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춘천전투

조무위키

이 문서는 머한민국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 문서는 신의 한 수를 다룹니다.
이 문서는 최고의 선택으로 길이 남을 이득을 얻은 사례 또는 당시에는 존나 욕을 처먹었는데 후대에 재평가된 것을 다룹니다.

개요[편집]

한국전쟁 초창기에 대한민국 국군북괴군

춘천에서 3일동안 막았고 무사히 철수해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는데 큰도움을 줬다.

전쟁 전 대비[편집]

춘천시내가 38선에서 존나 가까이 있는걸 알고

"방어선 안 해놓으면 춘천 좆됨 ㅇㅋ?해서

적은비용,인력에도 불구하고

학생,시민,공병들의 노오력으로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 참호근처에는 북괴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수많은 지뢰가 매장되었다.

개전초까지[편집]

사실 춘천시는 시가지 북부지역이 38선이북에 있었기에 개전이전까진 반토막이 난 상태였다. 그래서 38선 이북에 둔 가족, 친지등을 만나기 위해 그 선을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북괴군도 위에 나오는 참호와 지뢰에 대해 다 알고 있었다 바로 근천데. 그래서 이새끼들이 뭔짓을 했냐?하니 개전 2일전인 6월 23일, 이남에 있는 친척을 만나러 갈건데 문좀 열어주세요 했던 할아버지를 일부러 지뢰가 매설된 모진교쪽으로 보낸 것이다. 물론 그 할아버지는 모진교쪽에서 지뢰밟고 돌아가심. 이걸보고 국군은 '아 시발 이거 뭔가 좆되겠구나' 싶어서 자세히 정탐해보니 북괴군의 동향이 존나 수상했던 것이다.

그리고 개전 2주일 전에 춘천에 주둔했던 6사단의 사단장으로 들어온 김종오성님[1] 은 정신교육과 훈련을 빛의속도로 완료시켜놓아서 군의관들도 바로 명령내리면 총쏠 수 있을 정도로 준비가 완료된 상황이었다.

게다가 존나 개꿀인 것이 국군의 김종오는 2주일되기 전에 병사들을 모두 인간병기로 개조해놓은 굇수급이었는데, 춘천을 비롯한 북괴군의 중부전선 총책임자가 씹좆병신이던 김광협이 임명된 것이다. 아마 서부전선쪽 6사단의 굇수 방호산과 동부전선의 굇수 남일이 각각 연안파랑 소련파라고 애미쳐뒤진 혹부리의 반대파라서 지들 파벌 지분맞출려고 때려박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도 신의 한수로 작용했다.[2]

춘천전선[편집]

북괴군의 중부전선은 단 이틀 이내에 춘천찍고 가평찍고 동북쪽으로 서울을 박살낼 계획을 짜고 있었기에 계획대로 중부전선담당이던 좆광협 병신의 2군단 휘하 2사단은 춘천을 공격했다. 하지만 국군이 미리 짜놓은 방어선과 진지에서 준비했던 국군의 반격으로 인해 북괴군은 교착상태가 되었다. 이중 7연대 2대대에 속했던 5명의 성님들이 특공대를 만들어 북괴군의 대전차 자주포 2문을 박살냈다. 이걸 보고 깜짝놀란 2사단은 히든카드로 준비했던 17연대를 투입했다. 하지만 당시 17연대는 배치의 오류때문에 지형문제로 북한강따라 진격했는데 북한강 유역에서 포격훈련을 수십회 받아왔던 6사단의 포병성님들이 13문밖에 없던 공수부대용 경량화 버젼의 105mm 곡사포를 날려 벌집핏자로 만들었다.

이결과 북괴군의 2사단은 춘천에서 3일만에 40%의 병력을 날려먹는 대병크를 저지르게 된다. 퍄 개꿀ㅋㅋㅋㅋ

문제는 이걸로 좆광협이 해임된뒤에 중부전선에 김무정이라는 굇수가 들어온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이새끼는 나중에 북괴군 좆발릴때 평양털리고 낙동강 말아먹은 거 뒤집어써서 숙청크리먹고 중궈로 런한다.

  1. 나중에 초산 전투에서 압록강 찍었는데 현리 전투때 개털됐다가 백마고지 전투에서 명예회복을 하신 분이다
  2. 참고로 방호산은 8월 종파사건시기 연안파 숙청때 숙청당했고, 갑산파라 살아남은 남일(소련파지만 빤쓰런)과 김광협은 도서정리사업때 우상화하는 혹부리보고 어... 이건좀... 아니지 않나요? 했다가 모가지 따였다. 꼬시다 병신들