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프수센네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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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077년~기원전 105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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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047년~기원전 1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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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001년~기원전 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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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멘
(기원전 986년~기원전 967년)
프수센네스 2세
(기원전 967년~기원전 943년)
이집트 제21왕조의 파라오
아메넴니수 프수센네스 1세 아메네모페
재위기간
기원전 1047년 ~ 기원전 1001년

개요[편집]

이집트 제21왕조의 제3대 파라오.

치세[편집]

통치기간이 무려 46년이나 되지만 특기할 만한 업적이 딱히 없다. 파라오의 권위는 이제 과거의 것이 되었고 지방 통제력을 상실하면서 이집트 내부는 수많은 도시국가들과 리비아-이집트계 소왕국들이 난립했다. 파라오의 통치권이 그나마 미친 지역은 나일강 삼각주 유역의 하이집트에 불과했으며, 중부와 상이집트 지역은 신왕국 말기부터 아문신전의 대신관 권력이 강해지며 한 나라 안에 정부가 2개 있는 꼴이었다.

그나마 기록으로 남은 건 프수넨네스 1세의 재위 시기에 나일강 유역의 타니스에 거대한 성벽을 건설하여 요새화시켜 수도가 멤피스에서 타니스로 완전히 이전되었다는 것 뿐이다.

기타[편집]

사실 21왕조 파라오들이 대부분 듣보잡이지만 이 양반은 그나마 21왕조 치고는 유명한 편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파라오의 무덤 중에서 유일하게 도굴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투탕카멘도 2번의 도굴 시도가 있었는데 그나마 첫번째는 훔쳐가기 쉬운 보석과 연고류만 털렸고(그래서 투탕카멘의 무덤에선 작은 장신구류는 거의 안 나왔다) 두번째 시도는 무덤 경비대에게 발각되어서 실패했었다. 하지만 무덤을 조성한 솜씨나 발굴된 유물의 질을 보면 이집트의 국력이 내리막길을 겆는 시점이라 확연히 떨어진다. 투탕카멘의 3중관은 준보석과 색유리를 박고 110.6kg의 순금을 녹여만들었지만 프수센네스 1세의 관은 겨우 맨 안쪽관만 은으로 만들었다. 가장 바깥쪽 관은 새로 만들 여력도 없었는지 람세스 2세의 아들인 메르넵타의 관을 빼돌려서 재활용했다. 여기에 더해서 무덤이 있는 장소가 나일강 삼각주의 타니스였는데 오랜 세월 동안 물이 무덤에 들이찼다가 빠지기를 반복하면서 벽화의 색이 다 지워지고 썩기 쉬운 목재 유물들은 전부 유실되었다. 심지어는 미라마저도 무덤 환경이 안 좋아서 발굴할 때 관을 열었더니 다 썩어서 뼈와 부장품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마지막으로 무덤이 처음 발견된 게 1939년이었는데 이 시기는 제 2차 세계대전직전이라 관심도 못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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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기원전 11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