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남극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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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남극의 과학조사와 교류의 허용 영유권 주장 금지 군사 행동 금지 등을 담고 있는 조약이며 냉전 시대때 처음으로 맺어진

군비 규제 협약

초기에 12개국이 조약에 협의 하였다

남아프리카 연방, 노르웨이, 뉴질랜드, 미국, 벨기에, 소비에트 연방, 아르헨티나,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칠레, 프랑스

그 이후 17개 나라들이 추가로 이 조약에 협의했음

네덜란드, 대한민국, 독일, 불가리아,브라질,스웬덴,에스파냐,에콰도르, 우루과이,우크라이나,이탈리아,인도,중화인민공화국,체코

페루,폴란드,핀란드


발견사[편집]

1819년에 영국의 윌리엄 스미스(William smith)가 표류하다가 남극 남서부 끝자락의 사우스셰틀랜드에 표착했다.

1821년에는 러시아 황제의 의뢰를 받은 벨링스하우젠(Fabian Gottlied Bellingshausen,1778~1852)이 남극 서쪽은 '벨링스하우젠 해'를 지나

남극 본토를 발견했다고 한다.벨링스하우젠이 남극 대륙에 도착한 비슷한 곳에 미국의 파머도 당도했다. 남극 반도의 절반 가량을 자신의 이름을 따 파머랜드 라 불렀다.

프랑스의 뒤르빌은 이보다 다소 늦은 1837년에 영구의 제임스 로스(James Clark Ross,1800~1862)가 남극 북부의 빅토리아랜드를 탐사하고 대륙 안쪽으로 들어간 바다에 '로스 해'라는 이름을,

로스 해를 반쯤 뒤덮은 빙산군에 '로즈 방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주장했던 내용[편집]

1.아르헨티나 1908년 남극의 영토 주장

2.1908년에 영국이 남극과 가까운 영토인 포클랜드를 소유함.

그리고 초기 발견자 윌리엄 스미스 제임스 로즈 등을 들어 남극 소유권 주장.

3.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1908년에 소유권 주장.

오스트레일리아는 영국 추밀월(과거 영국 국왕 자문기구 현재는 해외 영토에서 생기는 분쟁 조정 및 기타 업무 처리)에서 1923년 남극해 일대의 관할권을 넘겨받았으며,제임스 로즈 등의 탐험가들과 어부들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남극을 오갔다는 점을 근거로 주장함 뉴질랜드 또한 비슷한 주장

4.1924년 프랑스가 뒤르빌의 탐험을 근거로 테르아델리의 영유권 주장

5.1925년 노르웨이가 부베 섬을 점령하고 영유권 주장.

6.1938년 칠레가 영유권 주장 사유: 1494년에 맺은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들었다. 칠레 독립 당시 '안데스 산맥 서부 지역과 그 남부 해역'에 대한 지배권을

스페인에게서 이양받았으며, 따라서 남극의 남서부 일대는 '안타르티카 칠레나(칠레령 남극)'로 칠레의 주권을 미치는 영토라고 함.

ㄴ ㅈㄹㄴ


위기와 협상[편집]

미국은 남극 영유권을 주장해야한다는 국방부와 손대지 말자는 국무부 의 입장이 엇갈려서,영유권 주장은 유보하면서도 20세기 들어 지속적으로 남극에 군 병력을 보내 '탐사와 관측'을 시행함.

이에 초조해진 영국은 1939년 스토닝턴 섬에 미국에 뒤이어 기지를 설치해 긴장 국면을 조성하고

1948년에는 아르헨티나의 남극 상선 운항에 질세라 군함을 파견해 남극해에서 두 나라의 선박이 대치하는 등 무력 충돌까지 가는 것 아니냐는 국제 사회의 우려를 낳기도 했다.

1949년 침묵을 지키던 소련이 자국을 따돌리고 진행하는 어떤 남극 관련 계획도 거부하겠다" 선언 하여 긴장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1948년에 미국이 유엔 신탁통치령 얘기도 나왔지만 반응이 ㅈㄹㄴ로 나와서 실패함.

주장국 과 초대강국들이 남극 나눠 공동 관리 어떨까 하고 미-영 은 비밀 협상을 통해 거의 합의에 이르렸다. 근데 그때 칠레에 훌리오 에스쿠데로가 좆명언을 하시는데 "남극을 인류 과학 탐사용으로만

활용하며ㅡ어떤 나라도 주권을 주장하지 않는다"라는 제안을 내놓았다.

처음에도 ㅈㄹㄴ 반응이 대세였지만 신탁보다 낫고 가능성 높은 해결책이라 생각한 미국은 1952년 부터 적극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어쩌다 저쩌다 해서 1959년 12월 1일 12개국이 남극 조약에 서명했다.

내용 ㅆㅅㅌ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