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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디 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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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의 인물은 한신 타이거스 그 자체입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고 있는 인물은 한신 타이거스의 영웅입니다.
놀랍게도 효고는 물론이고 인근 오사카에서도 그/그녀를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본 인물을 욕보일 시 많은 한신 아재들에게 잡혀 도톤보리에 강제 입수당할 것입니다.
랜디 바스

Randy William Bass

기본 정보
생년월일 1954년 3월 13일
출생지 오클라호마 주 로턴
국적 미국 미국
신장 184cm
체중 95kg
선수 정보
입단 1972년 미네소타 7순위
투타 우투좌타
포지션 1루수, 외야수
학력 오클라호마 대학
경력 미네소타 트윈스(1977)
캔자스시티 로열스(1978)
몬트리올 엑스포스(1979)
샌디에이고 파드리스(1980~1982)
텍사스 레인저스(1982)
한신 타이거스(1983~1988)

소개[편집]

한신 역대 체고의 용병타자. 사상 최강의 도우미

한신 타이거스 역사상 단 1번뿐인 일본시리즈 우승을 일궈넸던 우승멤버들 중 한 명으로 1985년 일본시리즈 MVP 수상자이기도 하다.

한신 역대 체고의 용병타자로 이름을 날렸던지라 한신팬들은 평범하게 그를 부르지않고 바스니뮤ㅠㅠ라고 부른다.

미국 시절[편집]

미네소타 입단 후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5년 가량을 지내다 77년에 콜업되었지만 별다른 모습을 보야주진 못했다. 이후 여러 팀을 전전하다가 바다건너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했다.

뉴욕에서 LA까지 공을 날리는 타자란 소릴 들을만큼 장타력은 지려줬지만 어릴 때 당한 복합골절로 인해 주루에 결함이 있고 수비도 돌글러브여서 주전으로 쓰기엔 애매했다. 거기다가 강속구에 약점이 드러나서 좋은 타격을 못 보여줄 수 밖에 없었다.

ML통산 130경기 69안타 9홈런 42타점 0도루 타율 0.212 출루율 0.284 장타율 0.326 OPS 0.610

한신 타이거스 시절[편집]

1983년에 한신에 입단했다. 하지만 컨디션이 바닥나 개막하자마자 바로 뛰지는 못했고 개막 한 지 시간이 지나서야 경기에 나왔다. 그해 35홈런으로 장타력을 보여줬지만 그해 말 재계약 여부가 불투명해져서 위기를 맞았다.

컨디션 난조로 인한 부진과 당시 팀에 있던 또다른 용병타자 스트로터가 빠따에 공을 더 잘 맞춘다는 이점이 있다는 평가로 입지가 불안했지만 한신은 스트로터를 방출하고 바스를 한번 더 믿었다.

2년차인 84년에도 27홈런을 치며 장타력을 충분히 보였고 1985년 드디어 대폭발하였다. 그해 바스는 54홈런으로 홈런왕에 올랐고 소속팀 한신도 창단 첫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그 말로만 듣던 전설의 백스크린 3연발이 이 해에 나왔다. 이 당시 오 사다하루가 가지고 있던 시즌 홈런 기록 갱신을 노리고 있었는데 시즌 최종전이었던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 때 요미우리 투수들이 도저히 칠 수 없는데 포수가 앉은 채로 받으므로 고의사구는 아닌 공만 던져대면서 승부를 피하는 바람에 결국 아쉽게 기록 갱신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86~87시즌에도 빼어난 활약을 하며 한신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1986년엔 일본 기록인 단일시즌 최고타율(0.389)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렇듯 한신팬들도 열렬히 바스를 맞아주고 바스 본인도 한신에 대한 애정이 흘러넘쳐서 은퇴하고 한신 코치를 하는것을 꿈으로 삼고 귀화까지 고려했을 정도로 한신에 뼈를 묻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1988년...

어이없는 방출[편집]

1988년, 바스는 자신의 아들이 수두증 판정을 받아서 입단 당시 선수의 가족이 병원치료가 필요할때는 구단이 부담하기로 한 계약조건에 따라 한신에 치료비를 요구했다. 그러나 한신 구단은 거액의 치료비 부담을 꺼려 6년간 팀을 위해 맹활약해오던 바스를 시즌 도중 해고해 버렸고, 바스는 허무하게 선수생활을 마감하며 미국으로 귀국하게 된다.

이후 한신 구단 대표였던 후루타 신고가 도쿄도 내의 호텔에서 투신자살을 하는 사건까지 터지며 구단 분위기는 제대로 좆망했고, 결국 한신은 그 해 2년 연속으로 최하위를 찍으며 장대한 암흑기로 빠져버리고 만다.

NPB통산 614경기 743안타 202홈런 486타점 5도루 타율 0.337 출루율 0.418 장타율 0.660 OPS 1.078

은퇴 후[편집]

은퇴 후에는 본래 일이었던 목장을 경영하며 지냈고 일본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으면 그 자리에 참석하러 갔다.

2004년엔 민주당 소속으로 오클라호마 주 상원 의원 선거에 출마해 고향인 로턴 시의 시의원으로 당선되었다. 현재도 의원직을 유지중이다.

미국 내에서 그를 야구선수로 알아보는 사람은 드물지만 지역구인 오클라호마에서는 장애인 대상 자원봉사단체나 경찰, 소방 관계자 등으로부터 지지를 얻어 정치가로서의 수완을 높게 평가 받았고 국정 참여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