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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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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중세 시대 이전부터 일본에 있던 신분제도 중 하나. 일본 불교, 신토에 있어서 더러움(けが)이라는 관념에서 온 '더러움이 많은 일'이나 '더러움이 많은 자(죄인)가 행하는 생업'의 호칭으로 히닌(にん) 신분의 속칭이라는 설도 있지만 그 전에 고대의 피정복민족으로서 천업을 맡은 노예를 기원으로 보는 곳도 있다.

도망친 농민에게서 유래되었다고 보는 추측과 가죽 가공 등에 종사하는 부민(みん)이라는 설, 중세의 원구(元寇)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는 설, 고대의 피정복민이라고 보는 의견 등이 있지만 에타의 명확한 기점은 밝혀지지 않았다. 에타 등의 피차별민의 기원은 한결같지 않고 잡다한 기원을 가진 집단이었을지도 모르지만 히닌과는 달리 에타는 직업에 관계없이 부모 자식 대대로 계승되었다고 한다. 1885년 도쿄 인류 학회의 회원이었던 미쓰쿠리 겐하치(箕作源八)가 '에타의 풍속(穢多ノ風俗)'에 대해 각지의 보고를 구하여 각지에서의 피차별 부락민에 관한 전승이나 관련 문헌을 모았지만 그 중 대다수는 피차별 부락민일본인과는 다른 인종으로 인식하면서 그 기원에 대해 논하게 되었다.

해석[편집]

에타 차별은 헤이안 시대까지는 시작되었다고 보고, 에도 시대에 확립되어 호칭은 메이지 시대에 폐지되었다. 가마쿠라 시대까지는 나라교토에 에타 차별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있다.

에도 시대에 있어서 신분에 대해 교토대학 명예 교수 아사오 나오히로(朝尾直弘)에 따르면 "사농공상에서 사(士)와 농공상(農工商) 간의 큰 신분적 격차가 있고 농공상끼리는 거의 같은 지위라고 생각된다. 이를 평민 또는 평인(平人)으로 일괄하는 의견도 있다. 그 아래에 소위 '에타 · 히닌'이라 불리는 계층이 있었다. 커다란 구별은 사와 농공상, 농공상과 그 밑의 '에타 · 히닌'과의 사이에 있었다는 것이 밝혀져 왔다"고 한다.

명칭[편집]

에타라는 말은 문헌상에서 13세기에서 처음 발견되었고 《덴구소시(天狗草紙)》(1296년) 등에서 볼 수 있다. 에도 막부의 공문서에는 1644년 이후에 발견되었다.

935년에 편찬된 《화명류취초(和名類聚抄)》는 '도지()'의 훈을 '恵止利(えとり)'라고 한 데다가 '마소를 도축해서 의 먹이로 한다는 뜻이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또 1275년 호죠 사네토키(北条実時)가 헌상했다고 하는 《명어기(名語記)》에서는 '강변에서 살고 마소를 먹고 사는 사람을 에타(ゑた)라고 명명함' '에타는 에토리(とり)이다. 에토리를 에타라고 말할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또 같은 시기의 《지리부쿠로(ちりぶくろ)》에서는 '근본은 에토리(とり)라고 불러야 한다. 먹이(餌)라 하는 것은 매의 고깃덩어리[ししむら] 먹이를 말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요컨대 원래는 매 등을 사육하기 위해 먹이를 얻는 직업을 의미하고 있으며 이게 전(轉)하여 살생을 업으로 하는 자 모두가 에타라고 불리게 된 거다. 그리고 '에타'는 원래 '에토리'이고 지리부쿠로에 나온 대로 센다라(せん), 즉 수렵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문화의 사람들을 가리킨 것이 '에타'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더러움(穢)이 많은(多) 일을 한다는 것에서 '에타()'라는 글자를 맞춘 거라고 본다.

때로 엣타(エッタ) 등 사투리로 불리는 일도 있고, 지역에 따라서는 엣타보시(エッタボシ) 등의 호칭도 있다. 2011년 1월 5일에는 고세 시 가시와라 스이헤이샤 박물관(水平社博物館)에서 한국을 주제로 한 전시에 관해 어떤 무리들이 '엣타(エッタ)'라는 말을 연발한 일이 있었다. 이는 일본에서 '스이헤이샤 박물관 앞 차별 가두 선전 사건(水平社博物館前差別街宣事件)'으로 알려져 있다. 그 무리들은 바로 재특회.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