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박세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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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증의 친구이자 오랜 벗이다. 1649(인조 26년)년에 진사가 되어 성균관에 들어갔고 여러 관직을 전전하다 1659년에 효종이 승하하자 1차 예송논쟁 때 3년상을 주장한 남인의 주장을 반대하고, 1년상을 주장한 송시열, 송준길의 주장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1674년에 숙종이 즉위하였을 때에는 남인이 집권하여 1년상을 주장한 여러 서인 측 신하들이 죄를 받자 박세채도 유배를 떠나게 되었다. 그는 6년 뒤인 1680년에 경신환국으로 인해 다시 재등용되었으며 1684년에 회니시비가 발생했을 때, 처음에는 송시열의 편에 섰으나 끝내 그도 소론의 편이 되어 윤증을 두둔하였다. 1689년에 기사환국이 일어난 뒤에는 모든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1695년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