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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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開泰寺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천호산(天護山)에 있는 사찰.

936년 신검의 항복을 받아내고 후백제를 정복,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이 근 30여년간의 난세가 드디어 끝났다는 것을 기념하여 신검이 항복한 땅에 거대한 절을 세우고 태평성대를 연다라는 의미로 그 절을 개태사라 이름지었다.

아 그리고 왕건이 통일을 기념하여 절에 직접 아래와 같은 발원문을 썼다.

생민(生民)들이 백 가지 근심을 만나니, 많은 고통을 이겨 낼 수 없었습니다. 군사는 경내(境內)에 얽히어서 재난이 진한(辰韓)을 시끄럽게 하니, 사람들은 의탁해 살 길이 없고, 가옥들은 온전한 담이 없었습니다. 운운. 하늘에 고하여 맹세하기를, ‘큰 간악한 무리를 섬멸 평정하여 생민(生民)을 도탄에서 건져, 농사와 길쌈을 제 고장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하겠나이다.’ 하였습니다. 위로 부처님의 힘에 의탁하고, 다음에 하늘과 신령의 위엄에 의지하여, 20여 년간의 수전(水戰)과 화공(火攻)으로 몸소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천리 길 남(南)으로 치고 동으로 쳐서 친히 간과(干戈)를 베개로 삼았더니, 병신년 가을 9월에 숭선성(崇善城) 가에서 백제의 군사와 대진(對陣)할 제, 한 번 부르짖으니 흉광(兇狂)의 무리가 와해(瓦解)하였고, 두 번째 북을 울리니 역당(逆黨)이 얼음 녹듯 소멸되어 개선의 노래가 하늘에 떠 있고, 환호의 소리는 땅을 뒤흔들었습니다. 운운. 들판의 도적과 산골의 흉도들이 저희들의 죄과를 뉘우쳐 새사람이 되겠다고 곧 귀순해 왔습니다. 모(某 왕건(王建))는 그 뜻이, 간사한 자를 누르고 악한 자를 제거하며, 약한 자를 구제하고 기울어진 것을 붙들어 일으키는 데 있으므로, 털끝만큼도 침범하지 않고 풀 한 잎새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운운. 부처님의 붙들어 주심에 보답하고, 산신령님의 도와 주심을 갚으려고 특별히 맡은 관사(官司)에 명하여 불당을 창건하고는, 이에 산의 이름을 천호(天護)라 하고, 절의 이름을 개태(開泰)라고 하나이다. 운운. 원하옵건대 부처님의 위엄으로 덮어 주고 보호하시며, 하느님의 힘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이후 고려 국부가 세운 절 답게 절 내에는 왕건의 초상화가 보관되고 있었고 불교계의 성지급인 사찰중 하나로 취급받았으며 고려가 영 좋지않은 일로 개판이 될 때마다 개태사에서 나라의 안정을 기원하는 제사를 치루었다고 한다.

하지만 고려말 왜구의 침입으로 인해 개작살이 났고 완전히 병신이 되었다가 1428년 옛 사찰에서 약간 남쪽으로 떨어진 골짜기에 재건된 개태사가 지금까지 전해내려온다. 하지만 삼존석불과 5층 석탑은 왕건이 창건했을때 그대로 전해내려오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