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편집]

1952년 이루어진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개헌. 이걸 보면 대한민국 헌법은 사실상 넝마짝에 불과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라 만든 지 4년 만에 헌법 수정이라니.

당시 개헌은 국회의원들이 투표를 하여서 결정하는 사안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에 대한 물리적 탄압과 계엄령 선포 등이 동반되었기에 최초의 친위 쿠데타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개헌이 이루어지기까지 있었던 일련의 과정은 임시수도 부산에서 일어난 일이라서 '부산 정치 파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개헌으로 인하여 기존의 국회의원이 선거인단을 맡는 간선제에서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직선제로 변경되었다.

주요 내용[편집]

1. 선출: 대통령 및 부통령의 임기는 4년 중임제, 선출은 직선제로 함.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며 국회의 승인을 받아야 함(실제로 선출은 안 함). 장관, 차관 등 국무위원은 국무총리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

2. 국회: 국회의 국무원불신임권(야당의 내각의원제 발의안 중 발췌)을 보장하며, 국회가 국무원 결의시 국무원은 총사직의 의무가 있음. 정부는 국회해산권 없음. 국회는 단원제에서 양원제로 변경(여당의 국회 양원제 발의안 중 발췌[1])

과정[편집]

친일 청산에 미지근하게 반응하고 김구도 죽여버리는 덕분에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개차반이 되었고 당연히 1950년 5월 30일에 진행된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은 참패하였다. 210석 중에서 무소속이 120명이었지만 그래도 이승만의 당은 24석밖에 못 건졌다. 이승만은 현행 간선제로 대선을 진행한다면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상황.

하지만 직선제로 한다면 어떨까? 마침 당시는 전시 상황이었고 국민들은 정치 지식이 매우 부족했기에 국민들에게 맡긴다면 자신이 표를 쓸어담을 것이 안 봐도 비디오였다.

결국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서 이승만은 당시 전라도와 경상남도에 계엄령을 선포했고 이 틈을 이용하여 야당 의원들을 조지면서 개헌 찬반 투표를 진행했다. 임시 국회를 진압봉으로 무장한 군경으로 포위한 뒤 기립투표를 진행했는데 166명 중 163명이 찬성, 0명이 반대, 3명이 기권했다고 한다. 반대할 수 있을 리가 있나.

이 개헌이 가결됨에 따라 대통령, 부통령 선거가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뀌었다. 그에 따른 대한민국 제2대 대통령 선거의 결과는 당연하겠지만 남쪽 지방일수록 이승만을 안 뽑는 양상을 띠었다. 여하튼 국민들이 직접 투표한 만큼, 그리고 당시가 전시인 만큼 이승만이 당선되었다.

문제점[편집]

헌법 개정안 제안시 30일 이상 공고하도록 규정하였던 당시 헌법 제98조의 규정을 전시를 핑계로 지키지 않았고, 제대로 공고되지 않은 위헌적인 개헌안을 통해 이뤄졌으며, 역시 전시 상황을 핑계로 개헌에 대한 토론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내각의원제와 간선제를 채택하는 국가에나 존재하는 국무원불신임권 개념을 강제로 채택하는 바람에 국회 파워가 너무 세졌다.

이게 어떤 느낌이냐면,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장차관 불신임안을 국회에 상정해서 모가지 잘라버리는 게 합법적으로 가능해졌다는 거다. 정부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리가 있나.

각주

  1. 상원은 결국 끝까지 운용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