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문서는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문서입니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공존합니다.
그 2가지 측면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의. 여기서 설명하는 대상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여기서 설명하는 대상의 모습은 천사와 악마처럼,
혹은 대상에 대한 평가가 사람마다 극명하게 달라질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이 문서에서 다루는 노래/사람은 듣는 사람들에 따라 살짝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확실한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란 것입니다.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 중에서는 음악계의 신선한 혁명을 가져온 사람도 있고, 전혀 이해가 불가능한 정체불명의 작품만을 남긴 사람도 있습니다.

ㄴ이틀의 주인공이다.


크기
И́горь Фёдорович Страви́нский
이름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출생 1882년 6월 17일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오라니옌바움[1]
사망 1971년 4월 6일 미국 뉴욕
국적 러시아 제국, 프랑스, 미국


러시아출생의 현대음악가. 본래 법대를 다니고 있었지만 1903년 독일에서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를 만난뒤 음악으로 진로를 바꾸고 그에게서 작곡지도를 받으면서 음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08년 관현악곡 <불꽃>으로 러시아 발레단 디아길레프에게 인정을 받고 그의 의뢰로 발레곡인 <불새>(1910), <페트루시카>(1911)을 작곡하여 스타덤에 올랐다. 그리고 2년뒤 최고의 문제작이던 <봄의 제전을>을 발표했는데, 첫발표가 이뤄진 파리악단에서 찬반양론의 대소동이 일어났고 이때부터 그는 전위파 클래식의 대부로 불리게 되었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고 빨갱이들이 러시아를 장악하자 탈시아를 했고 신고전주의성향의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때의 대표작으론 <풀치넬라>(1920)이 있다. 신고전주의 자체는 전간기 유럽음악의 주류였는데, 그는 이 풍조에 선구자급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1934년 프랑스에 귀화했지만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프랑스에서 빤쓰런하고 천조국으로 망명했다.

천조국 생활초기엔 잠깐 침체기를 겪었지만 <3악장의 교향곡>(1945), <미사>(1948)등으로 예토전생해서 잘나갔지만 예전의 실험음악대신 종교음악에 관심을 기울여 <설교, 설화 및 기도>(1961), 칸타타 <아브라함과 이삭>(1963)을 만들었다. 또한 그의 광팬이었던 존 F. 케네디가 공공칠빵을 당하자 추모곡인 <케네디의 추억을 위하여>를 만들었다.

이후 틀딱이 되서 골골대서 작곡을 그만두었고 골골대다 1971년 4월 6일 사망했고 베네치아에서 묻혔다.

  1. 러시아어로는 Ораниенбаум. 공산화 이후 1948년 과학자 미하일 로모노소프를 기려 로모노소프로 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