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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마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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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마리나(Morris Marina)는 아주 개같은 영국의 자동차 업체인 브리티시 레일랜드가 1971년부터 1984년까지 생산한 중형차의 명칭이다.

본래 마리나는 ADO28이라는 코드명 하에 1950년대 후반부터 10년 넘게 생산하고 있던, 피닌파리나식 디자인의 파리나(Farina) 중형차 라인업의 대체 차종으로서 개발되었으며, 첨단 기술을 내세우던 선대 차종들이 일부 수출시장에서 복잡한 설계 구조 때문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단순하고 저렴하면서도 튼튼한 차로 설계 방향이 잡혔다. 때문에 1948년부터 생산되던 모리스 마이너(Minor) 소형차의 플랫폼이 재활용되었고, 엔진을 비롯한 기존 부속들도 다른 라인업과 공유했다.

외관 디자인은 포드 코티나 2세대 모델을 담당했던 로이 해인즈가 담당했는데, 세단쿠페를 포드 코티나와 카프리(Capri)와 비슷한 관계로 따로 디자인해 무난한 세단과 스포티한 쿠페로 디자인했으며, 더 나아가 마리나의 차체 하부를 브리티시 레일랜드의 모든 뒷바퀴굴림차들이 돌려쓸 수 있도록 새로운 플랫폼도 구상했었다. 문제는 이 플랫폼이 기존 부품들로만 만들어질 것이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당시 경영진들이 너무 급진적인 발상이라고 거부한데가 개발진들도 빠른 개발을 위해 이를 넘겨버렸다는 점이다. 결국 해인즈는 브리티시 레일랜드를 떠나버렸으며, 그 이후에는 브리티시 레일랜드 측에서 생산 공장이나 디자인 변경과 같은 부분에서 대강대강 개발을 계속하다가 차량의 질도 떨어졌고, 개발비도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버렸다.

온갖 진통 속에 1971년에 출시된 마리나는 브리티시 레일랜드 차 치고는 꽤 많이 팔린 편이었으며, 포드 코티나 정도를 빼면 적수가 없었을 정도를 찍기도 했다. 하지만 개발 후반부에 비용절감과 시간 단축을 이유로 차를 급조하다보니 전반적인 주행 감각과 디자인도 경쟁력이 떨어졌고, 게다가 파업이 빈번히 일어나던 당시 영국에서도 매우 심각했던 브리티시 레일랜드의 노사 관계로 인해 파업도 자주 일어나면서 조립품질마져 상당히 나빠졌다. 그나마 개발중이던 후속차는 비용 압박에 시달리던 브리티시 레일랜드의 사정 속에 1970년대 후반 중단되었고, 1979년에 마이클 에드워즈 신임 회장이 들어왔을 때만 하더라도 마리나는 소소한 디자인 변경으로만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다.

새로운 경영진을 맞이한 마리나는, 내부 디자이너와 이탈디자인의 손을 빌어 1980년에 모리스 이탈(Ital)로 개명했고, 외관 디자인도 좀 더 현대적으로 손보았다. 이탈도 그럭저럭 잘 팔리긴했으나 여전히 "최악의 차"라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1984년에 모리스 브랜드 자체가 사라지면서 완전히 단종되었다. 후속차종은 오스틴 브랜드로 나온 몬테고(Montego)로, 몬테고 역시 평판은 여전히 별로였으나 마리나보다는 그나마 좀 나은 평가를 받는 듯하다. 마리나와 이탈을 모두 합쳐 약 120만대 가량 생산되었다.

이후 영국의 탑기어에서 땔감 내지 피아노가 떨어지는 과녁으로 다루는 등, 영국에서는 주로 '1970년대 막장화돤 영국 자동차산업의 상징'으로서 조롱거리로 전락한 상태이며, 2015년 12월 기준으로 각각 724대와 173대의 모리스 마리나와 이탈이 영국에 남아 있다. 다만 플랫폼 공용화를 진지하게 고려한 첫 차종 중 하나인 동시에, 마리나의 개발에 참여했던 조지 턴불이 현대자동차로 넘어와 마리나 2대를 샘플로 제공하고, 개발 경험을 포니 개발에 반영함으로서 대한민국의 자동차 산업에 간접적으로 기여했다는 의의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