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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사와라 미치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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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일본에선 그/그녀를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본 인물을 욕보일 시 많은 느프브 팬들의 저주로 제 명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이 틀의 대상은 골든글러브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야구를 존나 잘하거나 야잘알이며 야구 그 자체입니다.
믈브느프브에 있기 마땅한 존재입니다. 크보크프브르 같은 건 그에게 너무 좁습니다.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小笠原 道大

Michihiro "Samurai" Ogasawara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No.81

기본 정보
생년월일 1973년 10월 25일
출생지 지바 현 지바 시 미하마 구
국적 일본
학력 교세이 국제 고등학교
신장 178cm
체중 84kg
선수 정보
입단 1996년 드래프트 3위
투타 우투좌타
포지션 1루수, 3루수, 포수
경력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1997 ~ 2006)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7 ~ 2013)
주니치 드래곤즈 (2014 ~ 2015)
지도자 정보
경력 주니치 드래곤즈 2군 감독 (2016 ~ 2019)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수석 겸 타격 코치 (2020~)
선수생활 말년의 모습
파일:오가사와라빠던.gif
좆간지 빠던


사무라이, 검객, 미스터 풀스윙

정확성과 파워를 모두 겸비했던 2000년대 느프브 최고의 강타자 중 한명이다.

재일교포라는 카더라가 있는데 근거 없는 찌라시다.

닛폰햄 시절[편집]

고등학교 졸업 후 사회인 야구에서 뛰다가 1996년 드래프트 3위로 닛폰햄에 입단한다.

원래 포지션은 포수였는데 데뷔 초기엔 백업 멤버로 뛰다가 1999년부터 전년도에 은퇴한 오치아이 히로미쓰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1루수로 포지션을 바꿨고 단박에 타격 포텐이 각성하면서 주전 강타자로 도약한다. 그 시즌에 당시 신인이던 육수자카에게 데뷔 첫 피홈런과 첫 실점을 안겼다. 이외에도 손가락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은 와중에도 대타 홈런을 치는 등 근성의 이미지가 강했다.

트레이드 마크인 강렬한 수염과 칼을 길게 뽑은 무사를 연상케하는 타격폼으로 시원시원한 풀스윙을 휘두르며 장타형 교타자로 이름을 날렸고 그 이름에 걸맞게 2000~2001년 최다안타, 2002~2003년 수위타자, 2003년 최고출루율 등 2000년대 초반의 각종 타격 타이틀을 가져갔다.

주요 포지션은 이전의 주전 선수가 팀을 떠날 때마다 그 공백을 메꾸는 식으로 1루수, 3루수 등을 번갈아 가며 뛰었는데 두 포지션 모두에서 골글을 총합 6번이나 딸 만큼 준수한 수비력을 보여줬다. 거기다 1년 한정이고 부상 우려 때문에 도루를 많이 못했지만 20-20도 달성했을 정도로 주력도 괜찮았다. 그러면서 매 시즌 20~30홈런과 3할 타율을 꾸준히 기록하며 퍼시픽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 내야수로 자리매김했다.

2006년 소속팀인 닛폰햄을 44년만에 우승시키고 자신은 홈런왕, 타점왕, 리그 MVP를 수상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낸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FA를 선언하고 요미우리로 이적했다. 이 당시 자신의 전임 1루수였던 오치아이 갓갓니뮤가 있던 주니치에서도 오퍼가 들어왔지만 고향인 지바랑 가깝고 자신이 원래 뛰던 도쿄로 다시 가고 싶었는지 요미우리를 선택했다.

요미우리 시절[편집]

이적 첫해인 07시즌부터 오푼이와 한솥밥을 먹게되며 3루수 출장 빈도가 늘어나게된다. 이적 첫해 오가사와라는 여전히 빼어난 성적을 보이며 2년 연속으로 MVP를 수상한다.

참고로 2년 연속 MVP수상이자 야수 최초의 양대리그 MVP 수상이기도 하다.

08시즌엔 시즌 초반 타격 부진을 겪으며 올스타전도 못 나가고 베이징 올림픽 국대에도 못 뽑혔지만 시즌 후반에 다시 타격감이 돌아왔고 그 결과 오히려 전시합 출장에 전년도보다 더 나은 스탯을 찍었다.

10년까진 20~30홈런을 꾸준히 쳤지만 11시즌부터는 공인구의 영향, 급격한 노쇠화로 인해 성적이 그야말로 폭삭 내려앉았다. 이해 2할4푼에 홈런은 5개에 그치며 20~30홈런을 밥먹듯 쳐주던 강타자가 순식간에 물빠따가 되어버렸다.

12시즌엔 아예 0홈런에 1할타율을 기록하며 각동님의 명언이 생각나게 하였다. 13시즌에도 끝내기 쓰라린을 제외하면 별다른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 결국 13시즌 종료 후 오가사와라는 자기 자리가 있는 팀으로 가겠다며 FA신청을 또 한다.

노쇠화가 완연해서 FA로 데려갈 구단이 있을까 싶었지만 오치아이가 막 단장으로 취임했던 주니치가 1년 3000만엔에 데려가면서 선수생명을 연장했다.

주니치 시절[편집]

요미우리 말년에 보여준 성적보단 나은 성적을 보였으며 주로 대타로 기용되었다.

장타력이 씹망했지만 컨택능력은 40줄에 접어든 선수치곤 괜춘했다.

15시즌 요미우리와의 경기에서 현역에서 은퇴하게된다.

은퇴 이후[편집]

은퇴 후 주니치의 2군 감독을 역임하다가 2020년에 친정팀 닛폰햄의 수석 겸 타격 코치로 복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