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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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때 가토 기요마사 휘하에서 선봉으로 조선에 들어와 귀순한 일본 장수이다.

나중에는 쌈 잘한다고 나이 칠십 넘어서도 반란 토벌하고 외적 막아내고 노인학대당하다 병자호란 끝난 뒤에야 죽었다.

ㄴ무려 청나라 병사 총 500명을 때려 잡으셨다..

조총을 잘 쏠 뿐만 아니라 만들 줄도 알았기에 조선에 조총술을 보급했다 함.

사서에는 본래 이름이 '사야가'로 적혀 있는데, 이게 일본어를 한자로 음차한 거라서 대부분 '사이가'로 보고 있다. 그런데 '사이가' 하면 일본에서 조총 잘 쏘는 포수들로 구성된 용병 집단인 '사이가슈'하고 비슷하기 때문에 김충선도 이 사이가슈의 일원이었던 걸로 보고 있다.

사성(賜姓. 왕한테 성을 하사받은 것) 김해 김씨의 시초다. 그냥 김해 김씨하고 헷갈릴 수 있으니까 조심해라

대구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 김충선이 살았다고 하여 우록 김씨라고도 한다.

후손들이 일제시대때 일제로부터 굉장한 탄압을 받았다고 함.

일본 입장에선 매국노니까 그럴만하다.

ㄴ이건 좀 생각해야하는게 임진왜란 당시에 일본은 통일된 국가라는 개념이 없었음. 당시 항왜들 입장에서는 그냥 충성할 상대 좀 바꿨을 뿐이지. 당장 전국시대에 배신이랑 하극상이 얼마나 흔했는데 매국이라는 개념자체가 있을리가. 다만 전체주의 판치던 일제 입장에서 매국노로 보였을 뿐.

웃긴게 전쟁하기 싫어서 200년동안 평화롭던 조선에 귀순했는데 귀순하자마자 그 평화롭던 조선에서 연달아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이 터져서 난이 터질때마다 굴려졌다. 근데 매번 참전할때마다 존나 잘싸웠고 삼란공신까지 오른다. 전쟁하기 싫어서 투항했는데 전쟁 귀신이 붙음 ㅋㅋㅋ

물론 김충선은 삼란공신까지 인정받은 혁혁한 공이 있기에 잘된 케이스지만 대부분의 항왜들은 여진족과의 전쟁이 끝난 후 토사구팽당해 반란을 염려해 조선 조정에서 대량으로 숙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