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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8일날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