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고딕 전쟁

조무위키

개요[편집]

로마의 역사중 한사건 (535년–554년)

중세로마제국(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일으킨 전쟁

배경[편집]

로마제국은 킹황짱 위머한국가긴 했지만 엄연히 고머국가란 한계점도 분명히 지니고있었다.

이 한계를 타개코자 황제들이 로마를 4분할하여 3명의 부제내지는 공동황제들이 분할통치를 맡겼었다.

물론 만인지존의 황제와 그의 장자가 대대로 혈연승계를 하여 안정적인 정권을 창출한 똥양전제군주제와 달리 좀 짱쎈 일반인 코스프레를 해야만하는 로마황제의 태생적 한계로 인해(이를 타계코자 후기 로마제국은 똥양전제정을 도입하지만 완전히 전제군주정으로 전환된 동로마도 쿠데타와 내분에 자주시달렸다.) 당근 황제가 4명이되니까 나라꼴이 제대로 돌아갈리가 없었고 곧 내전에 시달리게된다.

이를 마무리지은게 콘스탄티누스 황제였지만 내전으로 초토화되고 게르만야만족이 득시글한 서로마를 내팽게치고 꿀과 젖이흐르는 동방의 낙원으로 런을 해버리고 만다.

그리고 아무리 콘스탄티누스황제가 킹황짱이라고는 하지만 황제혼자서 고머에 그 넓은 제국을 다 통치하긴 절대 무리라 이후 또다시 서방부제를 두게된다.

하지만 사실상 버림당하거나 방치플레이당하게된 서로마 인들로서는 자신들을 괴뢰정부 위성국 정도로 취급하는 동로마중앙정부가 고까울리가 없었다.

이로인해 동로마서로마제국 정부는 고대국가의 한계도 있고 동서로마 두 지역의 정부와 교회등 지도부의 알력다툼도 있었기 때문에 황자두명이 합의하에 로마제국을 분할한다.(동서 로마제국분할)

서로마제국은 결국 자발적으로 로마에게서 떨어져나간 지역이지만 결과적으로 지배층의 핏줄은 동서로마인 모두 같은 로마인이기에 동로마와 싫어하는듯 좋은 관계를 가지고있었다.

그러던차에 오도아케르란 왠 미게르만족 촌놈출신 용병장군이 나타나 서로마황제를 지 멋대로 폐위하고는 서로마제국 황관을 동로마중앙정부에 반납하고는 지가 이탈리아 왕위에오르는 사태가 발생하자(서로마제국 멸망) 고트족용병과 서로마황제를 새로 임명해서 이탈리아로 파견하게 된다.

근데 하라는 서로마제국 재건은 안하고 고트족은 동롬에서 임명한 서로마황제를 내쫓고는 지가 또다시 이탈리아에서 왕을자처하게 되니 동로마제국은 개빡쳤지만 당장 손봐줄 여우가 없어서 미뤄진다.

그렇게 이탈리아 반도가 게르만족의 손아귀에 놀아난것을 보기 싫었는지 다른 이유가 있었던지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는 이탈리아통치권 탈환을 위해 싸운다

결과[편집]

띵장 벨라사리우스는 유시티니아누스 대제의 의심때문에 목아지가 달아날뻔 했고 그 여파로 천여명의 병력과 거의없는 지원으로 힘겹게 싸워서(걍 황제가 너 미우니까 싸우다 죽어줬음 좋겠다 란 의미로 출전시킨거였다) 동고트 왕국을 격파한다. 마치 천년후에 똥방에 등장하는 이순신을 보는듯하다. 12척으로 일본군이랑 싸워서 이긴것도 비슷하고.

환관 나르세스도 그나마 고자라서 황제가 될수 없기때문이지 정부의 지원을 비교적 잘받아가며 잘싸웠다.

결국 이탈리아 반도가 잠시나마 동로마 제국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하지만 이때 정복전쟁을 이탈리아반도만 실시한게 아니라 북아프리카와 스페인까지 진행되었으므로 엄청난 전비지출이 있었다.

그나마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계산으로는 지금 이렇게 예산 왕창땡겨서 정복해도 나중에 늘어난 영토에서 세금부과해서 매꾸면되겠지?? 였는데 안타깝게도 페스트가 창궐한다. 역사에서 말하는 유럽패스트 유행보다 훨씬 앞서서터진건데 사망자가 그때랑 또이또이헀다고 한다. 황제도 패스트 걸려서 골골거리면서 국정이 마비되기도 했고 황제도 골로갈뻔했다.

이바람에 점령지는 초토화되었고 본토또한 패스트로 고생하는 와중에 방위력과 행정력에 구멍이 숭숭뚫려버린다. 그리고 곧 이슬람등등 다른 민족들이 이탈리아 반도를 차지한다

그래도 라벤나 총독부는 꽤 오래유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