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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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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종이 위의 검은 것.

중요한 정보를 남기기위해 끄적거리지만 대부분 쓸모없는 것을 끄적거리는 것.

설명[편집]

중딩 때 쓰는거라곤 방학숙제 독후감이랑 국어 수행평가 뿐이었는데 고딩이 되자마자 받게되는 또 다른 시련.

초고를 쓰면 정말 완벽하게 잘 썼는데 다시 검토하면 항상 틀린다.

그리고 검토하고 수정하고 제출하면 또 비문이 보이는 오셀로 플래시게임 같은 새끼

'글'자부터 아재 냄새가 난다지만 글이야 말로 우리의 이성이자, 우리 그 자체이다.

문맹율도 가뜩이나 낮은 나라에 글이란 하나의 사치에 불과하게 되어버렸다.

그러니 글맹이 되지말고 도서관에 가서 책이나 좀 읽어라.

문돌이들이 매일 고통받으며 쓰고 있는 것이다.

글은 역사를 기록하기도 하고 창작에서 스토리를 구성하기도 하며 하물며 지금도 내 생각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기록이다.

쓰기 쉽고 아름다운 모국어 한글을 만들어준 갓세종에 경배.

디시위키답지 않은 말이지만 결국 글의 최종목표는 사람을 이해하려는 시도다.

글에 대한 명언[편집]

각자의 작품은 그것이 문학이든 음악이든 회화든 건축이든 또는 다른 무엇이든, 항상 자신을 나타낸다. -새뮤얼 버틀러

의도를 꽃처럼 화려한 찬양의 어휘 뒤에 숨기는 사람은 추한 얼굴을 화장으로 숨기려는 여자와 마찬가지다. -칼릴 지브란

글이란 지금 그곳에 없는 사람의 말이다. -프로이드

논평(論評)이 곧 문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거트루드 스타인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을 것이 아니라 반드시 글로 옮겨 써야만 한다. -데리다[1]

반항, 완벽성, 추상성 이 세 가지를 나는 문학에서 좋아한다. 그리고 문학에서 싫어하는 세가지는 모방, 왜곡, 복합성이다. -칼릴 지브란

번역은 여자와 비슷한 데가 있다. 아름다우면 충실하지 않고 충실하면 아름답지 않다. -벤 제룬

우리를 흔들고 동요시키는 것이 인생이며, 우리를 안정시키고 확립시키는 것이 문학이다. -개러드

왜 쉽게 써야 하는가?[편집]

(타인을 설득해서 공감하자고 쓰는 글일 텐데 왜 굳이 어려운 용어를 쓰는 걸까?)
남을 설득할 생각이 없는 것. 진정으로 소통하고 싶다면 쉬운 글로 표현할 것.
어떤 사람이 어렵게 쓰냐면, 사기 치려는 사람
-윾시민


물론 ㄹㅇ 전문가들끼리 쉽게 이야기하려면 어려운 용어를 쓸 수 밖에 없겠지만, 대중을 목표로 한다면 최대한 쉬운 글과 쉬운 표현, 가벼운 문장을 사용하고 글의 길이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좋다.

특히 헬조선 개돼지들은 3줄요약을 외치는 것이 생활화되어있지 않은가?

각주

  1.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논리철학논고의 핵심 명언에 빗대어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