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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역대 왕
28대 29대 30대 31대 32대(부흥운동)
혜왕 법왕 무왕 의자왕 풍왕
재위기간
641년 ~ 660년

Chair King

삼국시대 기록자체가 매우적고 신뢰도도 떨어지나 성군이거나 적어도 존나 쎈 명군이었을 확률이 높다.

추가 설명하면 애초에 삼국사기는 신라시기 작성되서 모든 역사서에 베이스인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배경을 깔고 시작해 의도적으로 멸망한 국가들을 폄하 하는 내용이 많다

이름 그대로 신라새끼한테 체어샷을 엄청 날린 왕이다.신라를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고갔다.

30대 후반에 태자로 책봉되고 40대에 왕이 되었다. 이유는 아마 태생이 존나 천할것으로 추측되는데(왕의 아들은 일단 다 왕자니까 왕자의 어머니 출신=왕자의 등급이 된다. 조선시대까지 존나 그거 때문에 싸운다.) 의자왕은 전 왕이자 아버지인 무왕이 왕으로 즉위하기 전에 낳은 아들이다.

서동요가 사실이라고 치면 주인공인 신라공주였던 첫번째 마누라, 흔히 아는 선화공주의 아들었을 거고 그게 아니면 좆밥 귀족집안의 아들이었을 확률이 높다.

엄마가 선화공주인게 사실이면 이놈시키는 이모인 선덕여왕과 이종사촌인 김춘추를 존나게 후두려 깐게 된다. 뭐 사실 국론통일 하고 정권장악 할 라면 그정도는 해야지. 지금도 국론통일엔 부칸 만한거 있냐?

하지만 당시 백제는 호족-귀족연합체 였고, 백제왕족인 부여씨는 장수왕한테 털려 개로왕이 죽고 나와바리인 송파구에서 쫓겨나서 문주왕이 충남으로 이주한건데, 송파 나와바리 뺏긴 부여씨(와 한강권 귀족)는 약해지고 충남 전북 나와바리 관리하던 일찐들이 존나 쎘다.

특히 익산 조폭인 사택가문은 사실상 조선 세도정치 수준으로 파워가 존나 쌤. 왕은 못해먹지만 왕비는 얘들이 다 해먹음. 사실상 백제 왕은 절반은 사택가문.

그리고 당연히 무왕의 마누라 중에 사택가문이 있었다. 그래서 왕비들 끼리 자기 아들 왕 시킬라고 암투 벌이느라 나이처먹고 세자가 된 이유가 설명될 수 있다.

그래서 이 때 해동증자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왕자시절 효자로 유명했다고 하는데, 실제 효심이 대단했다기 보단 일단 출신이 약하니까 사택가문 왕비한테 굽실거렸던거다.

맹목적인 효도라는게 그냥 애미한테 줘 잡혀 살면 그게 효자지 뭐. 여튼 모든지 유교적으로 생각하던 조선시대엔 원래 효자였는데, 타락해서 나라 망침 ㅉㅉ 했는데,

지금은 의자왕이 결단력과 실행력이 쩔어서 일단 힘이 약할 땐 숙이고 있다가 힘을 모아서 한방에 역전시키고 권력 장악한거라고 본다.

실제로 왕으로 즉위 한 뒤 사택가문의 엄마가 뒤지자 이복 동생, 조카를 다 좆본으로 쫓아낸다. 쫓겨난 애들이 왜왕한테 찌질거려 일본 기록엔 남아있다.

더불어 삼국사기에는 의자왕이 나라 말아먹은 짓으로 알려진, 신하 쫓아내고 자기 서자 40명을 관직에 올린 얘기도 대충 이 때의 얘기인걸로 본다.

정확히는 왕권강화를 위해 정권내 귀족세력을 내 쫓고 친위 왕족 위주로 정권개혁했다는것. 솔까 친아들이 40명인게 말이 되냐? 그냥 왕족 남자=왕자 라고 쓴 거 같다.

그리고 즉위하자마자 신라한테 전쟁을 일으키고 대야성까지 처먹으면서 땅도 꽤 넓히고 고구려 사이에서 연개소문한테 사신 보내서

우덜이 당나라랑 연합먹고 뒤치기를 해불면 너거덜(고구려)은 한방에 뒤져부는 거야.

긍께 김춘추 말고 우덜 백제랑 손을 잡아야 쓰겄제?

하며 원래 꼬붕이던 왜랑 긴밀하게 연계해 외교질로도 신라를 압박하며 사실상 제2의 전성기를 만든 왕이다.

김춘추가 대야성 전투에서 죽은 사위 김품석의 복수를 위해 진덕여왕에게 건의하지만 진덕여왕은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칠수없다 한것으로 보아 그 위상을 알수있다.

642년 대야성 포함 40여개 성 함락

645년 7개 성 함락

648년 10여개 성 함락

649년 7개 성 함락

655년 30여개 성 함락

ㄱㅆㅅㅌㅊ

워낙에 김춘추 김유신, 선덕여왕이 유명해서 선덕여왕 김춘추 김유신이 존나 쎄서 백제 멸망시킨건줄 아는데, 그딴건 없고, 선덕여왕 시절엔 의자왕한테 털려서 나라망하기 직전이었다.

김유신이 뭐 씨발 검기로 바위를 가르고 메테오로 백제군을 물리쳤다고 하는데, 개소리임.

백제한테 줘 털려서 나라망하기 직전이라 비담이란 놈은 씨발 이게 다 선덕여왕 때문이다 이러면서 반란 일으켰다 실패하고,

백제를 중심으로 고구려 - 왜 양 사이드 삼아 신라를 존나게 다굴 쳐서, 한놈 이라도 좀 봐달라고 할라고 김춘추가 고구려한테도 가고 왜에도 가고 당나라한테도 가서 존나 도와달라고 빌었는데 아무도 안도와줌.

근데 이걸 또 나중엔 무열왕께서 신묘한 외교술로 나라를 구했다. 이지랄 떰.

이 때 김춘추는 의자왕만큼은 존나 죽이고 싶어했다 왜냐면 의자왕 이 시끼가 대야성 첬다가 김춘추 딸이랑 자식 새끼도 죽였거든 물론 이건 사위 새끼 잘 못 둔 김춘추의 불운이기도 하지만

여하튼 이 때 당나라는 백제가 적당히 기름칠을 해 놨기에 신라 망하건 말건 그냥 형식적으로 백제랑 신라 늬들 싸우지마라 정도의 있으나마나한 설교나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선덕여왕 쫑코주는것도 잊지 않음.

하지만 당나라가 고구려 공격하다 안시성에서 길막당하자 백제를 존나 조지고 싶어한 김춘추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일단 백제 먼저 공격하고 고구려 뒤치기 하면 된다고 꼬드긴다.

당나라가 바다 건너가면 보급은 어떻게 해? 하니까 쌀은 신라가 준다고 쌀셔틀 자처함.

여튼 당나라는 쌀걱정은 덜었으니 소정방이가 군대 이끌고 서해바다 건너 백제 공격하려고 함. 그리고 김유신은 그 당나라군 쌀셔틀 할라고 영혼까지 끌어모은 신라 전 병력 5만명으로 쌀배달 작전 시작함.

그 이전에 당군이랑 신라군 사이에서 어디를 먼저 칠지 고민을 하다가 답이 안 나와서 의자왕이 귀양 가있던 좌평 흥수에게 "당군이랑 신라군이 온다는데 어째야함?" 이러자 "백강과 탄천을 넘지 못하게 하고 성안에서 존버 가면 필승임 ㅇㅇ" 라고 답했는데

귀족들이 "아따 씨방 지금 귀양 가있는 놈 말을 믿는기요? 반대로 하는것이 좋겠수다" 라고 의견을 내놨고 결국 의자왕이 그러기로 결정했다.

백제는 씨발 신나게 신라 후두려 패다가 갑자기 당나라에서 군대끌고 온다니 일단 수도방위사령부 병력을 싸그리 긁어모아 당나라군 막을라고 서해쪽으로 출격하고, 동시에 신라 김유신 쌀배달군을 막을라고 5000명출격

신라를 얼마나 개 좆밥으로 봤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신라 개좆밥 5만명은 자기들 5천명으로 막을 수 있다는 뜻.

당시 사비성은 백제의 후방이었지만 역으로 서해바다랑은 존나 가까워서 소정방이가 공격하기 딱 좋았고 실제로 금강을 타고 올라가 사비성 정ㅋ벅ㅋ. 이때 얼마나 처참하게 발렸는지 1만명이나 죽었다고 나온다.

그 와중에 신라는 황산벌에서 계백이한테 길막 당하자 신라 화랑도 세속오계인 당일배송 쿠팡맨 정신으로 쌀배달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화랑들 카미카제 시켜서 어찌저찌 쌀배달은 성공.

다만 배송지연 됐다고 소정방이한테 컴플레인 먹음. 이 일로 김유신은 저 짱깨놈들 절대 믿지 말라고 했고 얼마 안가서 실제로 전쟁따리 전쟁따 나당전쟁이 터졌다.

여튼 당나라 요격군은 패배하고 사비성은 함락당했다.

디만 의자왕은 탈출해서 웅진성으로 커멘드센터 이동한 상태.

항복에 관한 충격적인 진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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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줮같은 상황 보고 쓰레기 생각한 당신, 당장 쓰레기한테 사과해.

다만 완전히 망한 것은 아닌게 백제 근왕 정예군의 당나라군 요격은 실패하지만 당나라도 사비성 어택땅만 찍은 상태였기 때문에 아직 지방에 여러 백제 멀티는 남아있던 상태였고,

특히 백제 군사요충지인 웅진성이 있었다. 웅진성은 백제가 고구려한테 한강 몽촌토성 뺐기고 도망칠 때 만든 멀티라 방어용으로는 존나 쩌는 성이었다.

다만 방어용으로만 좋은성이라 나중에 좀 더 확장성이 좋은 사비성으로 옮겼던 거다. 그래도 일단 방어용으론 좋았고, 사비성이랑은 강으로 연결되어있어 존나 빠른 멀티가 가능했기에 꾸준하게 관리는 해왔다.

그리고 나중에 백제부흥운동을 하는 흑치상지나 복신 같은 지방군도 있었기에 군사적 역량도 아직 충분했다.

그랬기에 웅진으로 몽진한 의자왕이 웅진성에서 우주방어 존버하면서 시간끌고 지방군을 집결해 신라쪽의 보급은 막으면서 보급에 어려움을 겪던 당나라 원정군은 짤짤이로 괴롭히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물론 당시 백제는 왕실이랑 지방귀족세력이랑 존나 사이가 나쁘긴 했는데 했는데 아무리 의자왕이 싫어도 적국 신라에게 모가지 굽히고 5두품으로 강등되서 들어갈 귀족들이 있었을까?

무왕 이전에 백제왕들이 귀족들한테 털린 이유가 한성백제 시절 고구려한테 털리다가 겨우 목숨만 부지해서 돌아와서 귀족세력이 세진 것 처럼, 의자왕이 수도랑 왕실군이 털리고 힘빠졌으니 귀족들이 힘 모아서 당나라만 몰아내면 귀족들이 다시 정권장악하는건 불보듯 뻔한 건데, 그 상황에서 군사력 유지하고 항복하는 멍청이는 없었다.

백제는 조선시대처럼 중앙집권화가 된 동네가 아니다.

거기다 고구려도 아직 망하기 전이니 SOS쳐서 고구려와 연합해서 당나라군 요격해서 타격을 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고구려 입장에서도 당태종 이후에 계속적으로 당나라에게 압박을 받고 있는데, 당나라 정예원정군을 백제랑 연합해서 홈그라운드에서 전멸시키면

당나라가 한 동안은 국외원정 할 여력이 안될 테니 자기네들도 한시름 놓을 존나 좋은 기회라 호응 할 가능성도 높았다.

그런데 의자왕은 웅진성에 들어간지 5일만에 갑자기 항복한다. 나당연합군은 아직 웅진성의 끄트머리조차도 보지 못한 상황에서 갑작스레 서렌을 친것이다.

예식진이라는 새끼가 있다. 614년에 태어나 672년에 죽었으며, 대당좌위위대장군이라고 낙양에서 발굴된 묘비에 당당히 적혀있으며, 백제 웅천, 즉 충남 공주 출신의 인물이였다.

신당서 소정방 열전에는 예식이라는 자가 의자왕과 함께 항복하였다고 되어 있고, 의자왕보다 예식이 우선시 되어 주어로 써져 있었다.

즉 예식 = 예식진이라는건데, 그럼 백제 장군 예식이 어떻게 당나라의 고위직 예식진이 된걸까?

묘비에 보면 흉노출신이였으나 한나라에 항복해 큰 공을 세운 김알제보다도 예식진의 공이 더 크다고 서술되어 있다.

민족 사학자 신채호는 의자왕의 항복 장면을 이리 서술하였다. 누가봐도 웅진의 수성대장 예식이 의자왕을 배신하고 사로잡아 항복시키려 하자 의자왕이 자살하려고 한 장면으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또 다른 역사서를 해석하면 기대장예식 우장의자래항이란 문구가 나온다. 이 문구의 뜻은 "예식이 의자왕을 데리고 와서 항복을 했다."

즉 예식이라는 백제판 이완용이 그나마 장기전으로 끌고가려던 의자왕을 배신하고 붙잡아 나당연합군에 넘겼고, 그렇게 백제는 허무하게 멸망해버렸다. 이 매국노짓거리로 인해 고구려까지 나당연합군에 털리는 엄청난 나비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참고로 학계에선 2010년까지 이 썰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예씨 집안 무덤이 더 발굴되고 나니 예식진의 손자 예인수가 묘비에 대놓고 우리 할아버지가 의자왕 통수치고 그 댓가로 당나라에 상받음 이라고 적혀있어서 이 썰은 정설이 되었다.

예인수가 그 내용을 대체 왜 썼는지 의문이지만 이것으로 인해 예식진은 빼도박도 못하는 이완용과 동급 그 이상의 매국노가 되고 만다.

원래 당나라 시대 묘비는 곽철용이 처럼 나는 어떻게 잘나갔는가? 부터 우리집안은 뭘 했고 얼마나 쩌는 집안인가? 를 쓰는게 국룰이었다. 덕분에 당나라 시절 묘비만 가지고도 역사사료가 나온다. 연개소문 집안 족보도 매국노인 연남생 후손이 우리집은 원래 고구려 누구누구 때 부터 잘나갔는데 연남생때 당나라로 라인을 잘 갈아탄 덕분에 당나라에서 잘나갔다 어쩌고 써논 덕분에 역사적으로 밝혀졌다.

결과적으론 예식진의 매국노 짓거리에다가 당나라군 뒤치기 한방에 당해서 백제가 망하고 의자왕은 당나라로 끌려가서 죽는다. 뭐 결과적으로 신라가 당나라 끌어들인건 못막긴 했으니 백제의 멸망은 그의 책임때문이라고 할수있다.

사후[편집]

의자왕은 낙양 북망산에 묻혔는데 옆에 갇히 묻힌 새끼들이 촉나라 병신 유선, 오나라 병신 손호, 고구려 병신 연남산 연남건 형제, 진나라 병신 진숙보였다.

한 마디로 당나라가 병신 세트 메뉴 취급해버린거다. 안습.

의자왕은 잡혔지만 딴 동네 일찐들인 흑치상지나 [복신]등 아직 세력이 남아있기에 자기 나와바리에서 꼬붕들 데리고 당나라랑 신라에 저항한다.

보통 백제부흥운동이라고 함. 학자들에 따라선 의자왕은 잡혔지만 연합체인 백제가 완전히 멸망한게 아니고 일찐들에게 추대당한 부여풍(풍왕)을 마지막 왕으로 치기도 한다.

가끔 환빠들이 의롭고 자애로운 왕이라서 의자왕이라고 헛소리하는데 이름이 부여 의자고 망국의 왕이라 시호 올려줄 후손이 없어서 의자왕이다

삼천궁녀는 당연히 거짓이다. 실제로 학자들도 걍 개소리수준으로 치부하고 있다.

애초에 백제 인구 규모로 궁녀를 삼천명을 둘 수가 없다. 그냥 숫자 뻥튀기. 백제보다 훠얼씬 인구 많았던 후세 조선 왕조도 궁녀를 삼천명 두는 미친 짓은 안 했다.

다만 동진에 진짜 일만궁녀 찍은 놈이 있기는 하다. 서진 사마염이 후궁 일만을 찍었다. 물론 저 짓거리를 하다 보니 서진은 바로 북방민족한테 씹압살당했다.

결론 : 짱깨만 없었더라면 대중들에게 명군 ~ 성군으로 남았을 텐데 당나라 덕분에 어부지리로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하자 생수머신으로 기록됨


의자왕이 받은 편지(?)[편집]

드립은 단-지 드립일 뿐입니다!
진실, 거짓 여부... 따지거나 선비질 좀 하지 맙시다.
드립은 어디까지나 드립일 뿐이므로 진지하게 보는 순간 지는 겁니다.


2008년 7월, '달인 - 수집의 달인' 편에서 귀중한(?) 물품을 공개하던 중 '하늘이'라고 불리는 궁녀에게서 받은 편지가 공개되었다.

진행자가 의혹을 제기하자 달인이 조상권침해라며 방송중에 화를 내기도 했다. 해당 영상

공개된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랑의 각서
To. 의자오빠
오빠 나쁜
신라사람들
지못미... 지못미...
ㅠㅠ 오빠...
사랑해~
오빠의 영원한 관심일촌

 
궁녀 하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