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메에에- 이곳은 깡촌, 즉 존나 시골입니다.
이곳은 인프라도 없고, 살기도 안좋은 시골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자연인이 되기에는 매우 좋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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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山郡

개요[편집]

무궁화호를 타고 아산을 지나치면 바로 나오는 동네이다

도시의 중심지에 신례원이 있으며 특산물로는 사과가 유명하다.

한국 최대 규모인 예당저수지가 있고 예당평야가 있다

현재는 내포신도시로 인구가 조금씩 늘고있나?

논밭 한가운데에 신도시 만든다고 뭐가 될리가 있겠냐 시발

역사[편집]

원삼국시대까지 고덕면, 삽교읍, 신암면, 오가면지역의 상당부분은 바다였다고 한다. 물론 백제때부터 똥빠지게 간척하면서 모두 육지가 되었지만.

백제부흥군의 중심지였던 임존성(任存城)이 있었던 것으로 봐서 백제때는 부여, 공주지역다음으로 잘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백제부흥군도 망하니까 뭐다 좆투더망해서 깡촌이 되었다.

이후 깡촌이었던 대흥, 덕산, 예산의 3개현이 1914년 부군면 통폐합때 스까되어 예산군이 만들어졌다.

읍면[편집]

舊 예산현 지역[편집]

예산읍[편집]

禮山邑

면적 42.80㎢. 읍 소재지는 예산리.

예산(禮山), 향천(香泉), 대회(大回), 주교(舟橋), 산성(山城), 발연(勃然), 석양(夕陽), 관작(觀爵), 창소(倉所), 신례원(新禮院), 간량(間良), 궁평(宮坪), 수철(水鐵)의 13개리를 관할한다.

본래 예산군 군내면(郡內面), 금평면(今坪面)이었는데 부군면 통폐합때 대흥현의 옛이름이던 임성군(任城郡)의 이름을 따 임성면(任城面)이라는 병맛스런 이름이 되었다. 너무 병신같아서인지 1917년 10월 1일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고 1940년 11월 1일 읍으로 승격되었다.

동쪽에 도고산, 덕봉산, 안락산(安樂山, 435m)등이 솟아있기 때문에 예당평야의 일부인 서부평야지역에 ㄴ자모양으로 마을이 퍼져있다..

향천리에는 예산향교, 덕잠서원의 터, 향천사가 있고 산성리에는 예산산성, 간량리에는 간량사지와 당간지주, 예산리에는 예산읍 삼층석탑이 있다.

신암면[편집]

新巖面

면적 35.46㎢. 면 소재지는 종경리.

종경(宗敬), 계촌(桂村), 두곡(豆谷), 신종(新宗), 하평(下坪), 신택(新宅), 용궁(龍宮), 예림(禮林), 중례(中禮), 조곡(鳥谷), 별(別), 오산(五山), 탄중(灘中)의 13개리를 관할한다.

본래 예산군 두촌면(豆村面), 입면(立岩面), 종면(新宗面)이 있었는데 이 3개면을 합친 후 볼드처리한 2글자에서 이름을 따와 신암면이라고 하였다. 무한천과 삽교천이 각각 면의 동부와 서부를 흐르는데, 이강따라 면전역에 넓은 평야가 형성되있으며 이 평야버프때문에 군에서 사과생산량이 가장 많다. 또한 무한천을 경계로 아산시 도ㅗ고면과 접한다.

융궁리에 지석묘, 김정희선생의 고택과 묘, 화순옹주 홍문이 있고 화암사가 있다.

오가면[편집]

吾可面

면적 32.39㎢. 면 소재지는 역탑리.

역탑(驛塔), 원평(元坪), 신장(新長), 신석(新石), 월곡(月谷), 좌방(佐方), 분천(汾川), 양막(良幕), 내량(內良), 오촌(五村), 원천(元泉), 신원(新院)의 12개리를 관할한다.

본래 예산군 원리면(五元里面), 우산면(于可山面), 거구화면(巨九火面)이 있었는데, 이 3개면을 합하면서 볼드처리한 2글자에서 이름을 따와 오가면으로 이름지었다. 면 남동부에 팔봉산을 제외하면 전지역이 평야지역이다.

대술면[편집]

大述面

화천(花川), 농(農), 상항(上項), 방산(方山), 장복(長福), 송석(松石), 화산(花山), 궐곡(蕨谷), 시산(詩山), 산정(山亭), 마전(麻田), 이치(梨峙)의 12개리를 관할한다.

면적 60.64㎢. 면 소재지는 화천리.

본래 예산군 대지동면(大支東面), 술곡면(述谷面)이 있었는데, 부군면 통폐합때 이 두면의 앞글자를 따와 대술면이 되었다.

천방산(千方山, 479m), 극정봉(極頂峰, 424m), 안락산, 토성산등이 솟아있어 군내에 다른 읍면에 비해 산지의 비중이 높다. 달천이 면의 중앙을 흘러 지류인 궐곡천을 합치고 남서류하면서 그 강유역에 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32번국도로 예산읍, 신양면과 연결되있다.

상항리에 수당고택, 이남규 묘 예산 상항리 석불이 있고 장복리에 삼측석탑이 있다.

舊 대흥현 지역[편집]

백제 부흥운동때 백제부흥군의 핵심거점으로 언급되는 임존성(任存城)이 본현의 전신이다. 신라군이 백제 부흥군을 토벌하면서 신라의 땅이 되었는데 경덕왕때 임성군(任城郡)으로 개명되어 청무현고산현을 속현으로 두었다. 고려초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되면서 현으로 강등먹었다.

1018년 운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1171년 감무가 파견되면서 주현으로 독립했다. 거질물소(居叱勿所)라고 불렸던 거변소(居邊所)를 휘하에 두었다.

대흥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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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興面

면적 35.76㎢. 면 소재지는 동서리.

동서(東西), 상중(上中), 교촌(校村), 송지(松池), 대야(大也), 신속(新束), 노동(盧洞), 지곡(芝谷), 하탄방(下炭防), 금곡(金谷), 대율(大栗), 갈신(葛申), 손지(遜支), 탄방(炭防)의 14개리를 관할한다.

대흥군 읍내면(邑內面), 근동면(近東面)이 있었는데 부군면 통폐합때 2개면이 합병되면서 옛 대흥군이었다고 대흥면이 되었다.

서쪽 봉수산 남쪽의 예당저수지때문에 서부의 교촌리, 상중리, 동서리와 나머지지역이 분리되었다. 무한천이 예당저수지를 지나 북류하는데, 남부에는 신양천(新陽川)이 흐른다. 그놈의 예당저수지때문에 교통은 노답이다.

보수세가 강하다는 예산중에서도 가장 보수정당의 지지세가 강한 지역으로 19대선때 군내에서 홍준표가 가장 많은 득표율인 52.47% 의 표를 얻고 7대 지선에선 피닉제가 55.95%의 표를 얻었다.

교촌리에 대흥향교가 있는데, 그 앞에 1,000년전에 심어진 은행나무가 있다. 위에 있는 임존성은 상중리 봉수산에 있다.

응봉면[편집]

광시면[편집]

光時面

면적 58.05㎢. 면 소재지는 광시리.

광시(光時), 하장대(下場垈), 운산(雲山), 노전(盧田), 은사(銀寺), 신대(新垈), 마사(馬沙), 관음(觀音), 동산(東山), 장전(長田), 월송(月松), 서초정(瑞草井), 용두(龍頭), 장신(長信), 신흥(新興), 미곡(美谷), 대(大), 시목(矢目), 가덕(加德)의 20개리를 관할한다.

차령산맥의 지맥이 면 동부, 서부로 뻗어있는데 이중 북쪽의 봉수산(鳳首山)을 기점으로 대흥면과 접한다. 산아래에는 무한천과 그 지류인 양지천을 따라 평야가 형성되었는데, 무한천이 양지천의 물을 받아들이면서 북류, 예당저수지로 들어간다. 수계랑 인근의 평야때문에 청양군 비봉면, 청양읍과 바로 연결된다.

관음리에 최익현의 묘지가 있고 동산리에는 의자왕때 도침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대연사가 있으며 대리에 보광사지(普光寺址), 은사리에 은사지(銀寺址)가 있다.

신양면[편집]

新陽面

면적 61.76㎢. 면 소재지는 신양리.

신양(新陽), 무봉(舞鳳), 녹문(鹿門), 서계양(西界陽), 불원(不元), 시왕(時旺), 연리(蓮里), 귀곡(貴谷), 황계(黃溪), 하천(下泉), 죽천(竹川), 가지(加支), 만사(晩士), 여래미(如來味), 대덕(大德), 차동(車洞)의 16개리를 관할한다.

대흥군 밑에 있던 거변소에서 비롯된 거변면(巨邊面)과 원동면(遠東面)이 있었다. 부군면 통폐합 때 거변면, 원동면, 근동면 일부, 공주 신상면 일부, 술곡면 일부, 청양군 북하면 일부를 병합하고 신양원의 이름을 따 신양면이 되었다.

면주변이 200m내외의 구릉성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남쪽에서 북류하는 신양천, 북쪽에서 남류하는 달천이 면의 중앙에서 합쳐져 서류하면서 유역의 좁은 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평지가 조금 괴랄하게 생겼다보니 바로 동북쪽에 있는 대술면과 통하며 서남쪽으로 직진하면 청양읍으로 갈 수 있다.

여래미리에 안곡사지(安谷寺址)가 있고, 서계양리에서 달천, 신양리가 합류하는 지점근처 산위에 김정희가 현팡르 쓴 일산이수정이 있다. 빨갱이 박헌영이 본면 출신이다.

舊 덕산현 지역[편집]

1405년 덕풍현과 이산군을 합하면서 만들어진 현이었다.

덕산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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德山面

면적 59.66㎢. 면 소재지는 신평리.

읍내리(邑內里), 신평리(新坪里), 옥계리(玉溪里), 북문리(北門里), 상가리(上加里), 사동리(社洞里), 둔리(屯里), 대치리(大峙里), 광천리(廣川里), 사천리(斜川里), 외라리(外羅里), 내라리(內羅里), 복당리(福唐里), 낙상리(樂上里), 대동리(大洞里), 시량리(枾梁里)의 16개리를 관할한다.

본래 마시산군(馬尸山郡)이었는데 경덕왕때 이산군(伊山郡)으로 고쳐 고덕면에 있던 금무현과 홍성군 갈산면에 있었던 목우현을 속현으로 두었다. 고려 현종때 홍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뒤에 감무가 파견되면서 주현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하지만 1405년 덕풍현과 이산현모두 피폐해졌기 때문에 통폐합되어 지금의 덕산현이 만들어졌다. 이후 덕산군 현내면(縣內面), 나박소면으로 개편되었다. 면북서부에 서원산, 가야산, 중앙에 수덕산이 솟아있어 다소 험한 산지를 이루고 있는데 봉산, 고덕면과 통하는 북동부 평지와 홍성지역과 통하는 남서부 평지가 있다. 와룡천(臥龍川)이 면의 서부를 남류하고, 삽교천의 지류가 중앙을 동류하면서, 이들 하천 유역에 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수덕저수지, 덕산저수지에서 농업관개용수가 공급된다.

요근래 만들어진 내포신도시와 매우 가깝기 때문에 떡상도 고려가능하겠다.

본면 시량리에 윤봉길장군님의 생가가 있고, 수덕산에는 백제사찰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수덕사가 있으며 윤봉길장군님 생가와 사당근처에는 남연군의 묘가 있다. 읍내리 일대에는 구읍취락의 흔적이 남아있다.

삽교읍[편집]

揷橋邑

면적 49.60㎢. 읍 소재지는 두리.

두리(頭里), 평촌리(坪村里), 수촌리(水村里), 이리(二里), 목리(沐里), 신리(新里), 안치리(雁峙里), 송산리(松山里), 역리(驛里), 상하리(上下里), 창정리(倉井里), 가리(駕里), 상성리(上城里), 용동리(龍洞里), 하포리(下浦里), 성리(城里), 신가리(新佳里), 삽교리(揷橋里), 효림리(孝林里), 방아리(方阿里), 월산리(月山里)의 21개리를 관할한다.

본래 덕산군 대조지면(大鳥旨面), 대덕산면(大德山面), 장촌면(長村面)지역이었고 이 3개면을 합하면서 삽교의 이름을 따 삽교면이 되었다. 1973년 7월 1일 읍으로 승격되었다. 반인반신지쟈스 곁으로 가기전에 삽교천방조제 기공식에 참여했다. 1983년 2월 15일 오가면 효림리, 좌망리 일부(방아리), 월곡리 일부(월산리)가 삽교읍으로 편입되었다.

남서부 수암산(秀巖山, 260m)을 중심으로 구릉지만 있을 뿐, 면 대부분이 평지로 이뤄져있다. 면 동부를 삽교천이 여러 지류를 합치면서 북류하며 유역에 넓은 예당평야를 형성한다. 예당평야에선 벼, 구릉지에선 사과가 재배되는데 요근래 5만평규모의 삼화목장이 조성되어 목축업도 행해지고 있다.

최근 예산에서 지어지고 있는 내포신도시가 삽교읍 남쪽 끝자락에 있는데 이 내포신도시는 포지션때문에 삽교읍 소재지와의 거리가 먼편.

신리에는 삽교읍 석조보살입상, 영암사지, 상성리에는 상성ㄹ리 산성이 있으며, 이리에는 고려말 성리학자 이색의 봉안소가 있다.

봉산면[편집]

鳳山面

면적 35.16㎢. 면 소재지는 고도리다.

고도(古道), 구암(九巖), 봉림(鳳林), 사석(沙石), 하평(河坪), 옥전(玉田), 당곡(唐谷), 시동(侍洞), 효교(孝橋), 대지(大支), 궁평(宮坪), 금치(金峙), 옹안(雍安), 마교(馬橋), 화전(花田)의 15개리를 관할한다.

본래 고현내면(古縣內面)[1] 일부, 외야면(外也面), 내야면(內也面)이었는데 1914년 상기한 3개면과 면천면, 마산면의 일부를 합하고 봉명산의 이름을 다 봉산면이 되었다.

면 서부에 봉명산(鳳鳴山, 239m)부터 시작해서 여러개의 산이 있어 산지를 이루지만 서쪽끝과 남쪽끝지역, 그리고 동남쪽 사석리, 봉림리 지역에 ㅣㅢ자모양으로 평지가 형성되어있다. 효교천이 서부를 남류하며 남부경계를 따라 동류하면서 유역에 비옥한 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남서쪽에 봉림저수지가 있다.

화전리에는 백제때 만들어진 석조사면불상, 당곡리에는 천태산성, 봉림리에는 이의배 신도비와 서림사지(西林寺址), 운암사지(雲菴寺址), 금치리에는 금치리 미륵불과 이억장군 정려가 있다.

고덕면[편집]

古德面

면적 44.82㎢. 면 소재지는 대천리.

대천(大川), 몽곡(夢谷), 상몽(上夢), 호음(好音), 오추(梧楸), 지곡(紙谷), 상장(上長), 구만(九萬), 용(用), 사(四), 석곡(石谷), 상궁(上宮)의 12개리를 관할한다.

본래 백제 금물현(今勿縣)이었는데 경덕왕때 금무현(今武縣)으로 개명되어 이산군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때 덕풍현(德豐縣)으로 바뀌어 현종때 운주에 속했다가 명종때 감무가 파견되면서 독립했다. 하지만 1405년, 덕풍현과 이산현 모두 피폐해졌기 때문에 2개현을 합하면서 덕산현이 만들어졌다. 이후 덕산군 현내면 일일부, , 거등면(居等面), 고산면(高山面), 도용면(道用面)이 되었다.

사실 실제 치소는 정확히 알 수 없고 1405년 통폐합되기 전 이산군의 치소는 고려말 최영의 건의로 잠깐 설치되었다가 해미현으로 옮겨진 도절제사의 병영이었다.

약간의 구릉지대가 뜨문뜨문 퍼져있는 것을 제외하면 전지역이 평야인데 면의 중앙부를 대천천이, 남서부를 효교천이, 북부를 지곡천이 지나간다. 당진의 주인님 역할을 하는 합덕읍으로 바로 갈 수 있는 지방도가 있지만 비포장이라...

대천리에 금후산성이 있다.

특산물[편집]

사과와 요리사가 유명하다. 한국 현대사에서 이름 높은 셰프가 예산출신임에 놀라움을 표한다.

얼마나 요리를 잘하는지 삽교천으로 반인반신을 탕수육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ㄴ 셰프라기에 이 사람 떠올렸는데

보수텃밭[편집]

비 영남 지역에서 가장 보수세가 강한 곳이다. 저번 대선때는 박근혜에게 70%의 몰표를 줬고, 이번 대선에는 홍준표가 문재인 상대로 10% 넘게 승리한 몇 안되는 지역이다. 심지어 옆동네 홍성군에선 문재인이 홍준표 상대로 7%나 이겼다. 최근들어 단양군에 충청권 보수지지율 1위를 내주고 있긴 하다.

정확한 이유로는 이회창의 본적지다, 박헌영개새끼의 고향이라서 그렇다는등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게 특이한게 보통 호남지역이나 접경지역 제외하면 촌동네일 수록 보수성향이 강해지는 특성이 있기 마련인데 여기는 그나마 촌에서는 나은 지역이기 때문.

아웃풋[편집]

  1. 초창기 덕산현의 소재지였기 때문에 고현내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