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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오스트리아| 루트비히 요제프 요한 비트겐슈타인) (1889.04.26~1951.04.29)

소개[편집]

오스트리아의 철학자이자, 분석철학에 한 획을 그은 철학자.[1]

또한 역대 세계구급 학자 중 가장 금수저이다. 아니 다이아몬드수저? 뭐 암튼 가장 부자 집안이다.

아빠가 재벌이었기 때문이다. 막내아들이었는데 형들이 자살로 죽거나 전쟁으로 죽거나 병신이 되서 막내 루트비히가 대부분의 유산을 받았다. 근데 여기저기 기부한 기록이 많다.

지금으로 치면 포스코(물론 여기는 전형적 헬조선 스타일 단독 세습적 재벌이라고 할 수 없어서 부적절하지만 한국 대표 철강 대기업이 이거니까 이걸로 하자) 회장 아들이라고 보면 된다. 유럽 최고의 철강회사 소유주 아들.

순 공학자인 새끼가 독학으로 러셀책 훑어보고, 찾아가서 논쟁하고, 그 러셀에게 수재로 인정받을 정도였으니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란 미친놈이 얼마나 씹천재인지에 대해선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전기철학과 후기철학으로 나뉜다.

학생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높은데, 대략 2012년쯤에 논리철학논고의 대략적인 내용이 수능 비문학으로 출제되어 많은 고3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짐싸들고 재수학원으로 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펜대 좀 굴린 급식충 중에 비트겐슈타인을 모르는 놈은 없을 정도로 인지도를 얻었다.

논리철학논고의 영향력은 대단해서 현대 전산학, 컴퓨터공학, 전자공학, 수학의 중요한 기초중 하나인 진리표 알고리즘이 이 책에서 등장했다지만 이건 고대 그리스인들이 컴퓨터를 만들었다는 말처럼 너무나 과장된 소리이다.

근데 어찌보면 무조건 오바라고 깔 수 없는게 현대 과학 기술 중 고대 인도나 중국, 그리스에서 나온 이론을 기초로 한 게 존나 많다. 우리가 아는 3D영화도 인도나 중국 등의 고대 기록에 그 원리가 써 있다. 사람의 두 눈깔에 미세하게 다른 그림을 보여주면 입체적으로 보인다는 기록이 이미 기원전에 있었다. 그걸 수천년 동안 실제 체계화된 기술로 구현하지 못했을 뿐.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하라." 라는 말이 유명하다.
논리철학논고의 가장 끝에 있는 명제로, 본래 언어의 구조와 세계의 구조의 대응 자체는 언어로 기술될 수 없음을 지적하고 세계, 언어, 철학의 한계를 나타내는 함축적이고 절묘한 문장이었으나, 이 말만 유명해진 나머지 걸레짝이 되도록 오용되었다.

ex) "시발놈아 아는 척 좀 하지 마라.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하라는 말 모르냐?"

이런 식으로 본의 아니게 좆문가들이 러셀의 역설을 온 몸으로 구현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논리철학논고를 쓴 비트겐슈타인은 자기가 철학의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하고 학계를 떠난다. 근데 결국 논고에서 실증주의 도그마를 해결하지 못하고[2]"아 근데 여기 나와있는 말들은 걍 니가 더 높은 지식의 세계로 인도하는 사다리일 뿐이니 넘어가면 걷어차라ㅋ"라고 변명을 싸질러놨다. 시발 대가리도 좋은 새끼가 변명은

논고 자체도 뭔 미묘한 예시/비유들과 배배꼬인 단어들(근데 역자가 잘 풀이한 번역본은 도리어 좀 쉬움. 케바케긴 함.), 기호가 뒤섞인 것처럼 보여서 이해하기 애먹을 수도 있는데, 걍 실증주의는 어떻게 전개되며, 언어는 무엇이며 어떻게 형성되고, 그 언어의 형성의 시작부분에서 설명이 안되는 (예:"좋다"와 같이 설명하려면 예시를 드는 것 외엔 언어적으로 풀어쓰는 방법이 없는 기초적인 단어들) 녀석들과 어쩌구저쩌구 언어의 성질과 논리를 이해시키다가, 결국 "언어의 구조적/실증적 한계에 부딪히게 되면 그게 끝 맞으니 논리적으론 다무는게 맞다."고 이야기하는게 다다. ㄹㅇ임.

이 점이 중2병 걸린 쉐리들의 감수성을 마구마구 자극해서 비트겐후장빨이로 만들어 버리는데 그러지 말길 바란다.

니체와 함께 중2병 쉐리들 꼬이는건 아주 투탑이다.

근데 생전 비트겐슈타인이 존경한다는 식으로 말한 철학자 중에 대표가 니체다. 쇼펜하우어도 있다. 둘다 평생 결혼 안 했다.(혹은 못했다) 비트겐슈타인도 결혼 안 했는데 저 둘과 달리 게이설이 있다 사후에 게이로 의심가는 글들이 발견되었다

이후 어느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는데 학생들에게 자주 가혹한 체벌을 해 쫓겨나는 등 밖에서 여러 삽질을 하고 다니다가 자기 전기철학의 한계를 인식하고 학계로 돌아온다.

후기철학 저서로는 철학적 탐구가 유명하다. 살아있을 때 출판된 책은 아니고 사후 비트겐슈타인의 집필들을 모아 출간한 형식이다.

따라서 실질적인 저서는 논리철학논고 하나 뿐인데, 이걸로 학위까지 받았으니 정말 날로먹은 새끼라 할 수 있다.

동성애자인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성애자였음에도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싫어했다고 한다.

칼 포퍼와 언쟁하다 달궈진 부지깽이로 위협하고 쪽팔려서 튀었다.

아돌프 히틀러와 린츠 실업학교 동기생이다.

철학[편집]

절대 "정확한 해석(=주관)"따윈 없기에, 아래는 완벽히 작성자의 사견일 뿐임을 밝힌다,

-그것도 매우 부정확한 낙서 급임을 깨달았다... 영잘알들은 영문위키를 읽자 [1]

한국어로 나온 해설서가 몇 권 있으니 참고하자.

전기[편집]

유명한 책

  • 논리철학논고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말할 수 없는 것엔 침묵하라.
('말할 수 없는 것'을 말로 바꾸려는 건 '중요한' 것을 해치는 것이다.)

철학의 오류들은 '말할 수 있는 것'(=본질)을 정확한 '언어'로 바꾸는 데 실패한 언어적 문제다.
(세상의 본질과 언어의 1:1 대응, '언어의 한계가 세상의 한계다.')

-대표적으로 러셀의 역설을 '세상'은 자신을 '말할 수 없다'는 선언으로 해결했다.

너무 요약이 함축적이라 풀어서 설명하겠다.

그림이론, 혹은 모델이론이라 불리는 비트겐슈타인의 이론은 명제가 실제의 그림이라는 것, 즉 명제는 실제를 반영한다는 것을 뜻한다. 예를들어 사과를 보고 우리는 그것을 보고 '사과'라는 하나의 명제를 형성하는데, 여기서 사실 그 자체인 사과는 참과 거짓의 구분이 없는 '사실 그 자체'이고, 그것을 보고 우리가 형성한 명제는 참과 거짓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이 맥락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세계 복합명제(원자명제가 모인 명제)-복합사실(원자사실이 모인 사실) 원자명제(이름들의 합. 요소명제라고도 불림)-원자사실(대상들의 합) 이름-대상

이런식으로 명제가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위에 나와있듯이 원자명제는 이름들의 합이며, 의미를 가지는 최소한의 단위다. 우리가 사과, 배추, 토마토 이런 이름들만 늘어놓으면 의미를 형성할 수 없듯이 이런 이름들이 모여 원자명제를 형성해야만 그것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원자명제는 독립적이라 하나의 원자명제에서 다른 원자명제를 도출해 낼 수 없다.

절대로 올바른 예시는 아니지만 이해를 돕기위해 비유를 해 설명하자면, '노무현이 운지한다'는 명제를 원자명제라고 가정하자. 그런에 이 '노무현이 운지한다'는 명제에서 '노무현이 뇌물을 받았다'는 전혀 다른 명제를 이끌어 낸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러한 원자명제와 원자사실은 1:1로 대응하므로 원자사실을 경험함으로써 요소명제의 참/거짓 여부를 분석할 수 있다.

그리고 '노무현이 운지한다'(A)는 원자명제와 '노무현이 뇌물을 받았다'(B)는 원자명제가 합쳐져 '노무현이 뇌물을 받았다. 그리고 운지한다'(C)라는 복합명제가 형성되면 A와 B를 분석해 C의 참거짓 여부를 분석할 수 있다. 그럼 C는 어덯게 A와 B로부터 그림적 성격을 부여받을 수 있을까? 당연히 원자명제가 원자사실의 그림이 되어 복합사실에게도 그림적 성격을 부여한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점이 있다. 복합사실 "노무현은 자살했다. '그리고' 뇌물을 받았다"에서 '그리고'라는 논리적 접속사 또한 원자사실을 반영하는가?

스승 버트런드 러셀과 달리 제자 비트겐슈타인은 추상적인 논리적 명제가 필요 없다고 설명한다. 바로 '진리함수표'를 통해서 말이다.


p
T
F


-> p는 원자명제이고, 이 원자명제는 거짓이거나 사실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디시위키에서 표 어떻게 만드는지 아는 사람은 알아서 고쳐주길 바람


p  q
T  T
F  T
T  F
F  F


-> p와 q는 독립적인 원자명제 두개를 뜻한다. 두 원자명제는 서로 틀리는 맞든 독립적이므로 서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p  q  p.q
T  T  T
F  T  F
T  F  F
F  F  F

-> 가운데의 부호 .는 '그리고'를 의미한다 이 경우 하나의 원자명제가 틀릴경우 복합명제 p.q전체가 틀린 명제가 된다 아 시발 귀찮아 누군가 추가바람

즉 아무튼 간에 비트겐슈타인은 이렇듯 그리고, 또는 ~가 아니라~와 같은 논리적 접속사들은 논리적 부호로 치환하여 표현하면 되므로 굳이 현실세계의 무언가를 모델로 삼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요상하게도 사실의 그림이 되지 않으면서 그자체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예외적인 사례로 논리학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예를 들어 '만약 노무현이 운지한다면, 운지할 것이다'라는 언제나 참이 되는 '항진명제'(항상 진리인 명제)는 사실에 대응하지 않지만 항상 참이므로 그냥 무의미한 문장들과 구분해 '의미를 결여한 명제'라고 부른다.

즉 비트겐슈타인의 의견을 종합해 보자면, 물리학같은 과학의 경우 사실에 대응하므로 참/거짓을 구별할 수 있고, 논리학은 세계와 대응하지 않지만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는데 기존의 철학은? 철학은 사실에 대응하지도 않으면서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없으므로, 기존의 대부분의 철학은 개뻘삽질이 되는 것이다.

또한 사실과 명제 사이의 논리적 구조에 대해선 우리가 알 방법이 없는데도 철학은 그것을 연구하고 밝혀내려고 개헛짓거리를 했으니 기존의 철학은 병신 철알못들이 목표를 잘못 상정했기 때문에 오류가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비트겐슈타인의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하라'는 명제는 사실과 대응하지도 않고 참 거짓을 구분할 수도 없는 것에 대해서는 씨부리지 말라라는 뜻인 것이다.

그리고나서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모든 문제를 해결했으므로 난 간다ㅃㅇ'라고 하며 철학계를 떠나버린다. 이게 논리철학논고 내용의 끝이다.

후기[편집]

유명한 책

  • 철학 탐구 (Philosophische Untersuchungen)
  • 확실성에 관하여 (On certainty)

철학 탐구 2부에 등장하는 조세프 야스트로우Joseph Jastrow의 '토끼-오리' 그림

ㄴ이거보니 그거 생각나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 맞나?

언어가 갖는 의미는 사용에 있다 ('언어는 사태와 대응'이란 전기의 관념을 부정한다)

철학자의 임무는 '사용'의 차이(철학과 일상) 탓에 발생하는 언어의 괴리를 메꾸는 것이다.

'확실한 명제'(=축명제)를 의심하는 건 무의미한 짓이다. ('의심의 토대'를 '의심'하는 끝없는 회의주의들을 비판하였다, '말할 수 없는 것엔 침묵하라.'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각주

  1. 정작 자기는 빈 학파가 주도한 논리실증주의에 대해서 못마땅히 여겼다.
  2. 알다시피, 실증주의는 실증을 중심으로 유의미한 것인지 판단하는데, 정작 실증주의 그 자체는 실증이 불가능하므로 무의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