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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키타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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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역전 드라마 그 자체입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두고 동화 같다고 말한다.
아마 월트 디즈니는 이 각본을 보고 "너무 과장됐다"면서 집어던질 게 분명하다!
- 앨런 버체널(레스터 홍보대사)

사가 현에 있는 공립학교인 사가키타 고교의 야구부가 2007년 고시엔에서 수많은 명문고들을 때려눕히고 우승을 차지한 일

현지에선 고시엔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놀랍고 기적적인 우승으로 보고있다.

이 우승이 위대한 이유[편집]

원래 고시엔은 재단의 넉넉한 지원을 받고 야구에만 전념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하고 타지의 유망한 중학교 선수들을 스카우트 해 오는 사립학교들이 득세하는 대회다. 물론 공립학교중에서도 사립급 지원을 받고 우승을 노릴 수 있는 학교도 있긴 하다.

하지만 여기서 언급하는 사가키타 고교는 그야말로 개쩌리 야구부다. 진짜로 고시엔 우승 이런거에 별 의의를 두지 않고 그냥 야구 좋아하는 급식충들이 즐겁게 야구하는게 전부이다.

고시엔 진출도 역사상 단 두 번밖에 못한 학교이다. 그런데 두 번째로 진출한 2007년에 기적을 연출했다.

과정[편집]

2006년만 해도 지역예선 1차전에서 광탈하던 학교가 사가키타였는데 어째서인지 2007년 지역예선에선 사가 현의 학교들을 다 줘패고 학교 역사상 두 번째로 고시엔에 진출한다.

고시엔 진출만으로도 이미 큰 성과를 다 냈는데 1회전에서 후쿠이 상고를 상대로 2대 0 승리를 거두고 첫 승리까지 했다.

당시 사가키타 고교의 주장은 "우린 고시엔 1승 했으니 할거 다 함 2승은 기대도 안하겠음 ㅇㅇ" 라면서 사실상 포기나 다름없는 발언까지 했는데 2회전에선 우치야마 상고와 피터지는 승부 끝에 4대 4 무승부를 거두고 재경기 끝에 9대 1로 완승을 거두며 2회전마저도 이겨버렸다.

이후 사가키타는 16강에서 마에바시 상고를 5대 2로 조져버리고 8강에서는 명문고교로 꼽히는 테이쿄 고교를 상대로 연장 끝에 4대 3 승리를 거두었다.

파죽지세로 4강까지 올라온 사가키타는 나가사키 니치다이 고교마저도 3대 0으로 발라버리고 결승에 올라갔다.

결승전[편집]

매 경기가 역사인 사가키타가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히로시마 최고의 야구 명문고교 고료 고교였다.

철인으로 불리우는 가네모토 도모아키를 비롯해 많은 느프브 야구 스타들을 탄생시킨 탑클래스 고교.

더구나 고료의 에이스는 현재 히로시마의 토종 투수로써 활약하는 노무라 유스케였고 포수는 현 교진군 주전 캐쳐인 고바야시 세이지였다.

경기 중후반까지 사가키타는 노무라에 단 1안타로 틀어막히며 무난히 1패를 할 흐름이었지만 사가키타는 약속의 8회를 창조해내었다.

8,9,1번 타자가 8회말 안타-안타-볼넷으로 무사 만루를 만들었고 2번 타자가 끈질긴 승부끝에 밀리런을 얻어내었다. 참고로 이때 볼넷 판정이 난 볼은 스트존에 걸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애매한 공이었다.

그리고 3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고 초구부터 공격적인 스윙으로 파울을 만들었다. 2구째를 골라낸 뒤 그는 노무라의 빠른공을 통타했고 이것이 고시엔 구장 좌측 관중석에 꽂혔다. 역전 만리런이 터진 순간이다.

고료 고교는 9회초 동점 기회가 있었지만 무사 1루에서 보내기 번트를 했는데 이때 사가키타 수비에서 에러가 나왔다. 이때를 틈타서 1루 주자가 3루를 노렸으나 주루사를 당하는 바람에 찬스가 무산되었다. 결국 마지막 타자였던 투수 노무라가 카라부리 샨신으로 장렬히 물러나며 기적은 완성되었다.

사가키타 고교 야구부의 스펙[편집]

당시 우승 멤버들은 학교 졸업 후 아무도 프로로 진출하지 않았다.

에이스였던 구보 다카히로는 사회인 야구를 하다가 은퇴하고 현재 사가키타 고교 교사를 하고 있다.

결승전에서 역전 만리런을 작렬한 소에지마 히로시는 사가은행에 입사한 이후 14년 퇴사. 현재는 특별학교 교사로 재직중이다.

1승으로도 만족한다던 주장 이치마루 다이스케는 머학 진학 후 사회인 야구까지는 했지만 프로에는 진출하지 않고 은퇴했다.

당시 사가키타 고교 감독은 그냥 야구 좋아하는 국어 선생님이었다.

고시엔 우승 비결이 시간 잘 지키기, 예의 바르게 행동하기, 공부 열심히 하기였다.

사실 사가키타 기적 일어나기 전 여기 야구부는 야구부라기보단 '야구 동아리'였다. 야구부라기엔 훈련 시간 제한 같은 게 막 걸려있었을 정도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에이스에 의존하지 않는 정말로 '팀 플레이'로 내로라 하는 전국구들을 깨부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