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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시다 마사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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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오사카에선 그/그녀를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했었습니다.
본 인물을 욕보일시 故테쓰마냥 해체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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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시다 마사타카
梨田 昌孝

Masataka Nashida

기본 정보
생년월일 1953년 8월 4일
출생지 시마네 현 하마다 시
국적 일본 일본
학력 시마네 현립 하마다 고교
신장 178cm
체중 75kg
선수 정보
입단 1971년 긴테쓰 버팔로스 2순위
투타 우투우타
포지션 포수
경력 긴테쓰 버팔로스 (1972 ~ 1988)
지도자 정보
경력 긴테쓰 버팔로스 작전 · 배터리 코치 (1993 ~ 1995)
긴테쓰 버팔로스 2군 감독 (1996 ~ 1999)
긴테쓰 버팔로스 감독 (2000 ~ 2004)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감독 (2008 ~ 2011)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감독 (2016 ~ 2018)

소개[편집]

みんな胸を張ってプレーしろ。お前たちが付けている背番号は、すべて近鉄バファローズの永久欠番だ.

모두들 가슴을 펴고 플레이해라. 너희들이 달고 있는 등번호는, 모두 긴테쓰 버팔로즈의 영구결번이다.

 
— 나시다 마사타카. 2004년 9월 27일 시즌 최종전[1]이자 긴테쓰 구단의 마지막 시합 전날 선수단에게 남긴 말

현역시절엔 긴테쓰 버펄로스의 프랜차이즈 포수였고 감독시절엔 긴테쓰의 마지막 감독이자 마지막 우승감독이었던 분이다.

다 조까고 위의 개씹간지명언을 일본야구계에 남긴 분으로 유명하다.

선수시절[편집]


선수때는 동료 포수 아리타 슈조와 함께 아리나시 콤비를 결성해 견실한 수비력과 나름의 장타력을 보유한 포수로 활약했다. 특히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한 도루저지 능력이 빼어났다. 퍼시픽리그 도루저지율 시즌 1위 기록도 이 분의 것.(1979년 .536)

현역 마지막 타석이 1988년 10월 19일 리그 우승이 갈리는[2] 카와사키 구장에서의 VS 롯데 오리온즈 더블헤더 1차전 9회초 2사 2루 때 대타로 나온 것이었는데, 그 타석에서 극적인 우세 적시타로[3] 팀을 1차전 승리로 이끌었으나 정작 2차전에서 주전 마무리 요시이 마사토와 에이스 아와노 히데유키가 둘이서 쌍으로 블론세이브를 저지르며 경기를 무승부로 말아처먹는 바람[4]에 그 적시타가 헛수고가 되고 만 불운한 일화가 있다.[5]

석연찮...?

타격폼이 특이한데 팔을 꼬부락거리는 타격폼을 가졌다. 팔이 꼬불꼬불하는 모습이 곤약이 탱글탱글 한 거 같다고 해서 곤약타법이란 별명이 붙었다.

NPB 통산 1323경기 874안타 113홈런 439타점 타율 0.254 출루율 0.312 장타율 0.399 OPS 0.711 도루저지율 0.391

통산성적이 평범해 보이지만 이래뵈도 골글 4회 수상에 베스트나인에도 3회나 선출되었던 나름 한 시대를 풍미한 포수다.

지도자 시절[편집]

93년도에 긴테쓰에서 작전 겸 배터리코치로 출발해 96년엔 2군 감독, 00년에는 1군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감독 첫해엔 꼴찌를 찍었지만 2001년 긴테쓰를 개막장 투수진을 캐리해준 막강타선빨로 12년만의 퍼시픽리그 우승을 거둔다.[6] 그러나 일본시리즈에선 타자들이 야쿠르트 투수진에 가로막혀 힘을 못쓰면서 야쿠르트에 1승4패로 쳐발렸다. 02, 03년에도 2, 3위를 차지하는 등 나름대로 능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다.

그러나 04년엔 모기업의 경영난으로 인해 구단 해체가 결정되면서 구단이 내외적으로 대혼란에 휘말리게 되어 성적이 5위로 폭삭 내려앉으며 긴테쓰의 마지막 시즌을 지휘한 최후의 감독으로 남았다.

그 뒤 한동안 해설가를 맡다가 08년부터 닛폰햄 감독으로 복귀해 09시즌 리그 우승 등 ㅍㅌㅊ 성적을 찍었고 11년 이후 또 사퇴해 해설가 평론가가 되었다.

그러다가 작년부터 금칰의 감독이 되시었다. 그런데 등번호가 영... 그러나 2018년 성적폭망으로 시즌 도중 사퇴했다.

감독 생활 2년차마다 팀이 1위를 하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2017년 DTD를 타며 깨졌다.

기타[편집]

1984년까지 썼던 선수시절 등록명(梨田 昌崇)과 현재 이름(梨田 昌孝)이 살짝 다른데 발음은 같다.

한신에서 감독교체 떡밥이 터지면 어째서인지 나시다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었다. 감독성적이 ㅍㅌㅊ고 오사카를 연고로 한 팀 출신이자 한신에서 뛴 경험이 1도 없던 사람이라는 점 때문에 한신빠들이 항상 감독으로 나시다를 찾았다. 한신 출신들이 감독 맡으면 대부분은 성적이 개판이기 때문

아재개그가 주특기이시다

공교롭게도 최근 코로나에 걸렸다. 한때 호흡기까지 쓸 정도로 중증이었다가 천만다행히도 회복했다.

  1. 공교롭게도 합병 상대였던 오릭스 블루웨이브와의 원정경기였다. 경기는 아깝게도 2대 7로 졌는데 이날 오릭스 측 승리투수가 다름아닌 구대성.
  2. 이 더블헤더에서 2시합 다 긴테쓰 버펄로스가 이기면 긴테쓰의 9년만의 리그 우승, 1시합이라도 지거나 비기면 세이부 라이온즈의 리그 4연패였다.
  3. 만약 나시다가 그 타석에서 아웃됐으면 바로 긴테쓰의 리그 우승이 날라갔다. 하루에 2경기를 소화하는 더블헤더 특성상 1차전은 9회까지 치르게 되어 있었기 때문.
  4. 당시 규정엔 경기 시작 시간에서 4시간 경과시 경과된 시점의 이닝까지만 진행하도록 되어 있었다. 결국 아와노와 요시이가 블론을 저지른 후 양팀 전부 동점인 상황에서 10회 말 때 4시간 경과까지 클리닝 타임까지 포함해 1분밖에 남지 않는 상황이 되어 긴테쓰는 8년만의 리그 우승을 날리고 만다.
  5. 사실 이건 당시 감독이었던 오기 아키라(스즈키 이치로를 스타로 만든 그분)의 세이콘도 못할 투수혹사가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무려 더블헤더 2일 전 완투를 했던 에이스 아와노 히데유키를 더블헤더 2시합 때 전부 마무리 투수로 내보냈던 것. 아와노는 1차전 땐 어찌저찌 막았지만 2차전 때 결국 블론세이브를 저지르며 리그 우승 실패에 일조하고 만다.
  6. 이 우승이 퍼시픽리그 최초의 전년도 최하위팀이 리그 우승을 거둔 사례였다. 참고로 이 해가 바로 기타가와 히로토시의 대타 역전 만루 우승 결정 홈런이 나왔던 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