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이치죠 가네사다

조무위키

파일:불쌍.png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이 존나 불쌍합니다...ㅠㅠ
광광 우럭따 8ㅅ8


신장의 야망에서 능력치가 최하 시궁창이다.

삼국지 게임으로 치면 잠혼이나 황호 능력치 수준이다.


인물[편집]

도사국(土佐國)의 이치죠(一條) 최후의 당주.

나름 똑똑하다고 평가받던 이치죠 후사모토의 적남(정실의 아들).

아빠인 후사모토는 모반자를 박살내놓거나 이요 국 남부로 진출하는 등 위용을 떨쳐나갔으나 갑자기 사망해버렸다.

이에 가네사다는 고작 7살의 나이에 당주에 오르게 되었다.

1558년, 이요 국의 우쓰노미야 도요쓰나의 딸과 결혼했으나 1564년에 이별하고 오토모 소린의 차녀와 결혼함으로써 오토모가의 지원을 얻게 된다.

그러나 도요쓰나와 함께 이요로 진출했다가 모리의 지원을 받는 고노(하야가)씨에게 패하면서 멸망의 전주곡이 시작되었다.

이치죠는 시코쿠의 너구리, 조소카베 모토치카한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땅을 빼앗겼고 나중에는 부하들에게도 신뢰를 잃어 1573년 9월에 강제로 은거를 당하게 된다.

아직 포기가 이르다고 생각하고 오토모로 간 가네사다는 기독교에 입교한 뒤, 오토모의 지원을 받아서 재기를 노렸으나

이마저도 진압을 당하고 영주 인생도 끝나고 게임도 끝나고 인생도 아웃

이번에는 진짜로 모든게 끝났기 때문에 가네사다도 조용히 인생을 보내게 되었다.

근데 이 때도 가네사다에게는 무언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은거했던 가네사다를 암살하려고 시도했던 새끼들이 '있었다고 하는걸 봐선' 분명히 뭔가가.

일본에 파견된 성직자인 알레산드로 발리냐노의 말에 의하면 이후 가네사다는 그 누구보다도 열렬하게 신앙에 빠져 살았다고 한다.

뭐 하여튼 그렇게 살다가 죽었다고.


재평가설[편집]

일단 전국 공가 다이묘였던 도사의 이치죠가를, 교토에 있던 본가(本家) 이치죠는 탐탁치 않아 했다.

실제로도 교토의 이치죠는 계속해서 도사의 이치죠에게 여러가지의 간섭을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좋지 못한 형편에서 고작 7살의 나이로 당주에 올랐다는 것인데.

일본의 일부 인명 사전 서적들을 참조해보면 가네사다는 정치에 싫증을 내고 실례되는 행동을 했으며, 조소카베가 공격해오는 와중에도 방탕에 젖어서 충신의 간언을 듣지 않고 오히려 처형을 지시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사료는 승자인 조소카베(長曽我部)의 기록에 기인한 것이다. 조소카베 책략으로 하여금 가네사다를 쫓아내기도 했을 뿐더러 이런 기록은 승자에 의해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는 법이다.

만일 정말로 가네사다가 정치에도 싫증내고 방탕해졌다고 한다면 교토의 이치죠의 압력과 조소카베의 내부를 흔들어놓는 책략, 끊임없는 공격 등에 의해 사람이 변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런 요소 때문에 사람이 변한 것이라고 하면, 현재 신장의 야망이 주는 능력치는 가네사다에게 가혹할 정도로 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압력을 이겨내지 못한 정신력만을 두고 따진다면 높은 점수를 줄 수는 없겠지만

센고쿠 시대를 뒤져보면 가네사다보다 못한 무장들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런 얘들은 최소 통솔이나 지력이 50을 넘는다카더라.

도사 이야기(土佐物語)같은 문헌에서는 이치죠 가네사다가 찐따 중의 상찐따로 나오지만 사실 가네사다는 추방 후에도 끊임없이 토사를 되찾기 위해 노오오오오력을 반복했던 인물이었다.

또한 조소카베 모토치카의 세력이 비대해지자 도사 서부의 지배권을 인정해주는 대신에 이치죠의 권익을 지키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후손들의 서브컬쳐에서는 여전히 찐따로 취급당하고나 있고... 불쌍하긴 불쌍한듯.


재평가 없음설[편집]

그딴거 없고 이 찐따는 그냥 이마가와 우지자네랑 똑같은 놈이라는 평가.


둘 다 찐따설[편집]

이치죠나 조소카베나 사실은 둘다 보잘 것 없는 찐따라는 설. 오히려 조소카베가 너무 과장되었다고 보는 관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