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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다카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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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의 인물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그 자체입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고 있는 인물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의 영웅입니다.
놀랍게도 카나가와현에선 그/그녀를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본 인물을 욕보일 시 많은 베이스타스 팬들의 저주로 제 명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기관총 타선
1番
2番
3番
4番
5番
이시이 다쿠로
하루 도시오
스즈키 다카노리
로버트 로즈
고마다 노리히로
6番 (우투수)
7番
8番
6番 (좌투수)
or 代打
사에키 다카히로
다니시게 모토노부
신도 다쓰야
나카네 히토시
스즈키 다카노리
鈴木 尚典

Takanori Suzuki

기본 정보
생년 월일 1972년 4월 10일
출생지 시즈오카 현 하마마쓰 시
국적 일본 일본
학력 요코하마 고교
신장 186cm
체중 88kg
선수 정보
입단 1990년 다이요 4순위
투타 우투좌타
포지션 외야수
경력 요코하마 베이스타스(1991~2008)
지도자 정보
경력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타격 코치(2009~2010)

소개[편집]

요코하마 머신건 타선의 핵심멤버이자 1998년 우승 당시의 주역.

전성기 때는 세리그의 이치로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교타력을 선보였던 타자였다. 요코하마의 전성기가 끝나면서 본인의 성적도 떡락하는 바람에 통산 스탯은 타팀 레전드들에 비해 다소 뒤떨어지지만 프랜차이즈 스타가 거의 없는 요코하마에서 몇 안되는 순혈 프랜차이즈이고 요코하마 구단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 요코하마 팬들이 많이 좋아한다.

선수 시절[편집]

91년 입단 직후에는 2군 경기도 자주 못 나올만큼 쩌리에 불과했으나 93년부터 서서히 빠따 포텐을 키웠다.

94시즌 처음으로 1군에 올라와서 주로 대타로 활약했다. 이 시즌에 데뷔 첫 호무란을 까는데 상대투수는 교진군의 마키하라 히로미.

95시즌부터는 점차 출전 기회가 늘면서 3번 타선에 배치되었다. 96시즌엔 첫 규정타석 도달, 97시즌에는 타율 .335로 첫 타격왕을 차지하며 요코하마의 부동의 3번타자 좌익수로 발돋움했다.

98년엔 자신의 우상인 요시무라 사다아키처럼 야구를 잘 하기 위해 등번호도 7번으로 바꿨다. 그 결과는 타율 .337로 2년 연속 타격왕, 그리고 요코하마의 38년만의 센트럴 리그 우승이었다. 이후 일본시리즈에선 타율 5할 찍고 시리즈 MVP를 수상했다.[1]

99년에도 3할 2푼대의 고타율을 보여줬지만 하필 그 해 같은 팀 동료였던 로버트 로즈가 타율 3할 6푼에 37홈런 153타점의 미친 스탯을 찍는 바람에 3년연속 타격왕은 무산되고 말았다. 2000년엔 20홈런을 깠지만 3할타율이 깨져버렸다.

2001년엔 로즈가 나가면서 팀의 4번을 맡게 되었다. 4번으로 개조하기 위해 코치들이 타격폼 개조에 나섰지만 똑딱이로 전락해버리며 좆망했다. 3할은 쳤는데 고작 6홈런에 그치며 4번 아닌 4번이 되고 만다. 참고로 이 시즌엔 1경기 3병살도 기록했다. 이 타격폼 개조는 이후의 커리어를 망치는데 일조하면서 본인의 선수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가 되어버렸다.

2002년엔 부상으로 100경기 미만 출장에 그치면서 하향세를 타는 듯 보였지만 2003년 타율 3할 회복+19홈런으로 예토전생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게 그의 야구 인생 마지막 불꽃이 되어버렸다.

03시즌을 하얗게 불태우고 2004시즌 이후로는 공격과 수비 모두 하향세가 뚜렷해진 탓에 출전기회가 현저히 줄어들며 주로 대타로 기용되었다. 2007년부턴 등번호 7번을 교진에서 이적해 온 니시 토시히사에게 양도하며 자신의 첫 등번호였던 51번을 다시 달게 되었다.

결국 전성기의 모습을 회복하지 못한 채 2008년을 끝으로 구단에게서 방출 통보+2군 코치 제의를 받으며 은퇴 기로에 섰고 같은 해 방출된 팀 동료 이시이 다쿠로가 카프로 이적한 것과 달리 본인은 결국 요코하마에 끝까지 남기로 하며 은퇴를 결정했다.

2009년 3월 시범경기를 은퇴경기로 치렀는데 이 경기에서 회색 가수를 상대로 우월 홈런을 까 버리며 피날레를 장식했다.

NPB 통산 1517경기 1456안타 146홈런 700타점 타율 0.303[2] 출루율 0.363 장타율 0.461 OPS 0.824

은퇴 후[편집]

은퇴 후 2년간 요코하마에서 타격 코치를 하다가 베이스타스 베이스볼 아카데미,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주니어 팀 감독을 맡고 있다. 주니어 팀 감독 시절엔 느프브 12구단 주니어 대회 우승까지 했다. 2020년부터는 신생 독립구단 카나가와 퓨처 드림스 감독을 맡게 되었다.

현역시절 응원가[편집]

이 문서는 갓응원가에 대해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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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를 빨리 똥응원가나 마구 찍어내는 주작룡 응원단장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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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부터 은퇴 때까지 쓰던 응원가가 요코하마 역대 선수 응원가 중 탑급으로 평가받는 응원가이다. 역시 야구 못하는 팀 답게 응원가 하나는 작살나게 잘 만든다.

駆け抜けるダイヤモンド 両手を高く上げ
달려서 나가라 다이아몬드 양손을 높이 들고서
とどろき渡る歓声が 君の胸を焦がす 우렁찬 함성이 너의 가슴을 태우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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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올스타전 당시 쓰쓰고 요시토모 타석에서 이 응원가가 등판했다. 이때가 아니더라도 가끔씩 응원단이 불러주기는 하는 듯 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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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이 초대 응원가다. 97년 버전만큼은 아니어도 꽤 괜찮다.

走ればラッキー 投げればラッキー タカノリ ヨコハマ ラッキーボーイ
달리면 럭키 던지면 럭키 타카노리 요코하마 럭키 보이
ラッキーボーイ 勝利は君に任せた 럭키 보이 승리는 너에게 맡겼다

각주

  1. 다만 타격왕 관련해선 이 해 시즌 막판에 흑역사가 있었다. 당시 히로시마 도요 카프마에다 도모노리가 타율 .335로 스즈키와 타격왕 경쟁을 벌였는데 스즈키가 2리 차로 근소하게 앞선 상황에서 공교롭게도 시즌 최종전이 요코하마랑 히로시마의 맞대결이 되었다. 이때 요코하마 감독이었던 곤도 히로시가 "스즈키는 쉬게 하고 마에다는 전 타석 고의4구로 내보내겠다" 라고 선언했고 그 소식을 들은 마에다가 빡쳐서 "ㅅㅂ 팬들 앞에서 꼴사나운 모습이나 보이라고? 고의사구나 쳐먹을 바엔 차라리 결장한다" 라고 말하고 그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다. 결국 두 선수 모두 최종전에 나오지 않으면서 결국 98년 센트럴리그 타격왕 타이틀은 스즈키가 영 좋지 않은 모양새로 가져가게 되었다.
  2. 2001년 이후론 스탯을 엄청 까먹었는데도 타율만큼은 느프브 역대 15위에 올라있다. 참고로 통산 타율 3할은 느프브 역사상 22명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