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두예

조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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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의 학자이자 정치가. 양호, 왕준과 함께 삼국지연의에서는 아주 잠깐 언급되고, 오나라를 정벌하고 대단원을 찍은 사람으로 나온다.

연의에서의 비중은 그냥 한 줄 서술정도지만, 실제로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아버지 두서가 사마의와 대치하다가 좌천당하여 중용당하지 못하였다가, 사마염 시기에 관직에 나갔다.

263년에는 촉한 진군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위관의 등애 모살을 비판했다.

진나라가 세워지고 나서는 정치가로 활동, 구품관제도를 버리자고 상소했으나 기각되었다. 그러나 상소 자체는 인정을 받았는지 벼슬길이 끊이지는 않았다.

276년 양호, 왕준과 함께 오나라 정벌을 해야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으며 278년 양호가 죽으면서 천거하여 진남대장군, 도독형주제군사가 되어 오나라를 친다.

양호가 서릉에서 대패하였으나 두예가 후임이 되었을 땐 육항이 죽은 뒤라 간단히 밀어버렸다.

왕준과 더불어 뒤이어 계속 정벌에 나서 강릉을 함락하고 형주를 평정하였다.

오나라로 육박해 들어갈 때 주변에서 '군사들이 남방의 풍토에 익숙치 않고 지리가 험하니 시일을 기다렸다 공격하자'고 건의하자 지금 군사들의 기세는 대나무를 쪼개는 것처럼 급하고 빠른 성세이니 오히려 속공을 펼 때라고 답하고 즉시 군사를 몰아 마침내 오나라 정벌에 성공했으며, 이것이 파죽지세 고사의 유래가 되었다.

평가에서는 군을 매우 잘 지휘했다고 한다. 그러나 말타기와 활쏘기에 재능이 없었는지 비웃음을 샀다고 되어있다. 간옹이나 미축도 말타기와 활쏘기를 매우 잘했다고 되어 있는 걸 보면 군재는 뛰어나나 무재는 없는 약골인듯.


오나라 정벌 후에는 정치에선 손을 떼고 주로 저술 활동을 하였다.

유교 십삼경 중 삼전 춘추좌씨전을 미친듯이 연구했는데, 좌씨전 연구가 중 가장 중요한 인물로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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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에서 병신같은 군주들이 뒤진 사례들을 언급하면서 사마사조모를 시해한걸 뒤져도 싼 놈이라 뒤진거라고 했다. 물론 사마사가 나쁜 놈이지 조모는 절대 뒤져도 싼 군주가 아니었다. 결국 두예 이놈도 아주 깨끗한 놈은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