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윤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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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편집]

두산(OB) 베어스의 5대 감독. 베어스의 역사에 나름 한 획을 그은 선수이자 감독이다.

아니 근데 두산 감독은 많지도 않은데 왜이리 문서가 없냐. 내가 만들어야될판이네. 노잼이겠지만 일단 만들어봤음.

선수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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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투수로서 야구선수생활을 시작했다. 고교시절에는 노히트노런을 기록하기도 했으며,유망주로써 이름을 날린다. 그러나,연습경기 도중 팀 동료의 머리에 공을 맞추는 헤드샷을 하게 됬고,그 팀 동료가 한떄 기억상실증까지 갔다가 기적적으로 회복했지만 투수로써 자신감을 잃으면서 야수로 전향했다. 이후 대학진학 대신 실업야구 구단에 입단했고,국가대표로도 뛰게 된다.


KBO의 1호 기록을 많이 갖고있는 선수. 프로야구 개막 당시,개막전에서 OB베어스 소속으로 6개구단 선수대표로 나와 선수선서문을 읽었다.


OB베어스의 간판타자로써,첫해 OB 베어스의 원년 우승을 이끄는 주역으로 활약했고[1],이후 주장직 등을 거치며 OB의 주요 타자로써 활약한다. 1989년에 은퇴했으며,OB 베어스에서는 그의 등번호 '10'번을 영구결번함과 동시에,크보선수 최초의 은퇴경기를 치루는 선수가 된다. 그러나 이후 감독시절의 경력으로 영구결번이 해제된다.

감독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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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니 친구야?으잉?", "선배랑 후배가 같냐?으잉?", "선생님이 학생이랑 같아?으잉?", "선임이랑 후임이 같냐?으잉?", "내가 선배님이니까.으잉?"
좆까 애미뒤진 꼰대새끼들아

이후 베어스의 코치를 거치다가,이재우감독이 성적 부진을 거듭하며 사임하자 감독대행으로 올라서서 팀을 이끌게된다. 대행시절 성적은 26승 20패 1무 0.564. 다만,이해는 베어스 역사상 최악의 성적인 8위를 했지만,구단은 윤동균 대행에게서 희망을 본건지 윤동균을 크보선수출신 1호 감독으로 올린다.

비록 첫시즌인 1992년에는 56승 66패 4무 0.460을 기록하며 5위에 그쳤지만,그다음시즌인 1993년에는 리빌딩에 성공하고 특급 유망주투수 김경원[2]의 활약에 힘입어 66승 55패 5무 0.543을 기록하며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물론 포시에서 한테 털렸고,김경원을 구원투수로써 48경기동안 129이닝을 던지게 하는 등 무지막지하게 굴리기도 하는 등 암이 없는건 아니다.

그리고 대망의 1994년,윤동균은 우승을 노리고 야심차게 시즌에 임하나,불운하게도 특급 투수인 김경원이 부상당한 이후 투수진마저 부진에 빠졌고,당시 OB의 타선은 안그래도 약한데 역사상 홈런 못치기로는 소문난 옆집놈들보다도 팀홈런이 밀릴 정도로 심각하게 답이 없었다. 성적은 성적대로 떨어지기 시작했고,윤동균은 초조해진 나머지 자기가 야구하던 쌍팔년도식 군기잡기를 하려고 빠따 들고 선수들을 떄리겠다고 지랄해댔고,당시 주장인 김상호와 격돌,빡친 나머지 코치에게"시발! 나 이새끼들하고 야구 못하니까 이새끼들 명단 서울에 올려!"라며 빠따들고 김상호를 때리려 했지만 코치들의 만류로 씩씩대며 자기방으로 돌아갔고,김상호와 박철순을 비롯한 선수단 17명은 죄다 이탈한 후 감독 퇴진을 외친다. 이떄 뺑소니살인범도 껴있었던건 비밀.

결국 구단 프런트의 무언의 압박 하에 윤동균은 책임을 지기 위해 자진사퇴했고,한화 코치로도 지내다가 현장을 떠났다. 뭐,장원진,김민호,안경현등 선수들을 발굴해서 OB베어스 우승의 기틀을 다졌지만,그놈의 쌍팔년도식 마인드 등의 한계도 상당한 감독. 물론 항명파동건은 윤동균 잘못도 크지만 윤동균만 까긴 그런게,이 망할 씹돡 프런트놈들이 지들이 선수단 이탈을 사전에 알고도 우유부단하게 대처하다가 사태를 키워놓았으면서 본인들 책임은 안지고 윤동균에게만 다 떠넘긴것도 크다. 항명파동 이후 선수단을 향한 씹돡 프런트의 답없는 뒤끝 릴레이는 덤. 하여간 씹돡 프런트는 90년도에도 답이 없었다 ㅉㅉ

  1. 당시 5명뿐인 슬래시라인 3/4/5를 찍음과 동시에 스탯티즈 기준 당시 타자 war 2위
  2. 1.11로 역대 단일시즌 평균자책점 4위. 참고로 단일시즌 평균자책점 10위권에는 각동님 기록으로 도배됬는데,1.58을 기록하여 8위에 오른 최동원,1.58을 기록하며 10위에 오른 장호연과 함께 몇안되는 10위권 진입 선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