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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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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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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소설가 주제 사라마구가 집필한 소설.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차례차례 눈이 멀다가 결국 전세계 모든 사람들의 눈이 멀어버리는 소설. 주인공은 일단 의사인 것 같으나 이 사람 혼자 주인공이라기보다 의사가 속한 그룹 전체가 주인공이다. 의사 아내의 비중이 의사보다 많기도 하고.

문체가 몹시 독특한데, 고유명사가 극도로 안 쓰이며, 문장 부호 역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문장부호라는 것은 책을 읽는 독자에게 시각적으로 인식되는 것인데 그런 기호들을 철저히 배제함으로서 장님들이 주변 정보를 제한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독자에게도 문장부호가 전달할 수 있는 정보들을 차단하며, 역설적으로 진짜 눈 먼 사람들끼리 대화하는 듯한 느낌이 더욱 생생해진다.[1] 이러한 문체 덕분에 좀더 보편적으로 해석 할 수 있는 소설이다.

내용[편집]

위에 언급한대로, 눈이 머는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차례차례 눈이 머는 이야기를 다루는데, 정부는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이런 눈먼 자들만을 적당한 시설에 격리하여 밥도 제대로 안주고 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그냥 시설내에 눈먼 사람들만 가두어 놓고 하루에 한 번, 심지어는 안 주는 날도 있음, 시설을 관리하는 군인을 통해 밥만 멀찍이 던져준다. 탈출을 시도하는 자는 군대에의해 즉시 사살 당한다. 근처에 있으면 시력을 잃을 수 있으니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이런 상황때문에 주인공 그룹은 시설에서 인간성을 지독하게 모욕당한다.[2] 하지만 이러한 격리조치에도 결국 전염병을 막을 수는 없었던지 결국 (아마 의사 아내를 제외한) 모든 사람의 눈이 멀어 버린다. 이러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주인공 일행은 서로 의지하며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고 결국 가장 비중이 컸던 주인공 의사부터 시력을 회복하기 시작하며 소설이 끝난다.

역설적이게도 눈이 멈으로 인해서 오히려 중요한 것을 보게 되는 사람들도 나오며, 이러한 깨달음 속에서 되려 시력이 회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 조차 나온다.[3] 여하튼간에 결국 의사는 시력을 회복하고 장차 다른 사람들의 시력도 회복될 것이락라고 짐작하지만 눈이 멀지 않았음에도 눈이 먼 척하며 의사를 곁에서 부양하던 의사의 아내가 갑자기 세상이 새하얗게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이번에는 자신의 눈이 멀 차례라고 직감한다.[4]

근데 시발 사팔뜨기소년은 왜 등장시킨거냐?


  1. 예를 들어, 두 사람이 하는 대화를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 어쩌면 군인들이 곧 우리 식량을 가져올지도 모르잖습니까. 어떤 사람이 말했다. 당신 군대 가봤소. 다른 사람이 물었다. 아뇨. 내 그럴 줄 알았소. 혹은 지금 말하는 사람은 누굽니까. 의사가 물었다. 눈먼 사람이오.] 주인공 그룹조차 의사,의사아내,노인,색안경을 썻던 여자,눈물을 핥아주는 개 등등으로 지칭한다.
  2. 눈이 안보이니 화장실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시설은 사방팔방이 똥천지고 그 와중에 여자들은 총을 가진 보균자 그룹(아직 눈이 안 멀었지만 눈이 멀 것 같아서 같이 격리당한 사람들)에게 정기적으로 성을 상납해야하고 밥은 하루에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
  3. 나쁜 의미가 아니라 시력의 상실로 얻게 된 유대가 시력을 회복함으로인해 상실되지 않을까 두려워 하는 노인의 작은 바램이다. 심지어는 노인도 이러한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을 자책한다.
  4. 하지만 이 때 의사아내가 실명의 공포로 시선을 내리깔자 그곳에는 여전히 도시가 있었다고 서술한다. 즉 이 시점에서 눈이 멀지 않았다. 덤으로 후속작으로 눈뜬 자들의 도시가 있는데 읽은 사람의 이야기에 의하면 결국 눈이 멀진 않은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