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김일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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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210.57.230 (토론)님의 2021년 6월 14일 (월) 22:5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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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삼성 라이온즈 그 자체를 설명합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고 있는 대상은 삼성 라이온즈 그 자체이거나, 혹은 삼성 라이온즈의 영웅입니다.
놀랍게도 라팍에선 이 영웅을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본 영웅을 욕보일 시 당신의 휴대폰은 불에 활활 타오를 것입니다.
이 문서의 인물은 삼성 라이온즈 레전드입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고 있는 인물은 삼성 라이온즈의 레전드입니다.
본 인물은 과거,현재의 삼성 종신선수나 감독이고, 모두 라이온즈 그 자체입니다.
오직 이만수, 양준혁,류중일, 이승엽, 박한이, 권오준, 오승환과같이 라이온즈만을 위해 살아온 인물들의 문서에만 이 틀을 달 수 있습니다.
KBO리그 역대 다승왕
1984년 1985년 1986년
불멸의 투수 꼴뚜기&황금박쥐 앙팡만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야구를 존나 잘하거나 야잘알이며 야구 그 자체입니다.
믈브느프브에 있기 마땅한 존재입니다. 크보크프브르 같은 건 그에게 너무 좁습니다.

옛날 칩성의 좌완에이스.

김시진이랑 원투펀치를 이루었다. 사이는 딱히 좋다곤 말 못했지만 그래도 겉으로는 김시진이 에이스라며 치켜세워줬다.

일본명은 니우라 히사오

삼성에 오기전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선수 활동을 했는데 입단 과정이 다소 골 때리는게 국적이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이유로 드래프트를 거치지 않고 자유계약 비슷한 형식으로 입단하게 되었다. 이걸 본 일본 야구 기구 측에서 앞으로는 국적 관계없이 드래프트를 통하도록 규정을 변경했다.

사실 한국프로야구 최초이자 최고의 용병투수라고 볼 수 있다. 재일교포였지만 한국어 한마디도 못하셨고 항상 팀에서 겉돌기만 했으니... 장명부도 최소한 몇마디의 한국어는 할 줄 알았고 본인이 한국계라는 인식은 가졌지만 이분은 한국 사람이라는 인식이 크게 없고 아버지의 나라에서 야구를 발전시키겠다며 왔다.

ㄴ장명부는 한국에 있을때 의외로 한국어 구사에 열심히 노오오오력했던 사람이다. 몇마디만 할줄알았던게 아니라 아주 유창한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기자가 질문한것에 바로 대답할 정도로 잘한다. 근데 김일융은 여전히 지금도 한국어 한마디 못한다. 유튜브에 장명부쳐서 인터뷰 봐바. 초기엔 일본어만 썼지만 86년 커리어 마지막땐 재일교포치곤 잘말하는 편이다. 3년새 말하는게 엄청 달라졌다. 재일교포선수중에선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줄 알았던 선수가 손에 꼽는다. 홍문종(정치인 말고 꼴데에서 뛰었던 분. 84년 우승할때 역시 불멸의 투수못지않게 톡톡히 기여해주심), 유고웅, 고원부, 김성길, 김홍명(재일교포인지 순수일본인인지 논란이 있는데 어지간한 한국인 수준으로 한국어를 잘했다한다), 김실(의사소통문제로 짤렸다는데 나 이분한테 싸인 받을때 한국어 통역필요없을정도로 잘하셨음. 걍 코치로서 능력이 별로여서 짤린듯), 정문언, 주동식, 김기태(또라이 눕동개객기 말고) 김무종(일본에 있었을때에도 한국어를 많이써서 못하지 않았다카더라) 송재박(현 돡무원) 최일언(초기엔 못했다. 지금은 오래있어서 왠만한 한국인 수준)정도 있긴 했는데 이들중에 장명부는 그래도 양반. 다만 홍문종이나 유고웅, 송재박, 최일언, 김무종 같이 유창한 이들보단 한국어는 한수아래.

84년코시에서 최동원의 활약에 묻혀서 그렇지 이분도 코시 3승을먹고 7차전 최동원과 맞대결을 펼치신 분이다.

1984년 코시-

1차전 최동원 완봉승 롯데승

2차전 김일융 완투승 삼성승

3차전 최동원 완투승 롯데승

4차전 김일융 승리투수 삼성승

5차전 김일융 승리투수 최동원 완투패 삼성승

6차전 최동원 승리투수 롯데승

7차전 최동원 완투승 김일융 패전 롯데승

즉, 7차전에서 유두열의 역전 쓰리런 아니었으면 한국시리즈 4승 위업은 이 분 이름으로 남았을 것이다.

ㄴ 그와는 별개로, 롯데 발목잡는 것도 못하고 내내 쳐맞던 빙동님은 이 일로 더 까인다.

85년 25승으로 김시진과 공동 다승왕을 탓다 이당시 김영덕이 관리해주며 던졌다고.

86년 당뇨병이 심해지면서도 이닝은 소화 못했지만 13승을 찍었다.

그 뒤 일본야구로 돌아가서도 10승 찍었다.

현재는 해설하는듯.

여담으로 전담포수는 쪽동님이었다. 갓동님하고는 싸인이 안맞으니까

ㄴ갓동님과는 엄청 불화가 심했다한다. 김시진과 이만수사이보다 더 사이가 안좋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