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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백교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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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白敎

1920~1930년대에 리즈시절을 누리다가 1940년대 멸망한 사이비종교. 훗날 슈퍼 스트링에 나오는 백백교의 모티브가 되었는데, 이 만화시리즈에 나오는 백백교처럼 실제의 백백교도 종말론적 사상을 띠고 있었다. 여기 신도가 됬을땐 백백백의의의적적적감응감감응하시옵숭성(白白白衣衣衣赤赤赤感應感感應하시옵崇誠)이라는 존나 소름끼치는 주문을 읽으면 종말의 세계에서도 살아남고 무병장수가 가능하다고 했다.

얘네들이 뽀록났을때는 한국은 물론 일본내+영미권+중국에서도 번역된 기사가 나올 정도로 전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역사[편집]

기원[편집]

백백교의 교주 전용해의 아버지인 전정운은 녹두대장 전봉준의 먼 친척이자 가난한 농부였다. 평소처럼 밭갈이나 하면서 살다가 조선에서 동학농민운동이 떠오르게 되고, 이 틈을 타 동학 코인을 타고 사기를 치고 다니다가 이 사실을 알고 괴꺼솟한 전봉준에게 뒈짓하게 생기자 산골짜기로 빤스런해 동학을 모티브로 한 신흥종교 백도교를 만들었다.

그렇게 전정운은 서양은 용암에 휩쓸리고 동양은 파도에 휩쓸릴 것이며 백도교를 믿는 자들 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개소리를 하면서 신도들을 모았다.

이후 신도들을 상대로 금품갈취를 하고 여자신도들 수십명을 육변기로 굴리면서 잘 놀다가 1919년에 뒤졌다. 그러나 그 백도교는 교주인 전정운이 뒤지고 일본 경찰들한테 후장까지 탈탈 털리면서 좆망했고 그의 아들중 둘째였던 전용해라는 새끼가 가평군에서 만든 종교가 바로 백백교이다. 참고로 그는 형과 동생이 한명씩 있었는데, 둘다 각각 자기 사이비종교를 만들었다.

리즈시절[편집]

전용해는 수많은 신도들을 모으면서 지맘에 안드는 신도는 잔혹하게 살해하면서 은폐했고 외모가 되는 여신도는 자신의 육변기로 사용하면서 잘 쳐먹고 살았다. 특히 헬조선을 노예로 부렸던 좆본이 경제적으로 좆망테크를 타기 시작했던 1920년대말엽부터 1930년대, 이때 좆본경제가 몰락하면서 원래부터 병신이었던 헬반도 경제도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불황기 내몰린 사람들이 많을수록 세력확장이 용이해지는 사이비종교의 특성상 1930년대에 세력을 대규모로 확장했다. 거기다가 당시에는 학비가 워낙 비쌌던 탓에 지금의 초등학교 포지션인 소학교만 나와도 학력이 높은 축에 들 정도로 못 배운 사람들이 많아 지금이라면 비웃음 실컷 받고 묻혀버릴 개소리로도 사람들 대부분을 속이는데 큰 차질이 없던 것도 있었다.

좆망[편집]

이렇게 강력한 세력을 유지했던 백백교는 할애비랑 애비가 전재산을 다 갖다바치고 여동생까지 교주의 첩으로 들어가 빡칠대로 빡친 유곤룡이 단독으로 쳐들어가 전용해 패거리들과 맞다이를 깬 뒤 이 새끼들을 신고함으로서 1937년 일본 경찰에 의해 대대적인 수사대상이 되었다.

간부진들은 전부 잡혔지만 유독 교주만큼은 몇개월을 수사해도 발견되지 않았다가 어둑한 숲에서 목에 칼을 꽂고 노짱 따라간 교주가 한 나무꾼에 의해 발견되었다. 시신도 오랜시간이 지나 부패했고 코 밑은 멧돼지에게 뜯어먹힌 상태라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었는데, 교주 아들이 아버지라고 증언함으로서 교주에 대한 수사는 곧바로 종결되었다.[1] 암튼 그가 뒤진 뒤에 전용해가 죽인 신도들을 묻었다고 전해졌던 양평군에서 시체발굴작업을 한 결과 무려 300구의 시신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1940년 살아남았던 백백교 간부들에게 사형/무기징역이 선고되고 남은 졸개들에게 징역형이 선고되면서 백백교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1. 이렇게 뒤진 전용해는 머가리가 잘려서 포르말린 용액에 담겨 국가수에 보관되고 있었지만 불교단체 모니노의 요구로 인해 2011년 화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