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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언어에 대한 분석[1]을 통해 철학에 접근하는 기법.

...이라는게 지금으로서는 가장 정확한 정의라고 할 수 있겠다.[2]

그러다보니 논리학과는 불가분의 관계.. 정도가 아니라 논문을 읽어보면 논리학 논문을 보고 있는 것으로 착각이 들 정도다.

현대 영미철학은 분석철학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래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비엔나 학파에서는 언어의 분석이야말로 철학이라고 했으며 종래의 형이상학이나 직관적 통찰을 배격했으나 씨댕 이래버리니까 특정 주제나 대상이 지정되있지 않으니 지리멸렬 할 수 밖에 없지.

분석철학은 버트런드 러셀조지 무어가 영국에 우세하던 관념론을 공박하면서 등장한다. 무어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철학적 문제를 일상언어적으로 명료화함으로써 오해에 의해 발생하는 철학적 문제들을 제거하고 올바로 재구성된 질문에 대해 답하고자 했다. 러셀은 "언급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존재해야 한다"는, 거의 플라톤주의에 가까운 극단적 실재론을 끌어왔다. 여기에 따르면 절대 이 세계에 존재할 리가 없는 니 여자친구도 존재한다. 존재하지 않으면 말할 수조차 없으며, 그걸 언급하는 모든 진술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러셀은 프레게랑 만든 새로운 논리학을 통해, 잘못된 전통논리학에 기반을 둔 좆나 나쁜 형이상학을 치워버리고 바른 형이상학을 세우려고 했다. 착한 형이상학 인정합니다
근데 이 관념론 공박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그리고 러셀은 자기가 처음에 주장한 극단적 실재론을 버리고 그 유명한 기술이론을 제시한다. 극단적 실재론이 건전한 실재감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러셀은 기술이론을 통해 당연히 존재할 리 없는 니 여자친구를 기술구로 환원하여 무(無)로 다시 돌려보낸다. 어떻게 다시 돌려보내는지는 러셀의 논문 '지칭에 관하여(On Denoting)'를 참고해라.

비트겐슈타인의 등장으로 분석철학은 중대한 전환기를 맞이했다. 비트겐슈타인은 원래 항공공학과 공돌이였으나 나중에 러셀과 무어에게 몇 년간 철학을 배운 후 논리철학논고라는 괴작을 썼다. 철학책을 제대로 읽었는지 아닌지도 논란거리인 새끼가 문제집 답지 분량밖에 안되는 책으로 철학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는 20세기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자 중 하나라니 진성 재능충으로, 골수 문과인 철학 문돌이들을 깔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이과 최고존엄이시다.

논리실증주의를 표방한 빈 학파루돌프 카르납이나 구스타프 칼 헴펠같은 사람들이 당초 자신들의 목적에 따라 과학의 서술과 언어의 명료화라는 목적으로 과학적 방법과 설명에 대하여 언어분석적 방법으로 나름대로 빼어난 작업을 보여주었으나 애당초 이런거 할려면 철학에 대한 식견도 있어야 되고 다른 경험과학들에 대한 식견도 있어야 되니 후학들이 쉽게 쫓아 갈 수 있을리가 없다. 요새는 이러한 작업을 과학철학이라고 따로때서 학문협동과정으로 운영하는데 역시 잘 안된다.
논리실증주의는 논리철학논고에서 영감을 받아 세계에 대한 모든 서술을 과학적 서술로 환원하려고 했다. 이에 따르면 형이상학은 겉만 그럴싸하게 명제같이 생겨보이는 가짜 문장 그러니까 한마디로 개소리다. 이러한 결론에 따라 논리실증주의자들은 형이상학을 학문의 영역에서 싹 치워버리려고 했다.
저 카르납이란 양반이 논문에서 '형이상학적 사이비 명제'의 예시를 드는데 하필이면 하이데거 저작을 들고 와 신나게 까대는 바람에 결국 영미철학과 대륙철학은 원쑤지간이 되었다.

보통 분석철학이 반형이상학적이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이는 모두 논리실증주의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각인된 이미지이다.

미국의 윌라드 콰인이 결정적으로 논리실증주의의 주장들을 깨부수고 형이상학을 복권하는 데 성공한다. 또 영국에서는 스트로슨이나 후기 비트겐슈타인 등이 일상언어학파의 명맥을 이어간다.

이제와서는 반형이상학적이거나 일상언어나 과학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형이상학부터 시작하여 전통적으로 철학에서 다루던 여러 주제들, 혹은 철학사적인 부분까지 언어의 분석을 통해 접근하고 있으며 이렇게 접근하면 죄다 분석철학이라고 한다.

분석철학이 형이상학을 배제하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분석철학 전반에서 상식에 반하는 사유를 싫어하고 과학적인 세계관을 좋아하는 특징이 보인다.

역사[편집]

대체로 고틀로프 프레게의 기호논리학을 그 시원으로 두지만 정작 고틀로프 프레게는 분석철학이라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하고 죽었다.

이후 고틀로프 프레게에게 영향을 받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로부터 분석철학이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고 여겨지는데, 정작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역시 분석철학이라는 활동에 대해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3] 병신같다.

분석철학이 실질적으로 시작된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에 영향을 받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학파버트런드 러셀조지 무어의 영향을 받은 케임브리지 옥스포드에서부터다.

이들은 언어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작업을 진행시키고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헉헉거리는 점에서는 같았으나[4], 비엔나 학파에서는 과학의 언어[5]에 대한 명료화를 목적으로한 분석철학인 논리실증주의를 전개한 반면, 케임브리지 옥스포드에서는 일상언어에 대한 분석을 중점을 한 분석철학인 일상언어철학을 전개하였다.

이후 비엔나 학파의 분석철학은 나치의 등장과 함께 비엔나 학파머튽이였던 모리츠 슐리크학생007빵을 하다 죽어 그 경향이 미국으로 넘어갔으며 케임브리지 옥스포드에서는 시들시들하지만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미국으로 넘어간 분석철학은 윌라드 콰인넬슨 굿맨으로 부흥기를 맞았다.

이상의 과정을 거쳐서 분석철학이 영미에 자리잡으며 영미철학하면 대륙철학과 대립되는 분석철학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런데 윌라드 콰인이 유명한 논문 “경험주의의 두 도그마Two Dogmas of Empiricism" 에서 논리실증주의가 사실상 순환논리라고 비판하게 되고 논리실증주의는 타격을 입는다.

결국 분석철학은 전통철학과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해결국면을 찾고자 노력하는 중이며 그 과정에서 심리철학이나 신프래그머티즘같은 흐름이 등장하였다.

미국고등학생들이 가장 배우기 싫은 학문 1윈가 2윈가에 뽑히는 업적도 달성했다.

학자[편집]

고틀로프 프레게

조지 무어

버트런드 러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루돌프 카르납

윌라드 콰인

넬슨 굿맨

모리츠 슐리크

구스타프 칼 헴펠

김재권

힐러리 퍼트남

피터 스트로슨

길버트 라일

솔 크립키

반 프라센

  1. 여기서 분석은 순수한 형식적, 논리적 분석이다.
  2. 항목 처음 만든 사람 생각이다. 어디 책이나 논문보고 하는 말은 아니다.
  3. 정확히는 비엔나 학파의 논리실증주의에 대해 달갑지 않게 여겼다. 옥스포드나 케임브리지에서는 교수도 했던걸 보면 일상언어분석에 대해서는 동조했던 모양. 후기 비트겐슈타인 철학이 일상언어분석에 가깝다.
  4. 사실은 좀 다른게 비엔나 학파에서는 비트겐슈타인의 처녀작인 논리철학논고에 헉헉된 반면, 케임브리지와 옥스포드에서는 비트겐슈타인 사후에 철학적 탐구로 남겨진바있는 1930년~40년대의 강의에 헉헉거렸다.
  5. 이론, 설명, 서술, 방법 등을 포괄하는 과학에서의 언어적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