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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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전[편집]

정철과 선조가 피운 땡깡인 기축옥사를 마무리짓고, 니탕개의 난때 상당히 활약했다.

임진왜란[편집]

도원수로 진급했으나 전투 능력은 워낙에 꽝이었던 데다가 잘못된 상소를 보내 엄한 신각까지 죽여버린 것 하나 때문에 지금까지 까이는 원인이 된다.

일각에는 김명원이 자기가 실수했던 거 덮으려고 신각을 모함해서 죽게 만든 개새끼로 알려져 있는데, 이건 사실이 아니다. 김명원 입장에서는 후퇴하고 나서 임진강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신각에게서는 연락 하나 오지 않고 나타날 생각도 안 한다. 그리고 당시 조선군 장수 대다수가 왜놈들이랑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쨌다. 그런 상황에 도원수라는 직책 하나 때문에 조정에 뭔가 장계를 올려야 되는데 신각이 소식도 없고 나타나질 않으니 적진도주 한 것이라고 오해할 만 하다.

한강에서 처음 패하고, 이어서 임진강에서도 패하고, 또 이어서 평양성에서도 패하고, 마지막으로 평양성 수복때 또 패하고...

요약하자면, 행정 능력은 좋았는데 도원수로 임명되는 바람에 명성을 말아먹은 케이스. 요즘으로 치면 구청장 시키면 잘 할 사람을 괜히 합동참모의장 시켜서 경력에 오점이 간 셈과 같다.

그나마 잘한 게 있다면 이순신이 탄핵당할 때 중립을 주장한 극소수의 중신 중 한명이었단 것과, 훗날 오성 이항복과 함께 이순신을 복직시킬 것을 주장한 것. 아마도 자기 잘못 때문에 억울하게 죽었던 신각이 생각났었던 걸지도... 그런데 문제는 저것조차도 앞서 한 뻘짓거리들 때문에 정탁 할배나 오리대감한테 묻힌단 거다.

신각 사건 때문에 도원수 짤리고 그 후임으로 행주대첩이라는 큼지막한 군공을 세운 권율이 부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