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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키가와 카즈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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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의 유명한 따까리들 중 하나. 타키가와 카즈마스라고도 하지만 이치마스라고도 불렀다. 당장 위백만 가봐도 그렇게 나온다.

닌자로 유명한 코우가 출신으로, 사카이에서는 철포를 익히고 그 외의 지역에서 각종 군략과 축성술을 익혔다. 카즈마스하면 실력으로 하급무사에서 오대장까지 오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는 '나아갈 때도 타키가와, 물러날 때도 타키가와'라는 말이 널리 퍼져있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카즈마스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애들만 해도 하시바 히데요시, 아케치 미츠히데, 시바타 카츠이에, 니와 나가히데 등등이었으며 4명 모두 오다에서 크게 똥방귀를 뀔 수 있는 새기들이었다.

카즈마스의 장밋빛 인생은 노부나가 아래에서 절정을 맞이했다. 간토 간레이 자리를 먹고 코즈케와 시나노를 다스리게 되었으니 이쪽 지방에서는 카즈마스를 밀어낼 만한 양아치가 존재하지 않았다. 원래 동부에는 터줏대감인 호조가 있었지만 카즈마스가 오다 소속인데 어찌 함부로 때릴거임; 이 때 카즈마스 나이가 오십 중후반이었던게 흠이긴 해도 천하는 이미 오다의 손아귀에 들어온 상태였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의 변이란 쿠데타에서 목숨을 잃어버린 것이다. 카즈마스는 이미 중앙에서 너무 먼 곳에 있었을 뿐더러 근처에 도사리는 호조란 놈들도 제어가 되지 않는 중이었다. 심지어 노부나가가 죽었다는 소식은 카즈마스에게 너무 늦게 전해졌다. 라이벌인 히데요시가 서국으로부터 돌아와 미츠히데를 격파하는 공을 세운데 비해, 카즈마스는 (노부나가가 뒤진)오다를 두려워하지 않는 호조 우지나오와 동부의 세력에 의해 각종 고난을 겪는 등, 여러모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어떻게든 오와리로 돌아가려고 했더니마는 그마저도 매우 어려웠다. 게다가 온갖 역경을 뚫고 오와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기요스 회의도 끝나있었다. 오다의 후계자를 정하는 기요스 회의에 참가하지 못했으니 중신으로서의 입지와 발언권이 존나 좁아졌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뭐 불참까진 아니었고 여하튼 참석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결과적으로 카즈마스가 회의에서 미친 영향력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여기서 멈췄으면 모르겠는데 이번엔 선택 미스로 카츠이에를 지지하는 과오를 범하게 됐다. 그러니까 카츠이에와 히데요시가 권력을 두고 다투고 있었는데 줄을 잘못 선 것이다. 히데요시보단 역시 카츠이에지! 하고 전선에 뛰어든 카즈마스였지만 이 불쌍한 영감에게 돌아온 것은 시즈가다케 전투 후 카츠이에가 죽음을 맞이했다는 존ㄴㄴ나게 안 좋은 소식 뿐이었다. 카즈마스는 울면서 히데요시에게 항복했다. 패자가 된 카즈마스의 영지는 이내 히데요시에게 흡수당했고 인생무상이라고 했던가 씨발 원숭이 새끼.. 카즈마스 우러욧

1584년에는 코마키 나가쿠테 전투에 참가했다. 그런데 이 전투에서 카즈마스는 공적을 세우긴 커녕 도쿠가와 이에야스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각종 추태를 부리다가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이나 받는 신세가 됐다. 추한 늙은이가 된 카즈마스의 말년은 추한 은거로 끝났다. 이런 방식으로 사라졌으니 언제 죽었는지도 확실하게 전해지지 않는다.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일반적으론 1586년에 죽었다고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