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잇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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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의 죽창을 필요로 하는 대상이나 행동, 사상에 대한 문서입니다.
이 문서는 우리들이 반드시 죽창을 들어 찔러야 하는 특정 대상, 해결책은 오로지 죽창뿐인 인물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죽창 앞에선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죽창... 주욱창을 가져와라...

일본의 죽창시즌. 사실 한국보다 훨씬 많이 대규모로 이루어진 케이스가 많다.

보통 번역을 민란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으킨 구성원들을 보면 지역유력인사도 있고 종교관련자도 있고 하니 단순히 농민민란이라고 하기엔 복잡한게 잇키의 성격이다.

그리고 에도 중기가면 죽창보단 그냥 시위 형태가 많았다고 카던데 일본사에 조예가 깊은 사람은 추가하던가

마냥 시위라고 하기엔 쌀가게 때려부수고 폭리 취하던 상인 때려죽이던 소요사태까지 가던 일도 많았다. 주로 대기근 터졌을 때.

대표적인 잇키로는 나마세 소동, 시마바라의 난, 사쿠라 소고로의 잇키, 가스케 소동, 산인 잇키, 교호 잇키, 산추 잇키, 야마나카 잇키, 이와키 다이라 겐분 잇키, 간에몬 소동, 하리마 간엔 잇키, 도쓰카 소동, 신다쓰 잇키, 사누키 간엔 잇키, 호레키 잇키, 우에다 소동, 덴마 소동, 니지노마쓰바라 잇키, 사도잇코쿠 잇키, 오미텐포 잇키, 미나미야마 잇키, 부슈요나오시 잇키, 반도리 소동 등이 있다. 이 사건들 중 몇 개만 간략히 보면

나마세 소동(1609년)- 미토한의 한 마을에서 관리가 살해당하자 미토한의 병사들이 그 마을 사람들을 몰살시킨 사건. 관리가 살해당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첫 번째는 가짜관리들에게 세금을 뜯겨오던 마을 사람들이 진짜 관리를 가짜관리로 오인해서 죽였다는 것이고 두 번째 설은 처음부터 계획하고 죽였다는 설인데 둘 중 어느 얘기가 맞는지는 불분명하다
시마바라의 난(1637년)- 간단하게 말하면 가혹한 세금과 기리시탄 박해에 못 이긴 농민들이 들고 일어났다가 진압당한 사건. 이 잇키에 참여한 농민이 37000여명에 이를 정도로 큰 잇키였으나 막부에서 12만명에 이르는 토벌군에 의해 진압당했다. 이 사건에 참여한 농민 대부분은 처형당했다. 이 사건은 일본의 가톨릭 박해와 쇄국 정책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가스케 소동(1686년)- 시나노국 아즈미군의 다다 가스케가 세금 감면을 읍소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농민 만여명이 마쓰모토성 아래에서 부정한 짓을 한 사람들의 집들을 때려부수며 일으킨 소요사태. 세금 감면을 읍소하려 했던 가스케는 이 사건의 주동자로써 책형(나무기둥에 묶고 창으로 찔러 죽이는 형벌)에 처해졌다.
간에몬 소동(1739년)- 돗토리한에서 흉작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세금을 징수하려하자 5만여명의 농민들이 분노해 일으킨 잇키.
도쓰카 소동(1749년)- 흉작이 2년이나 이어지자 농민들이 세금 납부의 연기 등을 요구하며 일으킨 잇키. 이 사건의 결과 주동자인 도쓰카무라 젠베를 포함해 559명이 처형되었다.
호레키 잇키(1753년)- 재정난에 시달리던 구루메한이 8살 이상의 영민들에게 인두세를 추가적으로 징수하려고하자 농민 수만명이 이에 반발하며 일으킨 잇키. 결국 구루메한에서는 이 조치를 철회했고 잇키를 주도했던 인물들 37명이 사형당했다.
우에다 소동(1760년)- 우에다한에서 13000여명의 농민들이 부패한 관리의 파면과 세금, 부역의 감면 등을 요구하며 일으킨 잇키. 잇키의 결과 농민들의 요구사항은 대부분 수용되었다. 잇키를 주도했던 시미즈 한페이, 나카자와 아사노조 등은 사형당했다.
덴마 소동(1764년)- 바쿠후가 나카센도라는 도로 근처 마을들에 교통량 증대로 인한 비용을 전가(마시스케고라고 한다.)시켰다가 분노한 농민들이 단체로 일으킨 잇키. 규모가 20여만명에 이르렀으며 에도 근처까지 봉기세력이 진격해올 정도라 결국 바쿠후는 마시스케고를 철회했다. 이 사건의 주동자는 효수당했다.
오미텐포 잇키(1842년)- 다이묘가 세금 더 받으려는 목적으로 토지조사하라고 보낸 관리가 너무 대놓고 갑질을 한 덕에 열받은 농민 수만명이 들고 일어난 사건. 이 사건 덕에 이 사건이 일어난 지역에선 토지조사를 가지고 갑질을 하는 일은 사라졌지만 대신 난의 주동자 여럿이 끌려가 옥사했다.
미나미야마 잇키(1859년)- 1800여명 정도의 농민이 세금 감면을 요구하며 봉기한 사건. 이 사건은 희생자를 내지 않으면서 요구사항까지 실현시킨 희귀한 사건으로 알려져있다. 
부슈요나오시 소동(1866년)- 요코하마 개항 후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쌀값이 폭등하자 분노한 마을 사람들이 쌀값 인하 등을 요구하며 들고 일어난 사건. 참여한 사람의 수가 10만여명에 이르러 진압하는데 7일이나 걸렸다. 주동자였던 시마다 몬지로는 사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있다가 옥사했다.
반도리 소동(1869년)- 세금 감면 등을 요구하며 2만여명의 농민들이 들고 일어났다가 소총으로 무장한 부대에 의해 진압당한 사건. 주동자인 미야자키 추치로는 참형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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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미컴 시절중에서도 초창기에 잇키라는 게임이 있었다. 저 농민봉기를 테마로 한거 같은데 아이템중에 진짜로 죽창이 있었다. 앞만 찌를수 있지만 일단 들기만 하면 슉슉 찌르는게 아주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