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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혁명당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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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때문에 국가보안법의 이미지가 똥이 되었고, 나중에 정권 교체 이후 사형 집행을 완전히 정지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진보 진영이 대구경북에서 멸종했다.

전개[편집]

인민혁명당 사건[편집]

1964년 당시 중앙정보부김형욱이 있지도 않은 인혁당이 있다는 구라를 치고 이들이 국보법을 위반했다고 말하는 걸로 시작했다.

일단 구라는 쳤으니까 물증을 보여줘야 해서 아무나 잔뜩 잡아왔지만 무고한 사람들 잡아온 거라서 아무리 조져도 뭐가 나올 리가 없었다. 결국 검찰은 백기.

어떻게든 중정이 밀어붙여서 법원까지 넘겼지만 법원에서도 딱히 죄를 못 찾았기에 잡혀온 놈들에게 국보법 대신에 반공법 위반 혐의로 공소장 내용을 바꾸고 가벼운 징역 1~3년형 언도로 마무리됐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민청학련 사건)[편집]

유신 놀이 이후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나자 유신 반대 운동하던 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터트린 인혁당 사건 2차전.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이 일본 공산당, 국내 좌빨 등과 연계가 되어 있다는 식으로 이빨을 털면서 당시 중정부장 신직수는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들였다.

당연히 무고한 사람들이라서 털어도 나올 게 없으니 헛소리를 하게 만들기 위해서 존나 털었다.[1] 외국인 신부들이 그걸 보고 비판하자 추방당했다.

1차와 다르게 2차 때는 더 심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깔끔하게 관련자들을 사형시키거나 중형 때릴 수 있었다.

사형수도 밥은 먹이기 때문에 선고를 해도 며칠 있다가 집행하는 것이 으레 관습이었는데 면회 갔던 유족들은 못 만나고 졸도했다고 한다. 사형 선고 내린 지 하루도 안 되어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버려서.

그래도 양심인은 있었다. 대법원에서 13명 중[2] 이일규 대법관 한 명만이 재판도중 공판조서가 변경되는 등의 위법 절차가 많다며 다시 재판해야 한다고 반대했다.

재건위 사건 이후[편집]

보여주면 누구든 피꺼솟 할 정도로 고문이 너무 심했기에 사형 시킨 놈들 시신은 탈취해서 불태웠다.

중정은 인혁당 관련자들의 가족에게 간첩의 집안이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2차 사건에서 사형 당한 사람들[편집]

파일:불쌍.png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이 존나 불쌍합니다...ㅠㅠ
광광 우럭따 8ㅅ8
  • 여정남
  • 도예종
  • 서도원
  • 하재완
  • 이수병
  • 김용원
  • 우홍선
  • 송상진

워낙 화려한 인재들이라서 인터넷에 검색하면 바로 뜬다. 그래서 굳이 부연 설명은 하지 않는다.

영향[편집]

당시 서구권에서는 욕은 다 처먹었다. 서독과 프랑스는 동백림 사건과 함께 세트로 비판하였고 차관이 취소될 뻔하고 미국은 신문 한 페이지에 사법계 암흑의 날이라고 대놓고 깠다.

일제강점기부터 제2공화국까지 3.1운동 시기 전래됐던 사회주의를 수용하여 TK에 지역 기반을 두고 성장한 진보/민주/중도/온건 좌익 세력들이 덕분에 완전히 갈려나갔다.

애초에 사건 처리 자체가 엉망이었다. 운동권의 입을 다물게 하려면 다른 방법도 많이 있고 이제까지 잘 먹히는 방법도 많았는데 구태여 사형 판결을 때리고 판결 내린 지 하루도 안 되어서 사형 집행하고 시신 훼손까지 했으니, 이건 뭐 대놓고 "이거 들통나면 안돼!" 하는 도둑놈 제발 저린 짓거리였다. 유신 시절 반인반신과 그 간신들이 얼마나 머가리가 썩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현대[편집]

이 사건은 누가 보더라도 주작이었기 때문에 정희가 뒈지고 민주화가 찾아온 뒤에는 판결 결과를 뒤늦게 번복할 지경에 이르렀다.

법원에서는 무죄로 판결 하고 국가에서는 배상금을 지불했다. 하지만 법으로 정해진 것보다 배상금이 많이 주어졌고 이자가 그동안 많이 붙었다면서 회수 중이다. 니미...

ㄴ 이거 MB 때 나온 판결이라 지금도 논란이 많음

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자는 전부 없었던 일로 하기로 했다.[1] 대신 원금 중에서 초과 지급된 분량만 회수하겠다고 한다.

박근혜는 이 사건에 대해서 지 아빠가 잘했다 얘기한다. 더 씨발년이다.


  1. 신직수는 김형욱의 부하 출신이다. 김형욱 중정부장 재임 초기 시절에 중정 차장을 지냈다.
  2. 민복기(재판장), 홍순엽, 이영섭, 주재황, 김영세, 민문기, 양병호, 이병호(주심), 한환진, 임항준, 안병수, 김윤행, 이일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