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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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계 죄다 쓰까묵은 적폐 쓰레기들! 히야! 없는 게 없네! 이게 씨발 조폭 새끼들이지 어딜봐서 글쟁이 면상이냐, 한국문학 살려내라, 씨발놈들아! |
파일:Latest?cb=20120929182437.jpeg | 이 대상은 천수를 누린 쓰레기들입니다!! 이새끼들은 죽을죄를 저질러 놓고 풍요롭게 살다간 인간말종들입니다. 이런 새끼들은 하루 빨리 부관참시를 시전합시다. |
李燦
프로필[편집]
개요[편집]
1929년 와세다대에 진학하여 임화를 만나 사회주의계열 문학운동에 뛰어든 전형적인 카프계열 문학가였다. 빨갱이여도 혹부리우스한테 숙청당하기 직전까지는[1] 자기신념을 칼같이 지킨 꼴통 임화와는 달리 곡학아세의 화신이었다.
태평양전쟁시기 친일파로 변절하여 1944년 <매일신보>, <신시대>에 실은 송출진학도같은 눈갱 친일시들을 열심히 싸질러왔다. 8.15 광복이후 고향인 북청으로 가서 활동했다가 1946년, 북괴 김혹부리우스 찬양시를 쓰면서 북괴 어용시인으로 활동했다.
이새끼가 처음 쓴 북괴 찬양시는 북괴치하에서 노래로 만들어졌고 도서정리사업이후 북괴 김혹부리우스가 우상화됨에 따라 애국가의 자리를 뺏어버렸다. 우상화가 덜했던 1940년대에도 존나 많이 불렀지만.[2]
그리고 본인은 혁명시인입네 맙네 하면서 존나 빨리다 뒤졌다. 이후 2002년 희곡 2작품을 포함한 친일작품 8개를 쓴 것이 발각되어 친일문학인 42인중 한명으로 선정되었다.
인성이 쓰레기새끼지 시 자체는 지리게 잘썼던 서정주와는 달리 이병신새끼는 인성만 쏙 빼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