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머대리에 대해 다룹니다.
머리카락도 결국 털일 뿐입니다. 털이 없다는 건 성스럽고 진화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이봐 머대리, 머리 좀 기르세, //네 과장님 ㅠㅠ)
민머리 대머리 맨들맨들 빡빡이♩♪♬~ 민머리 대머리 맨들맨들 빡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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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닥! 파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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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틀을 보고도 계속 남아있다가 이덕화에게 욕쳐먹더라도 조무위키에서는 일절 책임지지 않습니다.

ㄴ 한예슬은 드라마 촬영으로 몇 시간이나 대기하고 있던 이덕화를 제쳐두고 촬영 펑크낸 후 LA로 튀었다. 한예슬은 이덕화가 유일하게 싫어하는 연예인이라고 봐도 무방함.

"The Archfiend" 금강야차 이의민

"The Tank" 전두환

"The True Protagonist" 설인귀

대한민국의 명품배우로서 TV 영화 등에서 많이 출연하며 훌륭한 연기를 펼쳤다

언젠진 모르겠는데 너 나 우리가 응아응아 하며 태어나기 전부터 정상급 배우였을거다. 데뷔를 1972년에 했다.

악역배우의 전설이다. 이 사람보다 악역 잘하는 배우는 대한민국에 단언컨데, 없다.

탈모가 생겨서 가발을 쓰게 되었는데 빠지기 전 하고 얼핏 비슷하다

머리카락은 없어졌어도 연기력은 어디 가지 않았다.

예쁘게, 멋지게만 나올려고 하며 작품 전체의 흐름을 못 살리는 요즘 몇몇 남녀 배우들은 이덕화 안성기 설경구 등 명품배우들을 보며 반성해야된다

작품 주연 점령 욕심은 많으면서 그지랄하다간 나중에 노잼 그자체가 된 일본 영상물이나 한때 리즈찍다 좆망한 홍콩 영화처럼 되버린다

사실 최진실의 생명의 은인이다. 둘이 같이 베스트셀러극장이라고 해서, 잘팔린 소설책을 드라마로 만드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거기 주연으로 나왔었다.

거기서 최진실이 집에 불지르고 자살하는 연기를 하게 되어 있었는데 연기는 잘 끝났지만 빠져나오질 못했다.

이 때문에 최진실이 불타죽게 생기자 이덕화는 달랑 소화기 하나만 들고 몸을 날려 그 불타는 건물 속으로 뛰어들어가서 최진실을 업고 나왔다.

이후 이덕화는 최진실에게 장난삼아 "나 진실이 너 때문에 머리 홀랑 타서 머대리 됐다. 아이, 시원해~"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김영삼 대통령과는 반쯤 친척인데 김영삼의 큰딸, 그러니까 김현철의 누나가 이덕화랑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인 동갑내기 친구다.

그래서 김영삼 대통령이 살아생전에는 이덕화만큼은 아예 자신의 장남으로 여겼다. 이덕화도 김영삼을 사실상 아버지로 모셨다.

  • 김영삼: 덕화야, 할 거 없으면 맥주나 한잔 하자.
  • 이덕화: 네, 좋죠 아부지.

이런 인연으로 인해 이덕화는 자기가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김영삼을 도와주려고 지역구 국회의원 출마까지 했었는데 남궁진한테 고작 1,400표 차이로 아깝게 낙선하고 말았다.

출마한 선거구도 은근히 코메디인게 광명시의 바로 그놈의 교회이 이덕화가 출마한 선거구였다. 그렇다. 10m마다 교회가 있다는 그 곳이었다.

이 선거출마 후유증 때문에 이덕화는 꽤 오랜 기간 동안 무인도에서 서식하며 공백기를 맞이하게 된다. 낚시를 시작한 게 여기서였다나 뭐라나... 왜 이지경까지 갔었냐면 저 당시엔 득표율 15% 이상이면 법정선거비용의 전액, 10% 이상이면 반액을 돌려받는 환급제도가 없었거든.


이 문서는 예토전생했습니다!
이 문서나 여기서 설명하는 대상은 오랫동안 사망했다가 최근 다시 살아났습니다!
???: 지옥에 있는 노무현 나와라!

이덕화는 친한 동생 전영록에게 오토바이를 빌려탄 적이 있었는데 어마어마하게 큰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 일로 인해 전영록의 오토바이는 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이 때가 1977년이다. 디키러들이 태어나기 한참 두참이나 전의 일이고 이덕화는 이 때 데뷔 5년차 배우였다.

이덕화는 생명이 위독했고 겨우 살아났으나 엉덩이를 완전히 제거할 정도로 큰 중상을 입었고 이로 인해 허벅지 뱃살 등 살점을 여기저기 이어붙여 엉덩이를 아예 새로 짰다. 이 때문에 이덕화는 장애 3급이다.

칼빵 한 번 맞으면 2~30바늘을 꿰매는데 이덕화는 이 사고로 무려 1,500바늘이나 꿰맸다. 이건 레알 시체를 되살려 놓은 수준의 대수술이었다.

이덕화 담당의사의 입장에서는 이만큼 영원히 잊지 못할 환자는 없을 것이다.

자신의 환자 중 가장 유명한 인물임과 동시에 가장 크고 가장 어려운 수술을 한 환자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지인들에게 자기가 이덕화 살려낸걸 자랑하고 다닐 것이다. 진심 지인들한테 귀 터질때 까지 자랑해도 할말없을듯

이 교통사고로 이덕화는 3년 정도 병원에 입원했는데(실제로는 1981년 초에 퇴원) 첫 10개월 동안 중환자실에 있었고 뻑하면 생명이 위독해져서 의사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집중관리대상이었다. 이덕화 본인의 말로는 하루하루가 비명으로 시작해서 비명으로 끝났다고 할 정도의 생지옥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어찌어찌 살아는 났으니 천만 다행이다. 그 위엄쩌는 탱크보이 연기를 볼 수 있어서 이 얼마나 다행인가.

더 큰일은 이 사고 때문에 그 당시 지병으로 치료를 받던 이덕화의 아버지이자 원로배우인 이예춘이 아들이 교통사고를 크게 당한 것때문에 쇼크를 엄청나게 먹고 사망했다.

이 순간이 이덕화 인생 최악의 순간이었다. 자신은 반신불수 되고 아버지는 작고했기 때문이다.

이 때 현재 이덕화의 아내가 된 김보옥 여사가 있는데 이 분 완전히 대인배다.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이덕화가 아예 결혼하자마자 과부가 되느니 차라리 다른 남자한테 시집가라고 권유했는데 김보옥은 그걸 거절하고 3년 동안 거의 사투에 가까운 처절한 간호를 해줬다.

그리고 이덕화가 퇴원하자 이덕화와 결혼했다. 덕분에 이덕화는 지금까지도 상당한 애처가라고 한다.


아무튼 아재 오래사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