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서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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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의 행정구역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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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참고: 한국의 행정구역·밑줄: 도청소재지

사과가 유명하며, 석회와 슬레이트도 많이 난다고 한다. 또한 카르스트 지형이 발달되어서 시멘트 생산하기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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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을 찾습니다에서 꼭 언급되는 이분들이 이곳 출신이다. 원래 서흥군 신막읍에서 살고있었는데 소련군정 시기 전재산 뺏겨서 누이 쪽이 먼저 월남했고 1.4 후퇴 때 모든 가족이 월남했다고 한다. 근데 영등포에서 기차 타다가 헤어져서... 그렇게 30년동안 소식 모르고 살다가 여기서 만난 거라고 한다. ㅠㅠ

연혁[편집]

신막읍 천곡리에서 동검, 오덕리에서 고인돌 + 청동기시대 주거지가 발견되었다. 이후 낙랑군에 속했다가 대방군에 속했고, 313년 미천왕이 낙랑과 대방을 차지하면서 고구려의 땅이 되었다.

고구려시기 우차탄홀(于次呑忽)이라 불렸고 섷흥면 대현산성에 오곡군(五谷郡)이 설치되었다. 672년 서흥근처로 추정되는 석문(石門)벌판에서 그 주옥같은 석문전투가 발발했다. 이후 748년 8월 폐지된 오곡군(五谷郡)을 복구하면서 신라의 땅이 되었다. 그리고 경덕왕식으로 오관군(五關郡)이라고 불렸다.

고려초기 동주(洞州)로 승격되었다. 995년 방어사가 파견되었으나 현종초기 평주의 속주가 되었다. 고려 원종태반을 이 땅에 묻었기에 서흥(瑞興)으로 개명되고 현으로 강등되었다. 조선건국이후 1415년 지군사가 파견되었다. 1424년, 명나라조정에 들어간 환자(宦者) 윤봉의 고향이라 하여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615년 대현산성에서 지금의 서흥읍으로 관아가 옮겨졌다. 하지만 1671년 향리가 도호부사를 총격살해한 사건이 일어나 100년간 현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다.

17세기 입암리엔 백자도요가 형성되었고 18세기 말부터 5개의 장시가 형성되어 상업중심지로 떡상했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 1읍 10면으로 편성되었고 1940년 신막면이 읍으로 승격되면서 군청등 각종 관공서가 신막으로 옮겨졌고 중부면이 서흥면으로 개명되었다.

산을 따라 부락이 무슨 구덩이처럼 흩어져 형성되었기 때문에 북괴치하에선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내덕면은 인산군, 도면, 세평면, 소사면은 연탄군, 목감면 4개리는 봉산군, 구포면 1개리는 수안군에 편입되고 신막, 매양, 용평, 율리, 서흥, 목감면 6개리, 구포면 5개리로 군역이 축소되었다.

아웃풋[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