雙城摠管府

원간섭기 원나라철령 이북에서 도련포이남사이 안변군, 원산, 문천군, 영흥군, 고원군, 정평군 일대에 설치한 행정구역을 가리킨다.

1258년 12월 몽골군이 쳐들어와서 주민들이 저도(猪島)라는 섬에 들어가면서 시작되었다. 주민들과 함께 섬으로 들어가 몽골군과 싸우던 동북면병마사 신집평은 저도를 지키기 힘드니 더 쓰레기섬이었던 죽도로 보내면 되겠지? 라고 오판을 저질렀다가 섬에서는 반란이 일어나게 만들었다.

이때를 틈타서 조휘[1] 와 탁청[2]등주, 문주등 여러 동네 북계디언들과 으쌰으쌰해서 폭동을 일으켜 화주부사 김선보, 경별초, 등주부사 박인기와 신집평의 목을 짜른뒤 몽골에게 화주 이북의 땅을 갖다바치게 되었다. 원나라가 이때 상납받은 땅에 세운게 쌍성총관부로 조휘는 쌍성총관부 총관, 탁청은 천호로 임명되었다.

조휘 씹쌔끼는 그 지역 군대를 모아 한계성[3]춘천을 공격하는 등 심심하면 고려를 공격하는 쓰레기짓을 저지르기도 했다. [1]

이후에도 자기 동네에서 온갖 미친짓을 다해서 그랬는지 1290년 30년을 못 가고 없어진 동녕부와는 달리 쌍성총관부는 100년 넘게 유지되었고 조휘는 총관직을 아들 조양기와 손자 조돈에게 물려주었다.

손자 조돈은 해양으로 가서 고려에서 쌍성총관부로 런했던 고려인들을 위무했고 원나라가 좆망테크타니까 테세전환해서 고려에 귀부했고 공민왕이 그의 지원을 받아 1356년 쌍성총관부를 작살내면서 없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조소생이란 새끼가 빼애액거리다가 이자춘에게 밀려서 이판령을 넘어가서 튀자 동북면병마사 이자춘이 쌍성총관부지역을 차지하고 세를 무시무시하게 불리게 된다.

각주

  1. 한양 조씨로, 안변 근교였던 용진현(龍津縣)에서 살았다.
  2. 정평군 출신이다.
  3. 인제군 북면 한계리에 있는 한계 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