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베를린 사람입니다

 

개요[편집]

분단시대 독일의 수도 베를린, 말그대로 베를린의 서쪽이다. 참고로 서독의 실질적 수도는 임시수도 본이란 듣보동네다. 동독은 동쪽 반뿐이긴 하지만 서독마냥 월경지(육지의 섬)가 아닌지라 문제없이 걍 수도로 삼았다.

성립[편집]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이 패망한 직후, 승전 연합 4개국 미영불소는 독일 영토를 분할 점령했는데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과 안슐루스로 합병된 오스트리아의 수도 도 그렇게 4개국이 나뉘어 가졌다.

본디 소련이 엄청난 피값(대략 2500만에서 3000만명)을 치른끝에 독소전에서 승리하자 그 대가로 베를린을 가져갔다. 서방 연합국이 소련에게 베를린 정ㅋ벜 인증샷을 찍을 기회를 양보한것.(그래서 서방연합국은 딱 북독일 엘베강까지만 진격했다. 페튼같은 이들은 언짠아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때문에 소련이 베를린은 전부다 우리꺼 라고 주장할수 있었을지도 모르나 서방 연합군도 노르망디 상륙작전도중 피똥을 쌌고 아르덴숲에서 벌지대전투로 매운맛을 봐야했으므로 연합군도 나름 서부전선에서 소풍만 즐긴것은 아니었고 이때문에 히틀러 상병신이 동부전선 병력을 서부로 빼돌려야했으니 스탈린도 득을 본게 사실이다.

거기다가 시대정신상 마 승전국이면 마땅히 적국 수도에 가서 우리깃발 딱! 꼽아야하지 않겠습니까? 라는 정신에 입각해서 피값겸해서 당근 나치독일의 소굴이자 근머 통일독일 민족국가의 수도라는 무지막지한 상징성때문에 베를린을 통째로 양보해주지 않았다. 대신 절반을 3국이 나누어 가졌고 소련은 그 나머지를 혼자 다 먹었으니 연합국 각국에게 돌아간 몫은 소련보단 훨씬 작아서 소련을 배려해준것이긴 하다

그리하여 연합국의 병기창 노릇을 수행한 갑중갑 미국뿐만 아니라 나름 본토항공전이나 대서양해전으로 고전한 영국은 물론 개전과 동시에 단 5주만에 항복한 프랑스마저 꼽사리를 끼어 서베를린은 3등분되게 되었다. 프랑스의 경우 쪽팔려서 대려 성질낸것도 있겠지만 동맹국이란 영국이 붕쯔붕쯔 거리다가 본토 다털리고 5년간 나치식민지 상태였다가 심지어 그 동맹인 영궈는 프랑스가 패전하자마자 전함들마저 나치에게 빼았길바엔 다 태워버리자면서 격침시켜서 이거라도 먹고 떨어지렴이라면서 달래주긴 해야했다. 안습

동 베를린은 소련이 가져갔고 나머지 서베를린은 미영불 3개국이 가져갔다. 문제는 베를린이 한가운데 있는 브란덴부르크 주는 동독영토였다. 안습2

그래서 서독의 수도 베를린은 어마무시한 월경지가 되었다. 그때문에 현실적으로 수도로 써먹기도 애매했고 서독이 실질적으로 개발을 하든 뭐하기도 뭣했으므로 시장이나 행정공먼만 파견했지 국방은 승전 연합국이 다 해먹었다. 이는 동베를린도 마찬가지라 소련군이 주둔했다. 냉전이 끝나고 동서 연합국이 베를린에서 철수하여 다시 독일의 품으로 돌아온다

오스트리아는 왠지 피해자 포지션이고 그 중요도가 떨어지는 코딱지만한 나라였으므로 온전히 통일된 영토가 보존되었지만 전범인 나치독일은 연합국이 온전한 통일국가로 내버려두지 않았고 마침 냉전이 시작되자 중부유럽에 탱커하나를 만들기회였으므로 그렇게 연합국 높으신 양반들 의지에 따라 독일은 분단되고 그 수도 베를린도 쪼개진다. ㄴ에효, 항상 독일은 오스트리아 새끼들 때문에 피해보는구나 ㅉ

공산주의에 떠있는 자유의 섬 혹은 자본주의의 부랄[편집]

서 베를린은 서방의 불알이다. 우리가 서방을 울려주고싶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을 꽉 쥐어주기만 하면 된다. -흐르쇼프

처음부터 베를린에 베를린 장벽같은건 없었고 서베를린 시민들은 동독쪽으로 놀러갔고 동독국민들도 서독에 놀러다녔다.

그러나 1948년 이되면 독일은 결국 동독서독으로 분단되면서 베를린 또한 똑같이 동독과 서독이 물려받아 분단된다.

하지만 분단되자 마자 48년 냉전이 격화되자 서 베를린을 소련 빨갱이 쉐리~~덜이 굶겨죽이겠다고 엄포를 놓으니 이것을 베를린 봉쇄라 한다. 그러나 갓 천조께서는 이 분탕 빨갱이 곰탱이 쉐리덜~~을 외치면서 우리의 커티스 르메이 쉐프께서 수송기를 닥닥 긁어모아 무시무시한 공중수송 물량전을 벌여 콧수염 강철남 의 소련만 병신 만들고 결국 제풀에 스스로 봉쇄 풀었다.

이후 1961년이되면 쏘오련도 별거 아니네+이 나라 좃까네를 외친 FREEDOM™한 동독 시민들은 서베를린으로 구름떼같이 몰려들었고 이대로 가다간 일할사람은 없고 공산당원만 덩그러니 남게될 위기에 처하자 동독 당국이 서베를린 경계를 따라 벽을 쌓게 되니 이것이 그 유명한 베를린 장벽이다.

이 베를린장벽때문에 수많은 동독주민들이 죽어나갔다. 탈출 난이도가 올라가서 동독 국경경비대한테 총살당함은 물론 추락사하는등 다양한 사인으로 죽어나갔다. 안습. 실패한다면 차라리 넘다가 걸려서 징역살이하는게 가장 좋게 끝나는 수준이었다.

서베를린을 사수하려는 서독의 눈물겨운 노력[편집]

말그대로이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지?

자유의 섬이라는 상징성 때문이라도 이 도시를 지키기 위해 꾸준히 많은 시민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보조금도 쥐어주었다.

더불어 분단시대때 민항기든 뭐든 공산당은 자기네 영공에 들어오면 무조건 요격이었고 (칼기 007편 사건을 생각해 보라) 그 때문에 서독에서 동독으로 들어가는것은 오로지 동독령의 고속도로를 타고 가는거 뿐이었는데..도로 수리비도 동독이 서독에게 떠맡겼고 서독 시민을 온갖 명목으로 갈구고 벌금을 떼리며 쥐어짰다. 심지어 모자라는 치약같은 생필품도 압수하기도 했다고 한다. 안습.

소멸[편집]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고 1990년 독일이 통일되면서 동독, 동베를린과 함께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여담[편집]

서독 총리로 재직했던 빌리 브란트가 서베를린 시장을 맡았던 적이 있었고 이때 위의 JFK의 명 연설을 하게 시켰으며 시장으로서의 올린 다대한 공적을 인정받아 총리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