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진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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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형명(陳炯明, 천중밍)

개요[편집]

이 문서에서는 재평가를 받아야 하는 영웅이나 그런 대상을 다룹니다.
이 사람은 재평가되어야 하는 영웅입니다. 모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위해 잠시 묵념합시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16강 진출을 두팔걷고 도와주신 한반두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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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지구, 혹은 특정 집단을 위기 속에서 구출한 영웅에 대해 다룹니다.
영웅을 향해 무례한 말은 삼가도록 합시다.

중화민국의 군벌이다. 쑨원의 통수를 존나게 친, 매국군벌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매국군벌 인간쓰레기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건 쑨원과 장제스의 악의적인 폄하, 날조에 가깝다.

실제로 천중밍은 과거도 붙은 나름 똑똑한 친구였고 사실 혁명파 출신이었던 인물인지라 나와바리의 개혁에도 힘썼으며 쑨원의 동지인 후한민의 부하 출신이었다. 초창기 국민정부 군사력의 중추를 담당하던 것도 역시 천중밍이었다. 그렇다면 왜 천중밍은 쑨원과 대립하게 됐을까?

장군님께서 쑨원놈을 참교육시킨 원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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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참교육을 거부할 시 성적은 개좆망행이니 순순히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헤이, 영쑤!! 돈 두 댓!"

우선 천중밍은 미국식 자치주 연방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쑨원의 중앙집권모델[1]을 마음에 안들어했다. 이점 때문에 쑨원한테 매국노라고 까였다. 최근에는 천중밍의 자치론도 재평가되고 있는 중이다.

또한 북벌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었다. 천중밍은 북벌에도 반대했다. 쑨원은 그가 매국노라 그런거라고 폄하했지만 천중밍은 쑨원의 북벌의 무모함[2]과 불필요성[3]을 강조한 것뿐이었다.

다음으로 천중밍은 군사적으로 자립에 성공해 신해혁명, 반원세개 전쟁부터 활약했다. 반면 쑨원은 돈이랑 정치적인 영향력은 있었지만 군사력이라고는 좆도 없었다. 괜히 천중밍이 국민정부 군사력의 중추를 맡던게 아니다.

마지막으로 쑨원의 혁명정부 소재지는 광둥이었는데 천중밍의 나와바리도 광둥이었다. 근거지가 가까웠기 때문에 의견차이에 대해 그냥 넘어가기가 힘들었고 쇼부보든지 한판붙든지 해야했다.

(쑨원의 날조와는 달리)천중밍은 쑨원을 설득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쑨원은 '지랄하네 매국노새끼가'로 일관했고 이에 천중밍은 빡돌게 되어 쑨원의 통수를 치게된다

사실 쑨원도 군사력으로 붙으면 답이 없다는걸 알고 있었기에 천중밍을 달래보려고는 했다. 근데 요구사항은 하나도 안들어주면서 '소통'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겠냐? ㅋㅋ

최후[편집]

여튼 간신히 탈출한 쑨원[4]은 군사력을 키워 천중밍을 갈아버리겠다고 다짐했고 황포군관학교 설립, 타군벌과의 연합, 국공합작을 통해 세력을 키우게된다. 권토중래한 쑨원은 군벌 척결의 1차 타겟으로 천중밍을 선택한다. 이때부터 상황은 역전되어 국민당은 틈만나면 천중밍을 줘팼고 천중밍은 그대로 몰락하게 된다. 국민당에 합류한 다른 군벌들과는 달리, 천중밍은 쑨원만이 아닌 국민당의 공적 수준이었던지라 재기불능이 되어버렸고 홍콩으로 빤스런해 찌그러져 있다가 죽는다.

그래도 요새는 재평가가 되고 있지만 하나의중국 이데올로기가 남아있는 이상 좋은평가 받기는 힘들거다. 그러니 천중밍 장군님이 올바른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중국이 분열되기를 기도하자

  1. 쑨원식 총통모델은 너무 집권적이라 쑹자오런한테도 까였다. 사실 쑨원도 (시대적 한계상) 꽤 권위적인 인물이었던지라 비판도 많이 받았다. 대표적으로 쑨원은 군정-약법체제를 옹호하는 근거로 아두론이라는걸 내세웠는데 '민중은 아두니까 우덜 지식인이 제갈량이 되어 이끌어줘야한다'는 소리였던지라 반대파한테 많이 까였다.(쑨원이 견해를 바꾼건 빨리 잡아도 5.4운동 이후다)
  2. 혁명파만으로 북양군벌에 비비긴 역부족이었다. 당장 신해혁명부터가 위안스카이한테 대주는 꼴이 됐었음. 위안스카이 생전의 북양군벌은 장제스가 상대한 군벌로 따지면 펑위샹+우페이푸+장쭤린+옌시산 수준이었는데 옌시산만 빼면 모두 국민정부랑 1대1로도 충분히 비벼볼만한 놈들이었다.
  3. 북벌 같은거 안해도 당시 중국인들은 충분히 힘들었는데 북벌하면 더 씹창날게 뻔했다
  4. 이 탈출을 주도한게 장제스였고 이때부터 쑨원의 총애를 얻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