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평등한것

자매품으로 죽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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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대만 때려 달라는 소리다.

혹은 이세상에서 두대밖에 없다는 소리이다.

단두대의 분필

니들이 갈 수 있는 유일무이한 대학교다.

ㄴ군대 있잖아.

전거성이 좋아한다.

왜 사형수 죽일때 전기의자로 죽이는지 알아?

왜냐면 단두대는 단 두대 밖에 없거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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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 중기인 1790년 발명되었다. 첫 사형은 펠르띠에 'Nicolas-Jacques Pelletier'로 1792년 4월 25일에 시행되었다.

루이 16세랑 마리 앙투아네트 머가리도 단두대 시행 초기에 날아갔다. 때는 1793년 1월 21일이다. 웃기게도 단두대 도입을 허가한 사람이 루이 16세다.

즉 실질적으로 만든 사람은 루이 16세로 기요탱 박사가 한 방이면 무조건 뒤짓하기 때문에 공평한 죽음을 선사하며 이것을 적극적으로 이옹해야 한다고 주장해 서양에서는 기요틴, 기요탱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이 기요틴 박사도 결국 단두대에서 최후를 맞이 하였다는 루머가 있는데 사실 좆구라고 기요틴은 테니스 코트의 맹세 당시 장소 마련해 줬다고 해서 나폴레옹 시대까지도 존나 배부르게 잘먹고 잘살던 인간이었다.

단두대에 모가지가 날아간 죄수가 잠시 살아있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다 좆구라고 머가리 날아가면 뒤지는거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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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닭은 머가리통이 날아가도 잠시 살아있을 수 있다고 한다 이제 곧 증명해볼 예정이ㄷ...

결국 탄핵으로 모가지가 날아가면서 잠시 살기는 커녕 바로 죽어버리는게 증명되었다.

이제 우리 손으로 맨든 단두대를 미국에 수출하게 될지도 모른다

왜 맨들었냐?[편집]

옛날 유럽에선 참수가 일종의 명예형이었다. 귀족만 참수형 받았거든

그럼 귀족이 아닌 일반 평민은? 걍 목 메달아 죽이거나 불 태워 죽이거나 바퀴에 매달아서 이리저리 빙빙 돌려가며 망치로 내려쳐 죽이거나, 도끼로 목을 여러번 쾅쾅 쳐서 고통스럽게 죽였다.

그러다 로크, 칸트, 볼테르 같은 놈이 튀어나오면서 계몽주의, 천부설 같은게 튀어나오면서 인권이란 개념이 정립 되기 시작하면서

귀족이든 미개한 천민 쌍놈년이든 평등하게 인간적으로 죽을 권리다 있다! 하면서 만든게 단두대다.

그러면 목뼈 한번에 부러져서 뒤지는 교수형이 더 인간적이지 않냐고?

당시엔 줄이 이 정도 길이여야 되네, 이 정도 굵어야 바로 죽네~ 이런 공학적인 개념 없이 걍 아무렇게 모가지 걸고 샷따 내리는게 다 여서

운 없으면 숨통 서서히 조여가며 죽는 형벌이었다.

그에 반해 참수는 솜씨 좋은 망나니 데리고 와서 단칼에 뎅겅 해버리면 그만이라 상대적으로 고통없이 빠르게 뒤지는 방법이었다.

거기에 단두대는 망나니 칼질 미스로 참사가 일어나는 일도 막고 인력도 줄고 빠르게 죽일 수 있으니 혁명 내내 사골 수준으로 이용해 먹었다.

한편 단두대가 시행되면서 직전까지 시행되던 교수형, 브레이킹 휠, 능지형, 거열형, 기타 별의별 사형법 등은 즉시 폐지되었다.

참고로 단두대가 시행된 1792년 4월 이후의 명단이 존재한다. 1791년 이전은 사형수 명단이 일절 존재하지 않는것으로 보아 단두대 도입 이전에는 명단도 못 만들정도로 엄청난 수의 사형수들이 사형 집행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진 것을 유추해 볼수 있다.

프랑스 혁명&나폴레옹이 사라진 1815년부터 1939년까지[편집]

유럽 각지에 수출도 하고 식민지 만들고 거기서도 써먹었다. 대표적으로 알제리가 있다. 이쪽은 아예 사형당한 사형수 명단까지 만들어놓고 이걸 추모하면서 전 세계를 향해 사형제 폐지를 외치는 중이다.

그렇게 1939년까지 공개처형으로 써먹는데 1940년부터 갑자기 매해마다 대다수의 죄수들을 사면하고 극악 범죄자 극히 일부만 비공개 처형으로 진행한다.

전환된 사정은 이랬는데...

1939년 6월 17일의 살인미수와 강도를 포항한 전과 3범에다 6명을 납치 살인한 독일 출신 연쇄살인마 오이겐 바이트만(eugen weidmann) 처형 때문이다. 이 처형은 프랑스 최후의 공개처형이자, 유럽 역사상 최후의 공개처형이라고 한다. 기이하게도 프랑스 국민의회 창립 150주년이었다고 한다. 날짜까지 똑같았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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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인성 문제 있어?

그런데 이 새끼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구글에다가 오이겐 바이트만 또는 eugen weidmann 이라고 검색하면 아주 상세하게 나온다. 현재까지의 어지간한 살인마들도 모두 명함도 못 내미는 잔혹살인마인데 피해자들에 대한 참회라는 것이 가관인데 "누군지는 하나도 안 궁금하고 그냥 죄송하다"라는 말만 남긴 최악의 인성을 갖춘 희대의 인간말종으로 유럽 역사에서도 이전에도 이후에도 볼수 없는 유형이었다고 한다. 현재까지의 사이코패스 상위권에 위치하는 것으로도 알려져있다. 어느정도였냐면 첫 재판에서 "항소 불가능한 공개처형" 판정을 내렸으며 이는 프랑스 역사상 유일하다. 오죽하면 대다수의 인권단체들이나 사형폐지론자들조차도 "얘 사형시키고 사형제 폐지하는건 어떰?"이라고 분노했을 정도다. 인류의 범죄 역사에서 이 새끼에 명함을 견줄건 백백교 교주나 유영철 정도밖에는 없으며, 나머지 전세계의 살인마들은 그저 이 새끼의 열화 카피에 불과하다. 역시 독일계답다.

그런데 오이겐 바이트만 처형을 마지막으로 사라진 결정적인 이유는 황당하게도 바이트만이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는 장면을 누군가가 녹화해서 영화 필름으로 만든 뒤 시중에 공짜로 퍼뜨렸기 때문이다. 말그대로 1939년에 강림한 트위터나 유튜브가 따로없다. 심지어는 지금까지도 처형 영상이 아주 많이 돌아다닌다.

2차 대전 발발인 1939년부터 현재까지[편집]

결국 당시 프랑스 대통령인 알베르 르브룅이 공개처형을 영원히 금지시키면서 1939년 6월 18일부터 비공개 처형으로 진행하다 시대가 흐르면서 인권단체들이 생명소중 빼애액을 시전하자 프랑스 정부도 여기에 동조해서 1977년 10월 튀니지 출신의 범죄자인 하미다 잔두비 처형을 마지막으로 비공개 처형도 끝나버렸고 이후 4년간 집행을 유예하다 1981년 9월 9일 프랑스의 사형제가 영원히 폐지되었다.

그래니에서[편집]

그래니게임에서 뒷마당에 있다.

수박을 잘라 안의 아이템을 얻는데 쓰고 게임오버시 할머니가 플레이어를 이걸로 처형시킨다.

손잡이를 당겨서 칼날이 내려와 작동되며 이때 소리가 나는데 이걸로 할머니를 유인시킬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